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하늘을 덮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의 진실] - 잊고 싶은, 그러나 잊혀지지 않는 1639일 생존과 지지의 기록_ 가을하늘 이벤트_ 선정 결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 김준희)

 

[하늘을 덮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의 진실] - 잊고 싶은, 그러나 잊혀지지 않는 1639일의 기록 

가을하늘 이벤트http://blog.jinbo.net/mayday/521에 참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최초 사건 만 5년 하루째인 오늘,

약속된 대로 그중 메이데이의 선물 받으실 분을 발표합니다.

 

1. '하늘을 덮다' 선물(1명, 메이데이 책 구입 5만원권)

YH(포스팅 #5)

 

2. '사건의 진실' 선물(2명, 메이데이 책 구입 3만원권)

KKH(포스팅 #2), PNG(포스팅 #7)

 

3. '생존과 지지' 선물(3명, 메이데이 책 구입 1만 5천원권)

익명(포스팅 #4 - 발췌임), KKY(포스팅 #6), HCH(포스팅 #9)

 

모두 선정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꾸벅).

대신 이후 더 많은 사람들이 폭풍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를 기획하겠습니다~ ^.~

이벤트가 아니더라도, 이 문제에 관하여 널리 많은 사람들이 떠들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세요!

위 선정된 분들께는 각기 연락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 메이데이 노동자 MHL 드림

 

 

(아래는 포스팅을 참여 순서대로 번호를 매겨 정리한 것입니다.)

----------------------------------------------------------------------------------

1. OBG – 책 속 사진

 

사용자 삽입 이미지

 

 

2. KKH - 독후감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614497045259593&set=a.208473612528607.50682.100000979080875&type=3&theater

 

무제(無題)
-하늘을 덮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의 진실)을 읽고-

 

이벤트가 있는 줄도 몰랐다. 오늘에서야 몇몇 페친들이 공유한 이벤트를 보고 알았다. 이벤트에 동참한다는 생각도 없다. 이 엄청난 사건을 접하고 행동하지 않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교훈을 얻어 성폭력을 비롯한 운동 내의 인권에 무감각한 우리 스스로를 경계하고자 한다.

 

글을 쓰려고 하니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다.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하는 걸까? 내 이성으로는 제목을 붙일 수 없어서 무제라고 쓴다.


..........................................................................................................................

보름 전만해도 이 책을 읽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오래전에 이 사건을 알았지만 자세한 내용을 기억하지 않았다. 너무나 많은 사건들이 터져 나왔다. 어쩌면 나도 그 많은 사건들 속의 하나의 ‘사건’으로 체념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두어 달쯤 전에 다른 사건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됐다. 내가 알고 있는 동지가 그 사건의 대책위활동을 하면서 무척 힘들어했다. 그리고 한 달쯤 전에는 그 사건의 피해자 동지를 알게되면서, 그리고 충남에서 벌어진 사건을 접하면서 다시 고민하게 됐다. 결정적으로는 대책위활동을 했던 동지가 이 책을 읽게 됐다고 포스팅을 하면서 책을 구입해 보기로 결심했다.

 

피해생존자의 심정을 옮기는 것은 하지 않겠다. 아니 할 수 없다. 그 아픔과 절망을 도대체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있겠는가? 매일 매일 평범한 일상을 꿈꾸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현실의 고통을.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사건의 피해자가 매일 자살을 꿈꾸고, 또 그렇게 자신을 자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글로 그 고통을 표현할 수도 없고, 위로할 수도 없다. 그냥 할 말이 없을 뿐이다.

 

사건은 간단하다. 민주노총 전 위원장이 수배를 피해 도피하다가 연행되면서 피해생존자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려고 했고, 피해생존자가 동의하지 않자 이러한 결정에 합류하는 것을 강제하기 위해 계획된(!) 성폭력 사건이라고 본다. 문제는 어떤 사건에서나 마찬가지이지만 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2차, 3차가해였다. 특히 이 사건은 민주노총과 전교조라는 거대조직에 의해서 자행된 2차, 3차가해라는 것이었다.

 

2차, 3차가해는 반드시 조직 내에서의 논란과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이건 현재 운동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만큼 성폭력문제에 대한 운동내의 감수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서 피해생존자는 또 다시, 더 큰 상처를 받게 되고 결국 치유를 통한 현장으로의 복귀는 불가능해 진다는 것이다. 더불어 피해생존자와 함께 했던 모든 건강한 활동가들도 상처를 받으며 운동에 회의를 갖게 되는 무서운 결과를 낳는다.

 

2차, 3차가해에 대해서는 진보적이라는 사람들조차 무감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니 이러한 사건에 대해서 대화를 나눠보면 “정확한 진실을 알지 못하다.”거나 “관심 갖고 싶지 않다.”며 회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 막 나가는 경우는 가해자를 변호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해자와 2차, 3차 가해자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이 문제를 ‘정치적 적대행위’로 치부하는 태도이다. 물론 약방의 감초처럼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핑계로 사건해결의 우선순위에서 자연스럽게(?)밀리기도 한다.

 

이 사건의 핵심적인 문제점을 나는 세 가지로 본다.


첫 번째는 성폭력에 대해서 규정과 절차로 모든 것을 처리하려는 관료적 태도이다. 민주노총과 전교조가 그랬다. 2차가해에 대한 규정과 처벌, 예방 모두에서 실패했다. 단지 조직적(?)으로 사건을 접수하고 절차적으로 처리했다는 것으로 모든 정치적 책임을 면하고자 했다. 적극적인 의지는 보이지 않았고, 권력을 장악한 집행부는 끊임없이 사건을 무마하려고 했다. 피해생존자의 고통과 민주주의는 절차를 밟았다는 이유로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둘째는 이 문제를 대하는 제3자들의 방관자적 태도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이런 문제를 원칙적으로 풀어가기 위해서 노력하기도하지만 그 목소리가 작아 원칙적인 해결이 불가능하게 되는 것은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방관자적 태도를 취하기 때문이다. 비판적인 사람들조차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을 주저한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사건을 인지한 순간 정확한 진실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먼 지역에 있다는 이유로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았던 것을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세 번째로 내가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성폭력이라는 사건의 발생을 예방하자는 것과 더불어 운동 내에 만연한 ‘인권’의 문제에 대해서 나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 경계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만 해도 해결해가는 과정이 매우 지난하고 고통스럽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성폭력사건이기 때문에 논란이 되는데 반해 -이렇게 표현되는 것이 참 아프다. 그런데 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 일상적인 소소한(?) 폭력과 인권침해는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격렬한 논쟁의 결과 ‘있을 수 있는 일’로 치부되면서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서 나는 운동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상적인 폭력과 인권침해에 대해서 성폭력을 대하는 것만큼 경각심을 가지고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적들의 폭력에는 그렇게 분노하면서도 운동 내의 폭력과 인권침해에 무감감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고자 한다.

 

“나는 조직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려졌다”

 

 


3. KYK - 독후감
<조직(단체)과 구성원에 대해 생각해 보다>

 

어제 '하늘을 덮다'라는 책을 사서
지금 새벽까지 피해생존자의 글을 다 읽었다.
피해생존자의 글을 보면서 소름이 확 돋는다는 것을 느꼈다.
민주노총 위원장을 도피시키는 과정에서 일어난 우발적인
성폭력 사건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상세한 성폭력사건 과정을 피해생존자의 글을 통해 접하게
되면서 너무나 분노스럽고 슬펐다. 조직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렇게까지 구성원에게 폭력을 가할 수 있는지 책을 보는 내내
머리속에서 맴돌았다.

 

끝까지 싸워온 피해생존자의 용기가 대단하다.
나는 이 사건을 지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로 정진후 전 전교조
위원장이 추천되면서 알게 되었다.

 

그때 통합진보당 게시판에서 정진후 후보에 대해 부적절하다고
주장하며 비례대표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싸웠었다.
논란이 있는 후보를 조직의 논리로 관철시키는 과정을 보면서
진보를 표방하는 단체들의 모순을 적나라게 확인할 수 있었다.

 

피해생존자에 대한 인신공격에 대한 부분을 보면서
구 진보신당(현 노동당)에서 벌어졌던 일이 떠올랐다.
회계부정의혹과 사무장 부당해임에 대해 지역 당협,
도당, 중앙당과 싸우면서 조직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구성원의 모습을 경험했었다. 부당해임 당사자를 옆에서
지켜보았는데, 그분의 분노와 슬픔이 피해생존자의 글을 읽으며
다시 떠올랐다.

 

부당해임의 당사자는 지역 당협, 도당, 중앙당과의 싸움에서
인신공격을 끊임없이 당했었다. 그렇게 고통받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도 정말 힘들었다. 조직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것 하나 시원하게
해결해주지 못하는 것일까? 그당시 구 진보신당(현 노동당)은
현대차 비정규직 부당해고 문제를 사회적인 이슈로 문제제기하며
싸우고 있었다.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임의단체 사무장이기 때문에 당이 부당해임에 대해 책임이 없다는
구차한 답변을 구 진보신당(현 노동당) 당대표에게 들으면서
쓴웃음이 나왔었다.

 

어느 조직(당)이 임의단체 사무장에게 당원정보을 알 수 있는
당원관리프로그램을 내려준다 말인가. 실질적으로 지역 당협의
사무장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던 분이었다.

 

구 진보신당(현 노동당)은 회계부정의혹과 사무장 부당해임건에
대해 중앙당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였지만 진상조사위원들이 탈당하면서
결과보고서를 내어놓지 못하고 흐지부지 되며 끝나버렸다.

 

최소한 양심이 있는 조직(당)이라면 부당해임 당사자에게 최소한의
사과는 있어야되는데 구 진보신당(현 노동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부당해임 당사자는 지난 구 진보신당(현 노동당) 광역시도당 위원장선거에
위원장후보로 출마했던 내가 속해 있던 의견그룹(공동체가치실현모임)의 대표를 맡고 있다는 이유로 반여성주의자로 같이 제명되었다. 반여성주의자라는 사유는 당내에서 여성위를 비난하고 낙태논쟁을 했다는 것이었다.

 

나와 부당해임 되었던 그 분은 낙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이 없었다.
그리고 당 여성위를 비판했던 것은 당내 성폭력 사건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 등 제 역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종종 그 부당해임되었던 그 분을 생각하면 분노스럽다.
조직(당)에 사과를 받고 치유를 받아도 만족스럽지 않는데
제명까지 당하다니.

 

조직(당)을 위해 자기 돈까지 써가며 왕성하게 활동하던 분이었다.
과연 조직이 무엇이길래 이렇게 개인은 조직앞에서 무참하게 상처를 받는지
의문이다. 나는 이 싸움을 아직 끝내지 않았다. 부당해임 당했고 부당하게
제명되어 상처받은 그 분과 나의 명예를 위해 계속 문제제기하며 싸울 것이다.

 

피해생존자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힘내시길 바란다.

 

 

 

4. 익명(메이데이 블로그 방명록 ‘관리자만 볼 수 있는 글’에서 발췌) - 지지 글

[...] “결국 견디지 못하고 저는 조직을 나왔어요.” [...]
“제 사건은 묻혔지만 잘 해결되길 바라며 지지글 남깁니다.... 화이팅”

 

 


5. YH - 독후감
https://www.facebook.com/yuna.hwang.7/posts/621203277939022

 

지난 주에 피해다니던 책 '하늘을 덮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의 진실)'과 마주보았다. 그것의 두께와 내용이 주는 무게감에 쉽게 마주하지 못했다.

 

펼치기 어려운 책들이 있다. 내 몸을 머리통부터 발끝까지 뚫고 크게 휘감아 포박해버릴 것 같은 책이었다. 머리, 눈, 목구멍, 척추뼈를 뚫어 착착 접어 놓은 옛 기억과 감정들이 새 나온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세미나용으로 종종 읽는다는 '오빠는 필요없다'를 나는 아직도 펼치지 않았다. 학술적이건 감정적이건, 문체와 상관없이 '뚫어버리는 글'들이 있다.

 

죄책감과 의무감, 두려움이 섞인 도전정신으로 (안 어울리는 조합이군)
'서문까지만 읽자', '당사자의 글까지만 읽자' 했지만 한번에 읽어버렸다. 아마 다시 펼 용기가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니 나처럼 두께에 '헉'하고 미리 읽기를 접은 사람이 있다면 일단 앉아서 책을 펼치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면 저절로 읽어질테니까.

 

피해 당사자의 글을 읽으며.... 나는 허리가 푹푹 꺾이는 분노와 슬픔을 보았다. 관통당하는 뼈는 내 것이었으니 분노와 슬픔은 글쓴이만의 것은 아니다.

 

누군가 그랬었다. 이렇게 되니 1차 가해자는 생각나지 않는다고. 사건 해결 과정에서 겪어낸 수많은 뻔뻔한 얼굴이 잠을 쫓고 식욕을 방해한다. 뻔뻔한 얼굴들. 자신이 일반사람이며 대중이며 제 3자라는 이유로, 혹은 자신이 누구의 친구이며 선배이며 후배라는 이유로 던진 말들, 그 때 보여준 뻔뻔한 얼굴.

 

글쓴이는 함께 했던(그러했다고 여겼던) 동지(라고 여겼던)들에게 끝까지 기대를 놓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랬던 스스로를 비난하고 탓한다. 바보같이 왜 또 기대를 했을까, 왜 또 그랬을까, 그 사람들에게 왜 나는 미련맞도록 기대를 걸었을까 되묻고 또 되물었을 것이다. 아프다. 소속감을 느끼고 함께 살아왔던 사람들이 뻔뻔한 얼굴을 할 때 느끼는 외로움과 배신감은 결국 나를 겨눈다. '나는 누구인가' 나를 의심한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해왔는가' 내 역사를 부정한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을 의심한다.

 

글쓴이는 그 의심과 부정 속에서 손을 움직여 글을 쓰고 발을 옮겨 대책위 사람들을 만났다. 나는 옆에 서서 울고 싶다.

 

많이들 읽어보세요~ 이런 걸 남기려고 했는데 과연 안되는군.

 

 


6. KKY - 독후감
https://www.facebook.com/idkkoma7568/posts/446961512082664

 

이 책을 올 초 가을쯤 대리인에게 선물(?)받고 피해생존자샘의 글을 다 읽는 데만도 오늘까지. 한장한장 넘기는 데만도 너무나 고통스러웠어요.
내가 지금 이 장을 이해하고 넘기고 있는건지도 잘 모르겠고, 순간순간 머리가 과부하가 걸린 엔진처럼 멈춰버렸어요.
왜냐면...제 사건도 지금 현재진행형 이거든요.- 메이데이

 

마무리 역시 잘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저역시 피해생존자 선생님의 건강과 생존의 날들에 조금의 따뜻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손애라는 나에게 용서해 달라고 했다. 나는 손애라에게 네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고 용서해달라고 하는 거냐고 물었다.
...
손애라는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말하지 않았다......무조건 미안하니 용서해달라고만 반복해서 말했다.p64]

 

-나의 경우는 가해자였다. (그것도 카톡메세지였지만)무엇을 잘못했는지 무조건적인 사과가 아니라, 사건의 경위를 담은 사과문을 먼저 보내달라고 요구했지만,연거푸 만나자고만 하였고 결국 자기 멋대로의 자기성찰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메일을 받았다.
....

 

[그러나 피해생존자의 요구를 어떻게 반영할지, 조직 내에서 사건과 해결 과정을 어떻게 공론화할지와 같은 논의는 방기되었다. 피해생존자와 지지모임의 계속되는 요구는 조직현실을 잘 모르고 하는 무리한 요구로 치부되었다.
...성폭력 사건 처리에서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피해생존자의 입장을 존중하고, 피해생존자의 치유와 지지,공감에 조직적으로 나서는 것이다. 조직은 구성원들에게 피해자 중심주의에 의거, 이를 안내할 책임이 있다.p216-217]

 

<-2차가해자들의6월19일 입장문 중
...
‘피해자’의 말이 진실인데 ‘가해자’의 말이나 힘에 눌려 왜곡되어서도 안되지만, ‘피해자’의 말이 진실이 아닌데 ‘가해자’를 공격하려고 정당화되어서도 안된다. 사건을 해결하는데서 가장 중요하게 전제해야 할 것은 진실이지 피해자나 아니냐가 아니다. ‘피해자중심주의’는 사회경험상 ‘피해자’의 진실이 ‘가해자’의 말과 힘으로 왜곡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에 균형을 잡기 위해 제기된 것이지, 지금처럼 또다른피해자들을 양산하고 일부운동권들이 다른운동권들을 정파적으로 치고 사회적으로 매장하기 위해 쓰는 음해모략의 수단이 아니다. >
...

 

-2차가해자들은 '2차가해는 없다.'라는e-book을 발행하고,사람들에게 공대위와 피해자가 말하는 것은 정파적 의도가 있고 진실이 아니며,또 변덕스럽고 이것저것 다 들어주는 '피해자 중심주의'는 진정한 피해자 중심주의가 아니라고 했다.

그렇게 내 진실은 매도 당했다.
...


[성폭력 사건의 해결 원칙 중 하나인 ‘피해자 중심주의’란 개념은 완전한 중립성과 객관성에 대한 믿음과는 배치되는 관점이다. 사람들 사이에 권력관계가 존재할 때에 완전한 중립성이나 객관성은 존재하기 어렵다. 중립적, 객관적이라고 여겨지는 사실도 이미 기존 권력관계와 그에 따른 사고방식을 답습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을 때 자본가의 입장을 동등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철거민들의 투쟁에서 건설업체의 입장을 고려하여 중립적 입장을 취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형식적 중립성이 실제로는 비대칭적인 권력 관계에서 노동자와 철거민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부장적인 논리가 손쉽게 정당화되는 중립성과 객관성은 가해자의 논리로 치환되기 쉽다. [...]‘맺는 말_ 일방통행은 언제나 위험했다]

<재판확정전까지 아무것도 확언할 수 없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하여 가해자의 인권도 동등하게 고려되어야한다._2차가해자들 공문중>

 

 


7. PNG -서평(일부 공개)
[서평_하늘을 덮다]

나는 ‘나를 말하는’ 게 제일 힘들다

 

얼마 전에 ‘하늘을 덮다’ 북 콘서트를 한다기에 아무 생각 없이 신청을 했고 그곳에 가게 되었다. 피해자, 아니 당사자(개인적으로 피해자라는 표현을 안 좋아한다.)와 지원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의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그렇게 한 시간 반을 버티다가 1부가 끝나고 나서 일찍 나오게 되었다.

 

북 콘서트 이후에 몇 번의 책 읽기 시도가 있었다.(북 콘서트 이전에는 책을 펼친 적도 없다.) 하지만, 표지를 넘기자마자 일어나는 두통과 구역질, 그리고 고통이 극도로 심해지면서 매번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봐야 하는데 하면서도 그 책을 펼치기가 두려웠다. 아니,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펼치는 일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렇게 끈질긴 시도(?) 끝에 어느 날 달리는 1호선 급행 열차에서 책을 펼쳤는데, 힘들었지만 페이지를 넘길 수 있을 정도까지는 되었고 그 이후로는 당사자의 일기에 몰입하여 글을 읽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15년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던 그 시절에 겪었던 당시의 상황이 떠오르면서 다시 한 번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나는 아직도, 잊었다고 생각한 그때의 사건이 떠올랐다.

 

그때 말하자면 강압에 의한 어떤 행위, 그러니까 “성폭력” 이라는 것을 동성에게서 처음으로 겪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3년이라는 시간을 거치며 지속되었다. 내가 당사자의 심정에 100%는, 아니 어쩌면 0.1%만큼도 접근할 수 없겠지만 “그때 당사자의 심정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어 내려갔다.

 

가해자 vs. 피해자

 

흔히 운동조직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가장 우선시하는 것이 진상조사를 진행하는 것이다. 조사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되면 가해자에 대한 징계와 피해자의 치유 보상을 진행한다. 가해자의 경우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쉬쉬하며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반성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고 피해자는 “가해자가 진정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나마 상처가 치유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막상 “현실에서 제대로(유효하게) 이뤄지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전혀 그렇지 못하다. 내가 처음으로 성폭력 대책위원회(대책위) 활동을 했던 사건의 경우에는 가해자가 잠적하는 기간이 길었고, 그가 다시 나타나서 징계를 확정하게 된 이후에는 그가 징계를 이행하지 않고 다시 잠적하여 사후 처리가 불가능해졌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온 사건에서도 가해자가 법정에서 금고형을 선고 받았지만 그 전후 모든 과정에서 당사자의 심각한 심적 피해가 있었다. 하지만 책임져야 할 단위인 민주노총과 전교조는 절차를 강조하면서도 필요한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조직보위 논리로 접근하면서 결국 피해자만 더 힘들게 하는 악순환을 초래하였다. 이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살아 있다는 것

 

글쓴이는 자신이 겪은 일을 다른 사람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써냈을 것이다. 이 서평을 쓰고 있는 나 또한 이런 문제가 반복되지 않기만을 바란다. 하지만 ‘100인위’ 사건을 통하여 한국의 반성폭력 운동이 시작된 지도 10년은 족히 넘은 지금도 또 다른 수많은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위들이 결성되고 있고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가슴 깊이 억누른 자신의 문제를 끌어올리지 못하고 힘들어하고 있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당사자와 지원자들이 있었던 일을 글로 적는다는 것, 특히나 책으로 엮을 때 당시의 상황을 상기하면서 정리한 이 책을 통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잊혀졌던 이 사건이 다시 알려지게 되었다.

 

부디, 매우 간절히 원한다.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오랜 시간 동안 읽히면서 더 이상의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힘이 되기를 바란다.

 

 

 

8. KJH - 책 사진(맨 위), 발췌

 

"많은 사람들이 읽어주길 바란다. 그것만으로도 내 글은 살아서 나를 일으켜 세워줄 것이고 나와 같은 피해생존자들이 숨지 않고 당당하게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자신들의 입장에 우선해서 말한다 ••• 잘못이 클수록 자신들의 언행을 합리화하려고 더 심하게 나를 질타하고 비난했다 ••• 이해해주지 않아도 되었다. 내가 겪은 일들이 끔찍한 사실이라고 인정해주기만을 바랐다 ••• 가까이 지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오랫동안 함께 활동해왔던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마음의 상처가 컸다. 그래서 점점 더 말하지 않는 내가 되었다."

 

 

 

9. HCH - 책 사진, 독후감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436688859877683&set=a.1384519161761320.1073741824.100006097484188&type=1

 

 

사용자 삽입 이미지

 

 

조합원을 기계부품처럼 쓰고 버리는 노동조합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며 외칠 자격이 있을까. 얼마 안되었지만 나도 민주노총 조합원이다. 회사한테 기계부품취급 받을때 내가 사람이라고 민주노총이 함께 외쳐줄거란 신뢰를 가지고있다.

 

허나 08년 일어난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 이후의 면면을 볼수록 불안하고 답답하다.

 

조합원에게 이석행위원장 도피를 돕게했으면 처리과정에서 조합원의 의사를 묻고 함께 고민해야지. 의사과정에 참여시키지도 않으면서 허위진술을 강요하기만한다.

 

이후 도피시키던 간부에 의해 성폭행이 발생하고 이 사실을 인지한 주변 간부들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즉각 분리하지않고 본인과 조직이 타격입을까만 걱정한다.

 

전교조 조합원이었던 피해생존자가 성폭행사실을 당시 전교조 위원장에서 말하자 처음했던 대답은 다음과같다.

 

...어려운 시기에 정부에 맞서 싸워야하는데 이 사실이 알려지면 조직에 치명적이니 참아달라.조중동이 가만 있지 않을것이다. 전에도 조직내 성폭행 사건이 있었는데 조직 내에서 해결이 잘 됐다. 그 과정에서 피해여교사가 제일 힘들어했다. 그 이후로 가해자인 남자는 활발히 활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피해여교사는 볼 수 없었다. 조직내에서 해결을 해도 피해생존자가 제일 힘든데 밖으로 알려지면 피해생존자는 견딜수 없이 힘들어 질 것이다.
선생님도 그렇게 그 여교사처럼 될거다...p71

 

피해사실을 자신의 노동조합 대표에게 말했으나 어차피 네가 피해볼 거 덮고 넘어가자고 한다. 15년 동안 헌신적으로 활동하던 조합원을 보호해야할 노동조합이 신뢰를 저버린거다. 기계부품처럼 조합원을 쓰다 버리자는 건가.. 어찌 저런말을 하는지..

 

이 말은 시작에 불과하다. 책의 내용을 전부 옮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가슴 눌렀던 문구들만 발췌해본다.

 

...정진후씨와 당시 핵심 지도부가 조합원인 한 여성의 '고통'을 조직의 '안위'와 연결지었다는 사실에 큰 분노를 느꼈습니다. 운동가들이 갖는 일종의 기술주의적 속성이겠죠. 전교조든 국회의원이든, 그것이 대단한 권능을 가지는 신성 불가침의 가치를 가지는 것이라 생각하지않습니다. 한 여성의 고통은 '작은 것'이고, 전교조라는 조직은 '큰 것'이라고 생각하는 습속이 교정되지 않는 한, 달라질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p471

 

...그는 금배지를 달고 노동자와 시민이 모인 어디선가 쌍용자동차의 구조조정 에 대해서 한진 중공업의 정리해고에 대해서 재능교육 노조에 대한 사측의 부당한 단체 협약에 대해 그리고 노동자들의 절망어린 죽음에 대해 핏대를 올리며 연설을 할것이다...p474

 

...재려고하는 거죠. 자기의 이익과 자기의 조직. 입신양명을 위해 재기시작하면 객관적인 사실은 없어지는 거예요... 옳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내야 하는데. 미묘한 관계가 있고, 눈치보이고, 그래서 못 낸다고 한다면, 옳은 일임에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진보 운동 포기해야죠. 결국 자기 입신양명을 위해서 가는 거죠...p484

 

...피해자는 거의 항상 그 공동체를 떠난다. 일상의 폭력에 저항하는 주체의 괴로움. 운동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알법한 그 괴로움이 유독 성폭력 피해자가 겪는 것으로 치환됐을 때에는 쉽게 공감을 못하는 것같다. 특히 진보진영 내에서 피해자는 조직을 위해서 참아야 하고, 가해자가 조직에 세운 공헌들만 인정되며, 최악의 사태로는 '조중동'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가해는 집단화되고 고통은 개인화된다. 운동진영 내 성폭력은 더욱 집요하게 피해자를 괴롭힌다. 이번 사건의 가해자들은 사건에 대한 은폐와 날조를 서슴없이 반복했다....p510

 

...피해생존자가 활동에 복귀할 수 있을만한 조직의 변화는 요원하다. 제대로된 반성없는 2차 가해자들의 복귀, 3년 형기를 채운 가해자의 석방등이 피해생존자에게 각기 또 다른 불안 요인임은 물론이다. 법적인 형벌 이외에 피해생존자에 대한 접근 금지와 같은 정서적 안정을 위한 조치가 필요하건만, 조직은 딴청만 피운다. 피해생존자가 다시 활동에 복귀할 수있는 환경도 마련해야한다. 피해생존자가 소속된 공동체 차원에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다차원적으로 고민하고 노력해야한다...p534

 

 


10. MHL - 여러 단상

 

1.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에 대한 주변 이야기 중 일부에 관하여

 

2013년 10월 5일 오후 1:28

 

한가지. 타이밍 놓쳤던 것. 담에 기회 되면 얘기해야지... 하고 적어둔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을 '관전자'로서 볼 때 피해자와 지지모임으로서는 감정, 정서의 문제라는 말. 듣고 보면 일부는 맞고 일부는 아닌데, 맞다는 면에선 우리 몸이 대부분 물로 이루어졌듯 감정이 우리 존재의 많은 영역을 차지할 터...라는 점 정도에서.

 

아닌 면이라는 건... 그렇게만 말할 수 없다는 것. 그렇게 '일부'화, 즉 축소, 해서 얘기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 사실 그 사건과 그를 둘러싼 이야기와 해석과 반응과 작용의 문제들은 애초 어떤 '존재'를 위협하고 침범해 들어오는 문제, 그러니까 매우 실존적인 현장 권력관계의 문제, 그리하여 그 구성원이 속했던(!) 조직을 이루는 방식이나 그 밑바탕의 근원이 어떻게 생겨먹었나 하는 문제, 그래서 (권김현영 추천사가 말하듯) 민주주의의 문제라는 것.

 

마찬가지로 그 문제를 '어디까지나 관전자로서 말하건대...'라거나 '일단 난 잘 몰라! 그런데...' 하고 거리낌 없이 말을 편히 뱉을 수 있는 사람과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화들짝하고 마음 한구석이 아리고 저리고 서러울 수 있는 사람 사이의 이 사회를 이루는 각 구성원으로서의 (당연하게도 '감정/정서' 또한 포함된) 권력관계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 그래서 그런 말하기 내용이나 방식 또한 중요한 주제고 같이 돌아봐야 할 의제(감)인데 누구는 그렇게 보고 생의 문제, 실존의 문제로 밀착돼 있고 누구는 그렇게 보지(전혀 생각지도) 않는 거대한 차이. 거기에 많은 사람이 놓치고 침묵하고 모르고(또는 모르는 셈쳐서 마음 편하고 말고) 지나가는 진실이 (사람의 언어를 갖지도 못한 채 서럽게 울부짖고 온몸을 떨고 분노로 포효하며 겉보기 '우스운' 꼴로 버티고 겨우 숨 쉬며 당장이라도 죽어 넘어갈 듯 그러나 끈질기게 생사와 싸우며 존재하고 존재하고 다시금 존재하고) 있다는 것...

 

 

2. 영상
https://www.facebook.com/photo.php?v=604608649598878&set=vb.100001492463550&type=2&theater

 

빨갛고 노랗게 흩어진 낙엽이 날리는 눈발에 젖는
초조한 11월이다.
복잡한 마음의 한 자락을 적는다.

 

*
“운동사회 성폭력”이라는 표현이 왜 언뜻 점잖아도 보일 만큼 완곡하고(=진실을 왜곡했고) 그래서 불편한지 깨달았다. “운동사회 (안에서 ‘마침’ ‘뜻하지 않게’ ‘사고로’ 일어난) 성폭력”인 듯 쓰이기에 뭔가 답답하고 어떤 맥락에서는 역겨운 기분마저 드는 것이다.

 

괄호 안이 실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아닌가?
“운동사회(라는 구조가 앞장서 만들고 조장하며 비호/은폐, 그에 기생해 자기 구조를 다지는) 성폭력”

 

그러니까, “친족(~) 성폭력” “가정(~) 폭력” “데이트(~) 폭력” “부부 강간/폭력” “사내 성희롱” “교수의 학생 성희롱” ... 이런 경우에도 모두 마찬가지다. 현재의 가족/친족 등 그 제도와 문화로 얽힌 관계, 그 질서가 만들고 조장하며 적극 비호/은폐해, 그에 기생해 자기 구조를 연명하며 공고히 하는 폭력. 그래서 기존 틀/구조 입장에서야 전혀 피해에 관해 방치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아니 나아가 문제의식을 느끼거나 인지하거나 공부하거나 해결할 이유가 당최 없는 폭력이다. “학교 폭력”도 이와 같은 구조로, 그렇게 당사자들이 겪고 있는 깊고 커다란 절망의 진실을 그럴듯하게 은폐하는 말로 쓰이듯.

 

그래서 (밀린 제목안이지만) ‘썩은 사과 상자’의 위기의식을 느끼고 당장 이것을 ‘단지 썩은 몇 알의 사과를 골라내어 자정하는 작업’이 아니라, 이 ‘썩은 상자’ 자체를 어떻게 할 것인지, 새 상자를 짜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금의 썩은 상자 속의 나는 얼마나 썩어 있는지, 내 안의 얼마만큼이 곪아 썩어 터져 있는지부터 봐야 한다.

 

아프고 두렵다. 글을 쓰려고 하면 단 것만 당겨서 초콜릿 하나를 다 먹어버렸다...
가을하늘 상쾌하게 열어젖히길 기다려주지 않고 추워지는 날씨, 펑펑 쏟아지는 눈발을 보며... 피해생존자 샘이 조직에 복귀하기 요원하게도 아직 기존의 모습대로 돌아가기 바쁜 체계적이고 관료적인 조직을 생각한다. 그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한 줌의 사람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책에서 많이 아픈 부분을 따왔다. 따끔따끔하고 한 맺힌 대목들이 여기만은 아니지만...
특히 피해생존자 당사자인 심촌 샘의 글 ‘잔설에 핀 노오란 복수꽃―차갑고 따뜻했던 내 삶의 이야기’(25~157쪽)에서는 어느 하나를 발췌하기가 어렵다.

 

*
"글을 마주 대하며 몇 날 며칠 힘겹게 지냈다. 글은 단박에 읽어낼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하게 충격적인 사건을 다루고 있었지만, 문체는 담담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한 쪽 한 쪽 넘길 때마다 나는 수도 없이 놀랐다. 눈을 의심할 정도로 이어지는 줄글에 말문이 막혔다. ‘정말 이게 가능해?’ [...]
피해를 가중시키는 방치와 묵살의 공모共謀 연장선은 인간에 대한 예의를 한참 벗어난 것이었다. 성폭력으로 인해 인식하게 되는 조직의 균열은 단순한 조직 보존 논리로 봉합될 성질의 틈이 아니다. 한 성性의 억압을 전제로 한 조직은 노동자의 이념인 평등과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없음이 자명하다. 여성의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 공동체에서 인간의 권리란 작동되지 않는다. [...]
피해자가, 타자가 고통받는다면 그곳은 이미 공동체가 아니다. 여성의 육체에 대한 자기 소유가 여성의 권리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공동체 자체가 성폭력을 재생산하는 구조다."
_ ‘지지하는 목소리―네 번째’(이황현아), 554~557쪽

 

“피해생존자는 위원장을 만나 홈페이지의 글들이 자신을 고통스럽게 한다고 토로하였다. 피해생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글들 때문에 잠 못 이루고 밥 못 먹는 나날이 계속되어 이를 호소한 것이다. 그런데 위원장은 피해생존자의 요구인 양 홈페이지 관리자에게 2차 가해 성격의 글뿐 아니라 성폭력과 관련한 모든 글을 삭제하도록 지시했다. 심지어 ‘나 자신도 피해생존자이며 아직도 고통스럽게 살고 있고, 피해생존자를 지지하며, 2차 가해를 하지 말고, 지도부는 똑바로 하라’는 또 다른 조직 내 피해생존자의 글도 삭제된다. 글쓴이가 피해생존자에게 개인적으로 동의까지 얻고 올린 글임에도 가차 없이 삭제됐다.
사진에서 보듯 게시판의 글이 위원장의 지시로 무자비하게 삭제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면서 논쟁은 중단됐다. 조합원들은 이후 침묵·방관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세 가지를 든다. 첫째, 사건에 대해서 잘 모른다. 둘째, 말하면 2차 가해로 비난받을까 두렵다. 셋째, 사건에 별 관심이 없다. 결국 반성폭력 감수성이 떨어지는 데서 나온 냉소적 입장은, 여기에 정보마저 없어 공론화가 제대로 안 되는 통에 더욱 최악으로 치닫게 되었다.“
_ ‘전교조의 사건 해결 과정 평가 1’, 254쪽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 뽑기 100인 위원회’(100인위)가 운동사회의 가부장성과 성적 폭력에 문제 제기한 지 채 10년이 지나기도 전에 벌어진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은 그야말로 100인위가 지적했던 운동사회 성폭력의 구조적 특징과 진행 과정상 문제들을 총집합해놓은 종합판 같았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조직적 타격의 위험성이 적은 여성 조합원에게 수배자 은닉을 요청하는 방식이나 그 특수한 상황을 이용하는 조직 간부의 성폭력 행태는 이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이 운동사회에서 여전히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는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위계 구조와 그 폭력에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피해자가 처한 상황보다 조직 보위를 우위에 두고 행동하고, 자신에게 징계나 위험이 처하면 권력을 이용하여 집단적인 반발을 조직하는 2차 가해자들의 태도 역시 100인위의 사건 공개 이후 나타났던 방식들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_ ‘반성 없는 운동사회가 다시 반성 없는 진보정치로 – 정진후 사건을 반드시 되짚어야 하는 이유’(나영), 497~498쪽

 

“집회에서 백서 발간 후원금을 모금할 때 앞자리를 차지한 정치인이나 핵심 간부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데 선뜻 일어나 호주머니를 털어 꾸깃꾸깃, 한 푼 두 푼 쥐여주신 나이 드신 청소노동자 분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살뜰한 후원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있어 피해생존자 동지가 그동안 받은 상처로 뼈를 깎는, 죽을 듯한 고통에서 일어나 이 자리까지 뚜벅뚜벅 걸어 나와서 자신의 목소리를 이 책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_ ‘여는 글’, 21쪽

 

“남성 간부들에게 여성 활동가들이 절실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처럼 위원장 선거 시기에 동반 출마할 여성을 찾기 위해서죠.”
_ ‘인터뷰 #2’(전교조 조합원 OOO 선생님), 434쪽

 

“피해생존자는 그러한 시나리오를 받아들여 진술할 수 없다고 했으나, 대책을 논의하던 그들은 집요하게 허위 진술을 강요했다. 성폭력이 발생한 것은 피해생존자에게 허위 진술을 강제하려는 논의 직후였다. 발생 상황을 살펴보면, 피해생존자에게 가한 폭력이 단순히 김**의 ‘성욕’ 때문이 아님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조직의 보위를 위한 ‘대책’을 군말 없이 따르지 않는 사람에 대한 협박이었다. [...]
만약 노동운동 공헌을 이유로 가해자의 책임을 축소한다면, 조직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가해자의 경우, 자신의 과오에 책임질 상황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 어떤 2차 가해자는 “개인적으로는 사과할 수 있으나, 직함을 걸고 있는 조직의 이름으로는 사과하기 어렵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정황은 모두 조직의 도덕성이 훼손될 것에 대한 두려움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 두려움 때문에 조합원 개인의 권리를 억압하는 조직 문화가 유지된다면 오히려 앞으로 제2, 제3의 사건들이 발생할 가능성만 높아질 것이다. [...]
성폭력 사건의 해결 원칙 중 하나인 ‘피해자 중심주의’란 개념은 완전한 중립성과 객관성에 대한 믿음과는 배치되는 관점이다. 사람들 사이에 권력관계가 존재할 때에 완전한 중립성이나 객관성은 존재하기 어렵다. 중립적, 객관적이라고 여겨지는 사실도 이미 기존 권력관계와 그에 따른 사고방식을 답습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을 때 자본가의 입장을 동등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철거민들의 투쟁에서 건설업체의 입장을 고려하여 중립적 입장을 취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형식적 중립성이 실제로는 비대칭적인 권력 관계에서 노동자와 철거민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부장적인 논리가 손쉽게 정당화되는 중립성과 객관성은 가해자의 논리로 치환되기 쉽다. [...]
아직 지지모임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달성되지 않았다. 피해생존자 치유의 길은 멀고도 멀다. 피해생존자가 활동에 복귀할 수 있을 만한 조직의 변화는 요원하다. 제대로 된 반성 없는 2차 가해자들의 복귀, 3년 형기를 채운 가해자의 석방 등이 피해생존자에게 각기 또 다른 불안 요인임은 물론이다. 법적인 형벌 이외에 피해생존자에 대한 접근 금지와 같은 정서적 안정을 위한 조치들이 필요하건만, 조직은 딴청만 피운다.”
_ ‘맺는 말_ 일방통행은 언제나 위험했다’

 

“만약 아프지 않은 상처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생명체에겐 가장 치명적인 상처가 될 것입니다. 상처는 아파야 하고 그 아픔이 생명체의 모든 에너지를 상처 치유에 집중시키는 신호가 됩니다. 2008년 12월에 발생한 상처는 아직도 뜨끔뜨끔한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조직, 민주노총의 건강이 걱정된다면 상처가 보내는 신호에 집중해야 합니다.”
_ ‘지지하는 목소리―첫 번째’(김성보), 166~167쪽

 

전교조가 초심을 잃어 문제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순간 머릿속에는 보수 언론에서 전교조를 공격하던 여러 가지 논리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전교조가 어떤 면에서 초심을 잃었다고 생각하시나요?”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았잖아요.”
예상 밖의 대답이었다. 대부분은 전교조가 너무 정치적이라거나 ‘친북좌파’라거나 왜 싸우기만 하냐는 등 사실을 왜곡하는 내용이었는데,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을 이야기하다니…… 순간 전교조 바깥에서 일반인들도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미쳤다.
_ ‘지지하는 목소리―세 번째’(오정희), 504쪽

 

“움츠러들 대로 움츠러든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을 것 같은 무기력한 사람으로 되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때 나의 입장을 공감하고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는 성소수자 동료들이 아니었다면 나는 치유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아마 대다수 성소수자들이 그렇게 자신의 ‘피울음’을 참으며 억울함을 감당하며 삶을 버틸 것이다. 이 사회가 성소수자의 입장에 서 있지 않기 때문이다. [...]
적어도 ‘진보’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더 키워내고, 사회가 등 돌린 사건을 밝히고, 무엇보다 가장 폭력적 형태의 성차별인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장 힘없는 자의 입장에 서는 것, 가장 발언권이 없는 자의 편에 서는 것, 가장 승산 없는 사람의 편에 서는 것이 왜 중요한지 ‘진보’라면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_ ‘지지하는 목소리―세 번째’(곽이경), 513쪽

 

 

3. 사진, 글
[고통에 관해 말하기,
아직 한참 먼 화의 갈 길]

 

 

사용자 삽입 이미지

 

 

레드리본과 비슷하게 생긴 블루리본을 보았다. 젠더폭력은 성폭력이 아니라는 둥 말 같지도 않은 소리들도 언제까지 들어야 하나. 고민으로는 젠더 개념을 넘고 싶지만, 몸의 현실, 몸이 살아가는 세상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절벽 아래 아득히 보이지도 않을 만큼 후졌다. 오히려 "단순"(?)폭력에도 젠더의 온갖 권력관계와 모순과 갈등과 경합이 들어 있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아래는 열받은 "피해자"의 분노의 문자. 매일매일 순간순간 나일 수도 있고 너일 수도 있는, "가해자"에게 바침. 피해자다운 게 뭐니 하는 것들도 주둥아리를 다 틀어버리고 싶...

 

"네가 말하는 나에게 할도리가 뭔지 다 못하고 있다는 말은 뭔지 그 입에 발린 말뿐인 소리들 듣기 싫어

네가 책임을 통감하고 할것을 제대로 감당하고 최대한 책임져내는 방식이 아니라 마치 내가아프고힘든게 불쌍해서 도와주겠다는듯한 동정적이고 시혜적인태도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어!

무책임하다고! 그게 가장 큰 문제야!

그 사건들을 당하고도 혼자 남겨지기보다 너랑 일을 계속 잘해보려하는게 그나마도 덜(?) 고통스러웠던 내 입장 처지를 니가 아냐고! 상상이나 해?

너의 문제, 너의 책임, 네가 마땅히 고민할문제 책임 다할문제 언제까지 내가 일일이 생각해서 이건 이렇고 저렇고 잘못이고 혼내고 선생처럼 뭐야

이런 구도가 뭐냐고! 이 자체가 싫어!

뭐라도 하려다가 다쳐서 비명지르는 환자에게 빨간약 발라줄까요 그러고있고 사탕이나 던져주냐고!

너의삶에서 다른 사람에게 책임묻고 싸울 게 있으면 가서 싸우더라도 비겁하게 지보다 만만하니까 막 휘두르지 말라고!

니가 내 결정권 신체자유까지 박탈하고 들어오지 않아도 충분히 살기 힘들다고! 나는 살아온 역사와 상처의 기억이나 아픔이 없는줄알아? 자기 삶만큼 고군분투하면서 산다고!

내가 지금 힘들다고 내돈들여 병원다니고 상담다니고 악몽꾸고 일못하고 울고 하기 억울하고 괴롭다고 나도모르게 그랬다고 나보다 약한사람 치고 땡깡부린다음에 내팽개치고 그사람에게 내가 둔감해서그래 어쩌고 하면 그 맞은사람 기분은 어떨거같니?

내인생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고 사람이 그럴수도없는건데 내몸을 왜 함부로 했냐고! 그러고 한참 맨날 정당화하고!

내몸이 니꺼냐고! 니몸만 가지면됐지 내몸에 왜 함부로 손을대! 그것도 아프게 막 치고 밀고 하는 힘을 내몸에 왜 써! 나쁜새끼야! 내앞에서 안경이나 오렌지 다 있능힘껏 투수 힘으로 던질때 내가 그 안경이나 오렌지가 된 처참한 치욕을 니가 알아?"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