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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6월 19일, ‘평등·발전·평화’를 캐치프레이즈로 한 세계 여성대회가 멕시코시티에서 열렸다. 유엔이 정한 ‘세계 여성의 해’ 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대회에는 반다라나이케 스리랑카 총리와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 테레슈코바 등 세계 138개국에서 2000여명이나 되는 여성들이 참석, 성황을 이뤘다.
그러나 여성의 지위 향상이라는 공통의 목표는 같았지만 국가마다 여성이 처한 상황이 달라 관심분야에 큰 편차를 보였다. 여성대회였음에도 35명의 대회 최고위직 중 여성은 사무총장이 유일할 정도로 주요직을 남성들이 차지한 것도 문제가 됐다. 특히 멕시코는 남성을 대표로 파견하고 그를 대회 의장으로 선출해 빈축을 샀다.
첫 대회인 탓에 눈에 띄는 성과는 거두지 못했지만 세계 여성이 처음 한자리에 모였고 미스·미세스로 불리던 여성을 ‘미즈’로 통일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대회였다.
- 조선일보 2003년 6월 19일자 중
그렇게 쓰고 있으나, 이 대회는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부르주아 여성의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는 이상의 수준으로 나아갔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남성과 여성 사이의 평등을 이루고 교육과 기회의 제공과 경제적 권리에서 성차별을 받지 않도록 세계행동계획(a World Plan of Action)을 채택하였던 정도의 성과는 있었다.
UN 여성대회가 본격적으로 성주류화의 관점으로 나아간 것은, 나이로비의 제3회 대회였으며, 이후 제4회 북경대회에서는 더욱 발전된 행동강령을 작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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