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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불안정한삶,비정규직을읽는다_시민독서프로젝트

1. 시민 독서프로젝트의 제안

      "동일한 주제로 모두 함께 책을 읽어봅시다."
 우리는 책을 좋아하는 시민들의 모임입니다. 우리는 책을 통해서 세상을 배우고, 책을 통해서 세상과 소통하며, 책을 통해서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동료 시민들께 올 가을 하나의 독서 프로젝트를 제안합니다. 책을 통해서 지금 우리 시대, 우리 사회가 나아가는 길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모두가 동일한 주제로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교환해 봅시다. 생각이 다르고 느낌이 다를지라도 시민들끼리 지적으로 소통한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책의 힘임을 우리는 믿습니다.

2. 새로운 독서 운동의 시작


    
  "우리를 치장하는 독서가 아니라 우리를 바꾸는 독서를 해봅시다.”
우리는 교양에 반대합니다. 우리는 지식으로 우리 정신을 치장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그 대신 우리를 공부하게 하는 지식, 우리를 이전과는 다르게 바꾸어주는 지식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나무를 소비하고 인간 정신을 낭비하는 소비재로서의 책이 아니라, 사람과 세상을 새로 만드는 생산재로서의 책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부딪힌 문제에 개입하는 책, 우리로 하여금 문제를 새롭게 보도록 자극하는 책, 그런 책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책에 길이 있다는 말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로 길을 찾고 있을 때, 아니 우리가 정말로 새로운 길을 발명해야 할 때, 책을 읽어야 한다고 감히 제안 드립니다. 우리는 ‘생각없는’ 독서, ‘방향없는’ 독서, ‘긴장없는’ 독서에 반대합니다. 모두가 동의하고 모두가 공감하는 문제를 다루는 무난한 독서에 반대합니다. 우리는 오히려 갈등이 집약된 문제, 도무지 방향을 알 수 없는 문제, 그런 문제들과 관련해서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야말로 책이 갖는 힘, 시민들의 지적 소통이 갖는 힘이 발휘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3. 독서 주제


    
"비정규직으로 상징되는 현재 우리 삶의 불안에 대해 읽고 토론해봅시다."  
처음으로 시도되는 독서 프로젝트 주제를 우리는 ‘비정규직으로 상징되는 우리들의 불안한 삶’으로 잡았습니다. ‘비정규직’과 ‘불안’이라는 단어를 열쇠말로 제시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비정규직’은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현안 중의 하나입니다. 이미 우리 국민들 중 상당수가 비정규직에 종사하고 있으며, 정규직인 경우에도 비정규화의 불안 속에 살고 있습니다. ‘KTX 사태’와 ‘이랜드’ 사태는 우리 사회가 앞으로 경험하게 될 갈등의 예고편으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비정규직’이라는 말은 자칫 우리로 하여금 현실을 오독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말 그대로 ‘비정규직’만의 문제라고 치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비정규직’이 하나의 상징일 뿐이며, 그 근저에 우리 삶의 불안이 놓여 있다고 생각합니다.
 
1997년 이른바 ‘IMF 사태’ 이후 점점 분명해지고 있는 사실은 우리가 지금 전환기의 위기를 겪고 있는 게 아니라, 영속적 위기 속에서 삶의 전환을 강요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체제를 위해 구조조정을 한 번 해야 했던 게 아니라, 영속적 구조조정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게 새로운 체제라는 겁니다.

도대체 우리 사회가 지금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불안한 이유는 시민인 우리가 그 길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그런 이유로 위정자들이 함부로 그 길을 정하기 때문이며, 그 길에서 우리 삶의 근거가 통째로 위협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차분히 생각하기보다 쉽게 일을 저지르고, 자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데 선뜻 동의하게 됩니다. 대통령부터 농민까지 모두가 불안한 시대. 불안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화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불안’이라는 말이 너무 추상적이고 포괄적일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비정규직’이라는 말을 앞에 붙이기로 했습니다. 한편으로 ‘비정규직’만을 언급할 때 토론의 폭이 좁아지는 것을 경계하고, 다른 한편으로 ‘불안’만을 언급할 때 논의가 긴장을 잃고 너무 추상적으로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이 두 말을 잇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가 현재 경험하는 ‘불안’이 ‘비정규직’으로 상징되는 우리 사회의 변화 방향과 긴밀한 것임을 알리고, 그것에 대해서 논의하자고 제안하기로 했습니다.

4. 시민들의 지식 네트워크


      "학자들이 지식의 위기라고 말하는 동안 시민들은 지적 능력을 키워왔습니다"
작년에 전국의 인문대학에서 ‘인문학 위기’ 선언이 있었습니다. 확실히 대학이 기업화 되고 시장의 상품 논리가 학문 세계에 들어오면서, 대학의 인문학은 큰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학 바깥에서는 오랫동안 새로운 가능성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시민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책 읽기를 즐기고 있고,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모임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가리 않고 수백 수천의 독서클럽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제도적 보장과는 관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을 좋아하는 연구자들 모임도 나타났습니다. 거기에 지역 도서관들이 새롭게 변모하고 있습니다. 과거 수험공부를 위한 열람실들은 사라지고 시민들 가까이에서 지식과 정보의 센터 역할을 하는 도서관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거기에 책을 만드는 출판사, 시민들에게 그것을 유통시키는 서점들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 모두를 ‘책 공동체’라고 부릅니다. 지금 이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우리들 모두가 그 공동체의 일원입니다.

바로 이런 시민들의 독서모임, 공부모임을 연결해보는 건 어떨까요. 우리는 그것을 ‘시민 지식 네트워크’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저희는 전문학자의 지식이 아니라 시민들의 지성이 세상을 바꾸는 더 큰 힘이라 믿으며, 그런 지성이 언제부턴가 매우 커져 왔음을 느낍니다. 각자의 생각이 다르고, 해법은 다를 수 있지만, 시민들이 지적으로 소통한다는 것, 그런 네트워크가 존재한다는 것, 그것을 이번 기회에 보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소통이 우리 시민들의 권리이고, 우리 시민들의 무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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