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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당신은 장애를 아는가’라고 묻는다면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라고 묻는다면
 
 
 
한겨레 한승동 기자
 
18.0˚가 독자에게 /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 뼈아픈 말이다. 아프리카 끔찍한 흑인 노예무역 역사를 읽다 보면 닮은 생각이 절로 난다. “아프리카가 엉망진창이어서 유럽 제국주의에 당한 게 아니라, 유럽 제국주의에 당했기 때문에 아프리카가 엉망진창이 됐다.” 우리 근현대사에도 적용할 수 있다. “조선이 형편없었기 때문에 일제 식민지가 된 것이 아니라, 일제 식민지가 됐기 때문에 조선이 형편없는 나라가 됐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형편없었기 때문에 나라가 분단당한 것이 아니라, 미국 소련이 우리나라를 분단했기 때문에 우리가 형편 무인지경이 된 것이다.”

김도현의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메이데이)라는 책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언젠가 장애문제 관련 집회에서 한 사회단체 대표가 연대발언을 했다. 그는 마무리 말로 “여러분이 장애인이 아니라, 이 땅의 정치꾼 모리배들이, 자본가 놈들이 진짜 장애인입니다!”하고는 단상을 내려갔다. 사람들의 얼굴에 당황하는 기색이 스쳐갔다. 장애인을 최고로 격려한답시고 한 그 대표의 말은, 그가 실로 부당하게도, 평소 장애인을 얼마나 부정적인 존재로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폭로’했던 것이다. 추도식에서 망자를 두고 “내게 그는 결코 장애인으로 비치지 않았다”거나 “그는 내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장애가 없었다” 따위로 늘어놓는 추도사도 마찬가지다. 마치 피부가 검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 흑인에게 “당신은 내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덜 까맣소”라고 칭찬하거나, 여성운동가에게 “당신은 전혀 여성처럼 행동하지 않는구려”라며 아첨하는 거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평소 까만 피부와 여성을 얼마나 하찮게 여겼으면. 발상을 한번 확 바꿔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진실은 뒤에 감춰져 있기 십상이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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