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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_보수도시 대구서 좌파종합지 '레프트 대구' 창간한 이득재씨

  보수도시 대구서 좌파종합지 '레프트 대구' 창간한 이득재씨
인쇄업체서 도중에 '원고 부담된다'며 갑자기 거절…"그때 '아! 여기가 대구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난 5월 '보수의 아성' 대구에서 '좌파'를 기치로 내건 잡지가 탄생했다. 바로 '레프트 대구'다. 김용철, 이득재, 노태맹, 임순광씨가 편집위원으로 참여한 이 잡지는 대구에서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에 대한 고민을 담아내고자 출간한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시민단체나 시민운동과도 선을 그었던 '레프트 대구'는 잡지 이름에서 보수와 좌파라는 서로 상반되는 이미지가 교차하는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러나 '레프트 대구'의 편집위원장인 이득재 대구가톨릭대 러시아어과 교수(51)는 "대구라고 하면 보수 아성이라는 말을 떠올리는데, 실제로 일반 사람들은 대구의 밑바닥을 잘 모르니까요. 대구 사람들도 활동을 안 해보면 잘 모르고요"라며 "저도 대구에 온지 18년 됐는데, 대구에는 경상도 말로 빡세게 노동운동·시민운동에 참여하고 빡세게 활동하는 사람이 많아요. 교육, 빈곤,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 분야별로요. 대구가 좌파 전통이 셌던 곳이기도 하고요"라고 말했다.

지난 12일 '먹물쟁이의 책임의식'이라 여기며 노동운동을 하고 있다는 이 교수를 수성구 시지의 한 카페에서 마주했다. 그는 시민운동을 하는 활동가처럼 느껴졌다. 그 자신도 "평상시에도 그렇고 방학 때도 그렇고 교수가 아니라 활동가인 것 같다"고 털어놨다. 집회 있을 때마다 쫓아다니고 천막 치고 철야농성하고 노동자들 만나고…. 요즘은 노동자를 만나는 재미에 산다는 이 교수. 그는 "굳이 대구가 아니더라도 전국적으로 노동자 대중의 현실이 너무 빡빡하게 돌아가고 있어 좌파들이 그런 현실에 대해 목소리를 일치시켜 방향을 논의한다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에게 '레프트 대구'를 발간하게 된 계기와 어려움, 발간 그후 등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다.


◇ 대구에서 좌파이론 정론지 탄생

- 어떻게 좌파 종합지를 창간해야겠다고 뜻이 모아졌습니까.

"3년 전쯤 신자유주의 반대와 평등을 위한 단체인 '민중행동'과 인연을 맺게 됐어요. 민중행동에서는 여름방학 때 '마르크스주의 학교'라는 걸 5회째하고 있는데 제가 2회 때 강의를 나갔어요. 그러다 노동운동·시민운동을 하던 사람을 알게 됐고 민중행동에서도 직책을 맡게 됐죠. 작년 가을에 민중행동 뒤풀이를 하는데 대경인의협(대구경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인 노태맹 시인이 잡지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뜻이 있는 것 같아 동의를 하게 됐어요."


- 편집위원이 4명인 걸로 알고 있는데요.

"노태맹 시인과 제가 둘이서 200만원씩 돈을 냈어요. 다른 편집위원들은 몸으로 때우고…. 임순광씨(한국 비정규직 교수노조 사무처장)가 이래저래 궂은 일을 해줬고, 김용철씨(민중행동 대표)는 책이 나오고 나서 배부에 힘을 많이 써줬어요."


- 그럼 400만원이라는 다소 저렴한 비용으로 잡지를 만든 거네요.

"제작비·인쇄비·발송비로 400만원이 든 거죠. 무척 많은 사람들이 도와줬기에 가능했어요. 표지는 노태맹 시인이 아는 화가가 공짜로 그려줬는데 이분도 그림 한장에 몇백만원 한다더라고요. 만화는 한 노조회원이 그려줬고, 책은 대구에서 민중가요를 하는 '좋은 친구들'이 싸게 만들게 도와줬죠. 참, 원고료는 전혀 못줬고요."


- 요즘 좌파도 조금씩 색깔이 다른데, '레프트 대구'에서 추구하는 좌파는 어떤 겁니까.

"하긴 요즘은 범좌파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언론 쪽을 보면 오마이뉴스는 노빠, 프레시안은 노빠도 아니고 좌파도 아니고, '참세상'과 '민중의 소리'는 좌파 쪽 독립매체 언론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사실 엄밀히 말해 민주당, 민노당, 진보신당은 좌파가 아니예요. 흔히 진보라고 하죠. 진보는 정치적 이념을 얘기하는 것 같고, 좌파는 노동자 또는 노동계급의 입장에서 자본이나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걸 말합니다. 반(反)자본주의적 입장 하에 미래사회에 대한 대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좌파라는 얘기죠. 제 마누라는 저보고 극좌파라고 하던데…. 극좌파는 좌파 공산주의를 말하는데, 레프트대구는 좌파 공산주의적 입장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잡지상의 내용에서 좌파 공산주의를 지향한다는 게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고 있어요."


◇ 원고 펑크나고 인쇄업체에서 작업 거절하고

- 기획 회의 등을 거쳐 잡지를 만드는 데는 얼마나 걸린 겁니까.

"작년 12월에 편집회의·원고청탁 등을 하고 5월1일에 딱 맞춰냈으니까 5개월 정도 걸렸네요. 처음 대구에서 해보는 거라서 필진 구하는 것도 어렵고 원고 쓰려고 했던 사람들이 펑크도 많이 내고 이래저래 힘들었어요."


'레프트 대구'는

 좌파 공산주의적 입장 가지려고 해요
 
보수도시서 좌파 목소리 쉽지 않겠다고요?

 정치는 정치고

 민중운동하는 사람은 따로 있으니까요


- 잡지 발행에 있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막판에 원고 작업할 때요. 인력도 없고하니 저희끼리 다 해야했거든요. 김용철씨와 제가 새벽 3시까지 인쇄소에서 인쇄필름을 한장씩 검토하는 작업을 했는데 그날 진짜 춥더라고요. 이번에 원고 교열도 못봐서 오·탈자도 많을 거예요. 다음 호부터는 저희끼리 교열도 봐야 돼요. 아마추어들이…."


- 지역 인쇄업체에서 작업을 거절해 서울 인쇄업체에 맡겼다고 들었습니다.

"시집 만드는 출판사인데 그쪽에서 맡아서 해주겠다고 했는데, 원고 내용이 부담스럽다고 거절을 했어요. 인쇄소 수색하고 그럴까봐…. 그 얘기 듣고는 '별걸 다 걱정한다. 아 여기가 대구구나' 했어요. 그 인쇄업체에서 한달 정도를 붙들고 있다가 못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시간이 더 오래 걸렸어요. 그래서 대구에서 민중가요 하는 '좋은 친구들'의 싱어 동생이 하는 기획사 쪽으로 넘겼죠."


◇ 원보수동네에서 '좌파' 목소리

- 필진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나요.

"주로 대구에서 발굴하려고 하는데 어려워서 서울 쪽에도 부탁을 했어요. 편집위원회의 원칙과 맞는 사람만 필자로 하죠. 이번에 감신 경북대 교수 글을 실었다가 욕 많이 먹었어요. 그 사람이 노빠 쪽이래요. 대구 지역에 좌파쪽 단체 활동가들이 많아요. 그 활동가들도 필자가 될 수 있고요."


- 보수적인 동네에서 좌파 목소리를 담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뭐, 내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일반 정치는 정치고, 민중운동하는 사람은 따로 있으니까요."


- 최근 'KBS 블랙리스트'가 이슈가 되고 있는데요. 좌파 인사라는 것이 교수로서의 삶 등에 불이익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나요.

"그런 적은 없는데요. 지금은 한국진보연대까지만 탄압하고 예전처럼 민중단체까지 탄압하지는 않고 있어요. 노동운동 쪽으로는 노조를 무력화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으니까요."


- 국내 현안 중 가장 문제시 되는 현안은 뭐라고 보십니까.

"현 정권은 노동운동을 철저하게 차단하는 게 목표잖아요. 임태희 고용노동부장관이 대통령실장에 내정됐잖아요. 그것만 봐도 의도를 읽을 수 있을 것 같고 …."



- '레프트 대구'가 정치 단체 등으로 영역을 넓혀갈 가능성도 있나요.

"그런 계획은 전혀 없습니다. 정당에 가입할 생각도 없고요. 사회주의당이라면 모르겠지만."

◇ 잡지발행후 반응은

- 잡지가 발행되고 나서 반응은 어땠습니까.

"전반적으로는 반응이 좋았어요. 대구에서 레프트를 기치로 내걸고 나온 데 대한 반응이 좋았던 것 같아요. 한 인터넷서점의 잡지 파트에 베스트에 오르기도 했다던데요. 구체적으로는 특집으로 했던 좌담회는 실패했다는 얘기가 있고, 현장 활동가 등의 목소리를 담은 '대구21'은 좋다는 의견이에요."


- 800부가 팔렸다고 들었는데, 다음 호를 찍을 기반 자금은 마련된 거겠네요.

"원래 재생산 비용이 나와야 된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그 비용이 나올 것 같아요. 출판사인 메이데이에서 250부를 가져가서 판매했고 저희가 550부를 가져왔거든요. 100부 이상은 기증을 했고 걷힐 돈이 350부 정도는 되는 것 같네요. 그래도 다음 호를 찍어낼 자금이 계속 마련될 지는 2호를 내봐야 알 것 같아요. 1호 냈던 식으로 책을 돌리고 돈 걷히는 걸 보면 계속 굴러갈지 판단이 서겠죠. 1호 때는 창간 프리미엄이 있어서 그것 때문에 굴러갔을 수 있으니 2호를 내봐야 돼요."


- 잡지 발행후 보수단체로부터 항의를 받지는 않았나요.

"모를 걸요, 아마. 전혀 얘기 못 들었는데요."


- 창간호가 나오고 나서 아쉬운 점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원래는 이 잡지가 대구경북의 좌파 단체와 활동가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이념적이고 실천적인 구심점을 찾아가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어요. 이번에는 그게 적절히 반영이 안됐다는 평가니까 그게 아쉬움이고요. 또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이 책이 어렵다는 얘기를 하도 많이 하니까 어떻게 격차를 좁혀야 될지 고민 중에 있어요."


발행후 인터넷서점 베스트에 오르기도

대구경북 '좌파 활동가'들

실천적 구심점 찾아가도록 하는게 목적

그게 아직 적절히 반영 안돼 아쉬워

◇ 다음호는 어떻게

- 다음 호는 언제 볼 수 있는 겁니까.

"지금 편집회의를 하고 있어요. 14일에 아이템을 전부 정하기로 했고 늦어도 8월 초까지는 원고 청탁을 하려고 해요. 2호는 10월 말에 출간할 계획인데 제대로 되려나 모르겠네요. 누가 중간에 원고 펑크내고 그러면 늦어지는데…."



- 2호에는 어떤 기획을 다룰 계획입니까.

"특집은 아직 계획 중인데 이번에는 좌담회는 안할 겁니다.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무상급식 등의 문제에 좌파는 뭐하고 있나에 대한 자기 비판과 고민을 담지 않을까 싶네요. '대구21'에서는 빈민들의 건강의료보험 체납 탕감 문제, 동산병원 투쟁문제 등을 다룰 계획이고요."



- 편집위원 인원을 늘리는 등 다른 변동사항은 없나요.

"편집위원 수를 늘리려고 하고 있고, 판매망도 좀더 체계를 갖추게 하려고요. 잡지 표지그림도 노태맹씨가 화가에게 부탁해 바꾼다는데요."

))) 이득재 편집위원장은

1959년생. 서강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노어노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대구가톨릭대 러시아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계간지 '문화과학'의 편집위원, 민중언론 '참세상'의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5월1일 창간된 좌파 종합지 '레프트 대구'의 편집위원장이기도 하다. 저서로는 '대구 경북의 도시 공간과 문화지형' '대한민국에 교육은 없다' '가부장제국 속의 여자들' '가족주의는 야만이다' '도스토예프스키 도시에 가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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