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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는 어떻게만들어지는가..(우석훈)

좌파와 우파의 발생학적 고찰

 

우리가 좌파와 우파라고 부르는 것은 프랑스 혁명의 산물이다. 처음에는 회의 오른쪽에 왕당파들이 앉고 왼쪽에 공화파들이 앉았고, 나중에는 보수적인 지롱드파와 급진적인 쟈코벵파가 앉으면서 시작된 말이다.

세상에는 좌파와 우파만 있고, 회색지대는 없느냐? 그렇지는 않다. 극우도 있고, 극좌도 있고, 이런 방식으로는 분류하기 어려운 무정부주의나 아주 이상한 퇴행적 정치신념을 가진 사람들까지 다양하게 있다. 현재에는 대체적으로 자본주의가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우파를 형성하고, 역사적으로 자본주의는 진화의 마지막 단계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좌파를 형성한다.

생태주의에도 좌파가 있고 우파가 있으며, 여성주의에도 좌파가 있고 우파가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이다.

한동안 좌파는 무산계급에서 등장할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들도 많았는데, 21세기에 과연 그렇게 사람들의 의식을 재산 혹은 소유관계가 결정할 것이냐라고 질문하면 대답하기가 좀 어렵다. 70년대에는 '공유된 경험' 혹은 문화라고 생각하는 흐름도 있었는데, 이 말도 반드시 맞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좌파가 되고, 누가 우파가 되느냐? 가장 고전적인 자본론 방식의 설명을 차용하는 딱딱한 방법에서 DNA로 설명하는 약간 황당하지만 논리적 일관성은 가지고 있는 최근에 유행하는 방법까지 여러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그 어느 것도 정답은 아니다.

대체적으로 보면 청소년기에는 모든 사람은 약간씩 좌파가 되고, 직업을 가지고 생활을 하면서 모든 사람은 조금씩 우파가 되는 것 같다. 학교에서 행복한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 시절에는 누구나 다른 것들을 기원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구조에 대해서 저주하거나 반항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다 나이를 먹으면서 '순치'라고 하는 과정이 진행되고,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조금씩 우파가 된다.

물론 아주 특이하게 날 때부터 우파였던 것처럼 청소년기에 우파로 자라나고, 어른이 되면서 극우파가 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는 부지런하고, 성실하고, 거짓말 하기를 싫어하는 성격들을 가지는 것 같다. 내가 프랑스에서 만났던 극우파들은 개인적으로는 청교도 이상으로 도덕적이며, 무결점의 인간들이었다. 가죽옷을 입고, 오토바이를 타는 스킨헤드 한 명을 아는데, 이 친구는 전형적인 극우파인데, 스킨헤드들이 대학원 1등을 늘 하던 전통에 따라 이 친구도 공부를 아주 잘했다. 로그함수에 대한 아주 논리적이고 수학적인 정의를 나에게 알려준 프랑스 친구가 바로 이 스킨헤드였다. 물론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극우파들은 게으름뱅이이고, 거짓말쟁이이고, 협작에 도가 튼 사람들이 많다. 진정한 극우파는 예술적 감성이 뛰어나고, 아주 민감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극좌파들도 몇 명 아는데, 내가 프랑스에서 만났던 극좌파들은 남자나 여자나 황홀하도록 아름답게 생겼다. 극좌파는 조직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주 많은 재능을 타고 태어난 사람들이 극좌파가 된다는 생각을 몇 번 한 적이 있다. 재능이 많은 사람들 특히 지적능력과 신체적 아름다움을 두루 갖춘 사람들 아니면 극좌파라는 정치적 신념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최근의 수 십년을 제외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극좌파임이 드러났을 때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유지하기가 어렵고, 조금만 위로 올라가면 공개적이고 가혹한 테러에 의해서 목 달아나는 경우가 많았다. 보고만 있어도 눈물이 흐를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라면 목숨을 부지하기가 어렵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 혼자 사는 아름다운 여인을 마녀라고 부르며 가혹하게 처형하던 전통을 분명히 인류사 특히 서양인류사는 어두운 과거로 가지고 있다. 모든 극좌파가 아름다운가?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내가 아는 프랑스 극좌파들은 모두 눈물이 흐를 정도로 아름답게 생겼고, 아주 미성들을 가지고 있어서,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그대로 시일 정도로 선율과 실루엣이 멋진 사람들이었다.

우파의 경우는 평범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모든 사회는 좌파로 태어난 청소년들을 길들여서 우파로 만들기 때문에 그냥 가만히 시키는대로 있으면 자연스럽게 우파가 된다. 우파로 세상을 살아가면 편하기 그지없고, 정신적 고통은 별로 없다. 마녀사냥에 나설 때에도 뒤에서 박수치고 있으면 훌륭한 한 명의 우파로 기능하게 되고, 취직하고, 친구 사귀고, 적절한 소비를 하면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그냥 가만히 있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파가 된다.

우리나라가 유럽 사회와 다른 것은, 가만히 있으면 극우파가 된다는 사실이 다르다. 유럽의 극우파들은 어쨌든 자기 논리와 자기 감정이 분명하고, 호불호를 자기 논리로 가지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의 극우파는 엄앵란에서 젊은 MC들에 이르기까지 평범하기 그지없고, 때때로 발음도 제대로 못한다. 한국은 중도가 개혁파이고 진보주의자라고 그러는 나라이기 때문에 모든 것들이 전부 우경도되어 있고, 그래서 평범한 우리나라의 우파가 국제 기준으로는 극우파 정도 되는 것 같다. 조선일보 읽으면서 조선일보에서 시키는 대로 퓨전 레스토랑에 가면 유럽식 우파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식 극우파가 된다.

유럽에서도 극우파는 부동산 투기는 안하는데, 한국의 극우파는 유럽의 평범한 극우파들이 지키는 개인적 소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변종들이다. 세상에 어느 나라 극우파가 자기 자식들을 변성기도 겪기 전에 미국으로 보내서 어학연수 시키는 나라가 있느냐? 중국 극우파도 그 정도는 아니고, 일본 극우파는 그 정도도 아니다. 극우성향이 평균이 된 평범한 우파들의 구조라고 봐야 일관된 발생론적인 설명을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좌파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유럽의 경우라면 '3대째 노동자', 즉 three-generation worker라는 기준을 가지면 대체적으로 정확하다. 할아버지 노동자, 아버지 노동자이면, 자식 노동자는 거의 정확하게 좌파가 된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유럽에서 3대 노동자인데, 이 중의 일부가 극우파도 되고, 우파도 되고, 결국은 국민의 50% 정도가 좌파가 되는 셈이다. 일반적인 유럽 정치 지형에서 좌파는 숫자는 많지만 여러 당으로 분할되어 있고, 우파는 숫자는 적지만 경제적 권력이 강하다. 유럽에 좌파 지식인이 많은 것은 지식권력만큼은 좌파들이 우파들에게 혁명 이후로 뺏긴 적이 잘 없기 때문이다. 영국의 의사, 독일의 변호사, 모두 3대째 노동자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데, 사회적으로 영국의 의사와 독일의 변호사는 모두 노동자들이다. 월급도 노동자 수준이고, 공무원처럼 국가에 소속되지만 자신은 노동자라는 의식이 강하다. 대문자 P로 시작되는 프랑스의 국립대학 Professor들은 6개월 이상 계속되는 시험을 봐서 교수가 되고, 데리다가 이 시험을 3수만에 겨우 붙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이런 정교수들은 정년이 보장되지만, 임금은 결코 프랑스의 평균 노동자임금을 넘지 않고, 이들도 고용이 안정되고 책을 낼 수 있다는 사회적 명예만을 갖지, 경제적 권력까지 갖지는 않는다. 많은 경우 자신을 노동자 혹은 노동자의 대변자라고 생각한다.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들어준 니꼴라이 선생은 코르시카 노동자의 아들이었다.

우리나라에는 3대째 노동자가 거의 없기 때문에 좌파는 사회적으로 발생하지 않고, 공유된 경험을 통해서 일부가 발생하고, 공부하다가 자신의 학문의 결론으로 좌파가 되거나, 아니면 고등학교 이후에 진행되는 '순치'를 거부한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 좌파가 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극좌파가 아주 적고, 희한하게도 좌파가 적다는 것이 당연하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좌파로 청소년기를 보내다가 우파로 취직을 하게 된다. 이런 구조는 21세기 이후의 문화의 재생산구조와 결합되기 때문에, 지금 20대에서 좌파는 천연기념물인 셈이다. 지금 20대의 좌파는 공유된 경험이나 출생의 유래에 의해서 좌파로 자라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순치를 거부하고 자신의 철학적이거나 정치적인 선택을 한 셈이기 때문에, 80년대에 공유된 경험으로 대량배출된 좌파에 비해서 더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확률적으로 높다.

10대에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누구나 좌파의 의식을 가지게 되고, 자신의 구조를 거부하게 된다. 그리고 20대에 특별한 재능으로 자신을 지킬 수 없던 사람은 자연스럽게 우파가 되는 것이 현재의 구조인데, 이 때의 우파는 국제적 표준에 의하면 극우파인 셈이다.

이러한 구조에서 순치를 거부한 좌파들이 생활인으로서의 삶을 조그맣게라도 꾸릴 수 있는 곳은 예술과 학문 정도이다. 이곳에서는 '생산'이 '모방'보다 칭송받고, 구질서를 깨트린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대접받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물론 예술이나 학문이라고 평탄치는 않지만, 이곳이 현재 아주 좁은 경로를 따라서 이미 좌파가 된 20대가 비로서 작은 숨이라도 쉴 수 있는 공간이다.

# by 비나리 | 2007/07/24 01:39 | 파라독스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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