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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겨울이었다.

신림동 살 땐 신림역까지 걸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특별히 운동도 안하는데 걷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뒷산을 넘어가면 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내가 시간에 얽메여 사는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러다 이 녀석을 만났다.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경계를 무척 많이 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천하장사 소세지' (한 때는 가방에 늘 넣고 다니던 때도...)

천하장사를 잔뜩 먹고 나더니 경계를 풀었다.

녀석 행색를 보니 집나온 것이 거의 확실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근처 가게 아주머니에게 물어봤다.

이동네 개는 아니고, 며칠전부터 동네에 나타나 떠돈다는 거였다.

그래서 집으로 데려왔다.


물론 이 모습은 목욕을 시킨 후에 찍은 것이다.

정말 더럽고, 엉덩이에는 똥딱지가 더덕더덕 붙어 있어서 가위로 털까지 잘라냈다.

 

코가 반쪽만 까맣고 좀 돼지코처럼 생겼다. (발로 잡고 있는 것은 개껌)


인터넷에 올려 입양시키기 위해서 사진을 찍었다.

인터넷에 올리기 전에 원래 가족을 찾았으면 하는 마음에 사진을 넣은 전단지를 만들어 녀석을 발견한 동네에 붙이기도 했으나 연락은 오지 않았다.



냥이에 비해 강쥐는 널리 사랑받는 편이라 입양을 걱정하진 않았다.

그전 경험에 비추어 봐도 강쥐는 연락이 너무 많이와서 골치 아플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인터넷에 올렸는데 전화 한통 없는 거였다.

이유를 알아냈다.

KBS에서 방영한 '환경스페샬' 때문이었다.

'개회충'에 관한 끔찍한 내용을 담고 있었고 그걸 본 사람들이 충격을 먹은 것이다.

개회충알이 어린아이의 몸안에서 부화해 몸속을 타고 머리쪽으로 가서 실명한 사례등 정말 개를 가까이 하고 싶지 않도록 할만한 내용이었다.

 

그 프로그램에 화가 났다.

개회충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한 취지는 이해하지만 저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그리고 약국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천원짜리 구충제를 1년에 두알만 먹으면 아무 문제 없다는 것을 같이 알려주면 어디 덧나나?

 

이 사건은 애견인들의 분노를 샀고, 사이버시위 등 각종 항의가 이어졌다.

어떤 수의사는 "개가 그렇게 위험한 동물이면 늘 개를 상대하는 저는 몇번은 죽었겠네요"라는 글 등을 올렸지만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만 공유될 뿐 일반인들의 불안감을 씻어주진 못했다. 역시 언론은 참 대단하다.

 

안그래도 기르던 개를 쉽게 버리는 세상인데, 이 일로 버려진 개들이 더 늘어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 동네에도 아파트로 이사하며 개를 버리고 간 집이 있었다. 아파트에서 키울 수 없어서였다고 한다. 커다란 황구였는데 버림받은 그 녀석은 이젠 남의집이 돼버린 그 집앞을 늘 서성거렸다. 가끔 먹을 것을 갖다주곤 했는데 일주일쯤 지나자 보이지 않았다.

 

이 녀석이 쉽게 입양되기는 글러버린 것 같고, 장기전을 각오했다.

병원에 데려가서 진찰도 받고 미용도 했는데 세상에나 모습이...



몰골이 이렇게 초라해질 줄이야. 너 진짜 입양되기 힘들겠다.

 

-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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