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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24
    키가 조금 자란 것 같아(2)
    투덜 투덜
  2. 2009/03/07
    트레인스포팅 - 신나게 놀자(2)
    투덜 투덜

키가 조금 자란 것 같아

만일에 아주아주 작은 꼬마 사람이 있어서

엄청 커다란 무지개 위를 가로질러 간다면 어떨까?

 

자기가 있는 곳은 빨간 나라라고 처음에 그는 생각하겠지.

그렇게 이런저런 딴 생각을 하고 노래도 부르며 몇날며칠을 걸어가다가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 보면 주위는 이미 주황색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나름대로 신경 써서 주변을 살펴 보며 걸어가지만

도대체 언제부터 노란 나라가 되는지 그 정확한 시점을 집어내는 것은 쉽지가 않다.

무지개는 굉장히 크고 그는 무척 작기에

걸어가면서 그는 할 일이 많은 것이다.

 

밥도 먹어야 하고

놀기도 해야 하고

생각도 하고

기분이 좋으면 춤도 추고 등등.

그리고 어느 순간 깜짝 놀라 소리치게 되는 것이다.

 

'와, 내가 초록색이 되었어!'

 

-유시진의 '그린빌에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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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만화책 중 하나인

유시진의  '그린빌에서 만나요'

오랜만에 '그린빌...'을 다시 읽었다.

또 읽어도 새록새록하고 참 좋은 책.

 

자신의 관찰, 관계의 관찰, 자신의 변화, 관계의 변화에 대한(라고 읽히는)

세밀한 이야기.

 

책을 읽으며 집에 들어오는 길.

키가 조금 큰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기분 좋아졌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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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관계맺기에 참 서툰 나.

그래서 나도 타인도 힘들게 하기도.

그런 자신을 싫어하면서 쉽게 바꾸지 못한 나와 관계맺기.

패거리를 싫어하면서 소외되면 불안해하는 이율배반적인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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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서툴지만 돌아보니 변해있었어.

많이 넘어지고 깨지고 울기도 화내기도 했는데

조금은 변했어.

 

작아서 보지 못했고

노느라 보지 못했고

생각하느라 보지 못했고

화내느라 보지 못했고

우느라 보지 못했는데

조금은 변했어.

 

키가 조금 자란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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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년동안 많이 피패해져있었고

흉폭해져있었어.

그리고 부정했지.

 

'난 잘못한 게 없어. 다 너희들 탓이야!'

 

시공간이 변했지만 그 4년의 '다크포스' 주변에서 맴 돌고 있었고

또 부정했어.

 

'그 때의 내가 아냐!'

 

하지만 또 넘어졌어.

 

처음에는 나를 고쳐야 된다고 다독였고

또 넘어져서는 화가 났어.

또 넘어지니까

풀이 죽어버렸지.

 

다리도 많이 까지고 가슴에 상처가 나기도 했고

넘어지면서 다른 사람 다리도 걸었어.

 

그래도 보지 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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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넘어지면서 계속 아프기만 할 줄 알았는데

다리에 새살이 돋았고 가슴도 튼튼해졌다는 걸 알았어.

 

이제 그 4년을 미워하지만은 않을 수 있게 된 것 같아.

잘못은 나에게도 있었다는 걸 알 수 있게 된 것 같아.

최고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최악에 가까웠지만

악전고투했다는 것도 알 수 있게 된 것 같아.

4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다는 걸 알 수 있게 된 것 같아.

그리고 조금은 변해있는 것도 알 수 있게 된 것 같아.

 

다행이야.

 

'4년간의 나와 관계'랑 쑥스럽지만 악수하고 있는 모습을 봤어.

어색해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지만

다행이야.

 

쑥스럽지만

나에게 칭찬이라는 선물을 주고 싶어.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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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한 나와

나를 지켜준 사람과

같이 넘어져 준 사람과

넘어지는 나를 보아 준 사람과

손을 내밀어 준 사람들에게

 

쑥스럽지만

비록 그들이 듣지 못하지만

'고맙다'고 말할래.

 

"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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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화'가 많이 남아있지만

'화'라는 놈과 친구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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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조금은 자란 것 같아.

이 느낌 간직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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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인스포팅 - 신나게 놀자

 

 

 

1997년 서울에 있는 4년재 대학교에 입학했다.

공부를 매우 잘 하지도 않고 특별히 거친 청소년기를 보내지도 않았던 나에게

대학은 '놀기 위한 무대'를 위한 변화일 뿐이었다.

스무살의 젊은을 탕진하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였다.

 

당시 최대의 놀잇감은 영화와 음악, 술이었다.

성인인증을 받은 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영양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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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함과 따뜻함이 동시에 퍼져 무료하게 하던 입학 초

수업을 땡땡이 치고 친해지기 시작한 친구 네명과 영화관을 향했다.

한 놈의 강추로 관람한 '트레인스포팅'

감각적인 포스터때문에 모두들 맘에 들었 했다.

강추한 놈도 영화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까지 엄청나게 수다를 떨었고

조명이 꺼지면서 영화가 시작되서야 우리는 수다를 멈췄다.

심장이 뛰는 듯한  이기팝의 '러스트 포 라이프'의 전주가 퍼지면서

이완맥그리거가 뛰어갔다.

 

나의 심장도 같이 뛰었다.

멍때리고 영화에 빠져드는 건 당연한 순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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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 주인공들은

영화와 음악, 술을 탐닉하는 것은 나와 같았지만

이들은 마약과 섹스라는 '놀잇감'이 더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의 놀잇감을 탐닉하기에는

소심하기도 했고 능력도 부족했다.

하지만 탐닉하다 부서지는 영화 속 그들의 젊음에 대한 무슨무슨 감정이 들기 보다는

그들이 노는 모습이 그저 좋았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온 친구들의 반응은

'이게 뭥미'였다.

 

한 놈은 '처음에 신났는 데 결말이 뭔 말을 하는 지 모르겠어'

한 놈은 '역겨워'

한 놈은 '영화로 재미는 있는 데....'

 

유일하게 나만 침 흘리면서 나오며 열광했다.

뭔가 부족해보이는 친구들의 반응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젊음이 죽을 듯이 놀다가 뽀게지기도 하는 거고

무엇보다 간지나는 화면과 패션, 음악이 있는 데

뭘 더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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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이었기에 '트레인스포팅'에 미친듯이 열광했겠지.

30대가 된 지금 '트레인스포팅'보다 더 죽이는 영화를 봐도

열광하지는 못할 것이다.

 

스무살 젊음을 함께 불사르던 그 친구들은

결혼을 해 아이를 기르고 있다는 소식이 듣기도 한다.

얼굴을 안 본지도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더 이상 스무살 젊음의 '무엇'이 사라진 나에게

'트레인스포팅'을 기억하는 것은

당시를 되새김질하는 즐거운 여흥과

나이를 먹어가는 '무엇'을 느끼는 과정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아직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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