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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넌의 '이매진'과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혁명

국제신문_[이 책의 즐거움] 존 레넌의 '이매진'과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혁명/ 배윤기
 

 

지금 건설하라 21세기 사회주의 - 마이클 레보위츠 지음/원영수 옮김/메이데이

 

"상상해보라. 천국이 없다고. 발밑에 지옥이란 없고, 우리 위엔 그냥 하늘이란 사실을 알아채는 건, 시도해보면 어렵진 않아. 모든 사람이 오늘을 위해 살아가는 세상을 상상해보라."

 

 
 
 

 

지난 세기 위대한 몽상가이자 음유시인이며 사회운동가였던 존 레넌은 노래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국가가 없다고,' '소유가 없다고,' 이어 상상하는 'Imagine'이라는 불후의 명곡을 남겼다.

 

 

우리에게 진정한 상상이 있을까? 직업교육이라는 백기를 들고 있는 제도교육의 조종(弔鐘)과 함께, 화려한 광고의 팡파르가 난무하는 후기현대에서 말이다. 우리는 교육되고, 조작되고, 기만되는 사유 형식의 포로라는 생각을 한 번씩 하게 된다. 늘 듣는 이야기. '사는 게 그런 거지.' 교화된 상상력, 조련된 욕망, 그래서 감금된 의식의 경계들에 갇힌 채 파블로프의 개처럼 헐떡거리며 산다는 생각. '어쩔 수 없잖아.'

 

초국적 금융자본의 사이버 투기 및 활극과 군산복합체와 석유자본이 조종하는 사막의 전쟁으로 발악하는 자본주의의 폐해에 시시각각 고통 받으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현실론이 지배하고 또 지배당하는 우리 꼴이 어떨 땐 눈물 나게 우습기도 하다. 우리가 이처럼 여하한 대안들도 별무소용으로 생각하게 된 근거는 무엇일까? "문제점은 많지만, 그래도 대안이 없다"는 꽁무니 빼고 편안히 기댈 수 있는 변명의 유행 때문일까?

 

이런 환경에서라면, 인간의 삶과 삶의 조건을 탐색하는 인문학의 생명과도 같은 '저 너머를 보는' 상상력은 앙상해질 것이다. 인간의 상상력은 자명하고 투명하다고 간주되어온 관념과 그 관념의 물질성이 영구불변하리라는 생각, 그 자체를 의심하는 지점에서 고개를 든다. 진정한 상상의 가능성은 언제나 '저 너머'(elsewhere)에서 똬리를 틀고 있다. 거기서 '남의 사유'를 '자기 사유'로 도착(倒錯)하고 있는 우리가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 건설하라, 21세기 사회주의.' 시절이 하 수상하여서, 좀 머뭇거렸다. 이 '썰렁한 날씨'에 제목부터 조금 걸맞지 않는 건 아닌가?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는 '삶의 지혜'를 터득하여 조화롭게 '유혹을 넘어, 시대의 파도를 넘어' 한 생을 마감하는 것도 현명한 일인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인문학은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는 이른바 시대의 '결을 거슬러' 사유하도록 늘 유혹한다. 이런 사유는 예측 가능한 확실성의 공간(somewhere) 너머의 공간에 자기 터를 닦아야 가능하다. 가끔씩 인문학에는 '저주의 부적'이 붙어 있다고, 농 반 진담 반 하는 내 설의 근거도 거기 있다.

 

이 책은 '저 너머' 볼리바르(Bolivar) 혁명으로 알려진 베네수엘라의 대대적인 삶의 토대 변화에 관련된 이야기다. 베네수엘라 로컬 현장들의 코뮨 건설과정과 쿠바 등 중남미 나라들과의 연대와 협력 등이 어떤 배경에서 이뤄지는지 궁금해서 이 얇은 책을 접하게 됐다.

 

"볼리바르 혁명은 사회주의가 목적이 아니라고 상기시켰다. 오히려 목적은 인간잠재력의 완전한 발전"이라고 소개하는 저자 마이클 레보위츠는 이 책에서 "기계나 국가가 아니라, 인간을 앞에 놓는 인간적 사회주의의 복원"을 주창하는 차베스 정부의 정책 자문역 경험을 통해 내부의 갈등과 제국의 반혁명 기도들을 하나씩 극복해내고 있는 볼리바르 혁명의 가능성과 한계를 진단한다.

 

부산대 한국민족문화硏 HK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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