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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6/13
    냉장고 없이 여름나기(1)
    미뜨라

냉장고 없이 여름나기

냉장고 없이 여름나기


  교무실에 선풍기가 들어왔다. 교실엔 이미 지난 주부터 선풍기가 돌기 시작했다. 섭씨 삼십 도를 넘나드는 때 이른 더위 탓이리라. 하지만, 나에게는 다시 선풍기와 에어컨과의 싸움이 시작되는 걸 의미한다.

  새삼스레 가족과 혼자 떨어져 자취 생활이 어느새 두 해 여름에 접어든다. 지금 우리 방에는 선풍기는 물론 냉장고도 없다. 우리 방에서 세상과 소통하는 건 라디오와 휴대폰 분이다. 화장실과 부엌으로 난 문을 빼놓곤 그 흔한 창 하나 없이 단절된 어두운 공간이다. 

  작년에는 쓰다 버리는 냉장고를 구하기 위해 게시판에 광고도 내고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도 해보았다. 하지만 끝내 나와 인연이 맞는 냉장고와 만나지 못했다. 그래도 식중독 한 번 걸리지 않고 무사히 여름을 보냈다.

  얼마 전에 우리 동네 중고 물품 가게에 들어 냉장고 값을 물어보니 최소 팔 만원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돈도 돈이지만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 떨떠무레하게 대답하는 주인(직원?)의 말에 더 이상 물어볼 마음도 없이 나와 버렸다. 

  그래~ 올해도 냉장고 없이 한번 지내보자. 밥은 이틀 치를 넘기지 않게 짓는다. 어릴 적에는 보리를 미리 삶아 시원한 곳에 매달아 놓고 쌀밥을 지을 때 얹어서 먹었다. 그런데, 여름, 특히 장마철에 가끔 쉰 밥이 생기기도 했다. 그럴 땐 밥을 다시 끓여서 먹으면 괜찮았다. 김치는 일 주일 정도 지나도 먹을 만하다. 다른 밑반찬은 사흘을 넘기지 말고 먹어야한다. 또, 반찬은 매끼마다 먹을 만큼 덜어서 먹으면 상하지 않고, 국도 마찬가지다.

  또, 새로운 방법이 생각나서 올해는 실천하는 게 있다. 아침에 도시락과 함께 일용할 반찬을 직장으로 가져가서 휴게실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이다. 그리고 퇴근할 때 다시 가져가서 저녁과 아침을 먹고 다시 가지고 오면 된다.

  찌개와 간단한 요리를 위해 필요한 마늘과 고추, 파도 냉장고에 넣어두지 않으면 쉽게 상한다. 특히 시중에 파는 깐 마늘도 사흘 정도만 밖에 두면 당장 곰팡이가 피기 시작한다. 이런 양념도 마찬가지로 직장 휴게실 냉장고에 잠시 보관해두고 필요할 때만 꺼내서 요리를 하면 된다.

  유월이 지나면 텃밭에서 고추, 파, 상추, 쑥갓, 근대, 열무, 배추, 깻잎 등을 매일 바로 수확할 수 있어 양념이 상할 염려는 줄어든다. 그러고 보니 올 가을에는 우리 밭에 양파와 마늘을 한번 심어봐야겠다. 

  냉장고 없이 살면 좋은 점을 생각해본다. 일단 전기세가 적게 나간다. 물론 내가 냉장고를 쓰지 않는다고 공동 생활하는 다가구 주택에서 전기세를 적게 내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에너지를 절약하고 전기세를 적게 내야 하는는 건 사실이다. 다음으로 방이 조용해서 좋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를 듣지 않아 숙면을 취할 수 있다. 셋째, 음식을 적게 섭취하게 된다. 냉장고 없이 일식 삼찬 이상 해먹기 어렵다. 기껏해야 두 가지 반찬이면 족하다. 따라서 소식을 하게 되고 건강에도 좋다. 마지막으로 계획적인 생활을 가능하게 한다. 밥을 할 때 이틀 이상 넘기지 않게 쌀을 안치려면 항상 하루, 이틀 뒤를 생각하면서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며 사는 현재는 항상 긴장되고 최선을 다하며 살게 마련이다.

  냉장고가 있어야 행복하게 산다는 생각을 버리면 얼마든지 냉장고 없이 생활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해 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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