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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03
    2009/10/03
    나비-1

2009/10/03

"많이 외로웠겠구나.."

 

뜻밖에도 이 말을 건네준 이는, 그닥 개인적인 얘기를 나눈 적이 없었던 나의 동료.

선하게 웃고, 화내는 일이 없고, '볼수록 이쁜 은정씨'라고 나를 불러준 적이 있는 진희씨.

요즘 스트레스를 머리끝까지 싸안고 사는 내 옆자리 친구가, 술도 못 마시면서,

들떠서 잔뜩 취해서는 우리집에 가자고 함께 데려온 터였다.

 

오자마자 픽 쓰러져 잠꼬대를 시작한 친구를 두고 잠시 상황을 수습한 뒤 진희씨와 커피 한 잔을 두고 마주앉았다. 결혼을 했고, 아이가 있고, 남편이 귀농한 진희씨는 늘 어렵지않게 상대의 이야기를 끌어낸다. 나의 귀농계획을 묻고, 진희씨의 결혼성사이야기를 듣고, 시어머니 이야기를 하고, 귀농한 남편이야기를 하고, 귀농한 나의 친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불만과 불안과 기대와 기쁨과 웃김과 서투름을 묻고 듣고 말했다.

 

 

은정씨는 결혼 안해요?

 

지난해 집에 인사드리러 갔었어요. 반대하는데 부모님과 싸우기 싫어서

서른네살 될때까지 기다릴까 해요.그 나이되면 제발 시집만 가라 한대서요.

 

 

오빠는 서로 목소리가 높아진 상태에서 무척 심한 말을 했다.

합리적이고 내 의견을 존중한다고 생각했던 큰오빠는 한숨을 쉬었다.

활달하고 꺼리낌없이 날 대했던 올케언니는 어떻게 살거냐고 물었다.

위로를 해주리라 생각했던 언니는 걱정스런 목소리로 니가 아직 안겪어봐서 그런거라고 했다.

 

많은 돈을 벌고 싶지 않으며 소박하게 살고 싶고, 되도록 자급하는 삶을 꾸리고, 농촌에서 함께 살고 싶다고 말했던 서른 세살과 서른 한살의 어른은, 아직 인생경험이 없어 세상물정을 모르고,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철부지며, 두고 보면 다 알게 될 사람이 되었다.

 

내 부모님을 이해 못하지 않는다, 내 삶의 방식을 강요하지도 않으며 당신들의 삶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는 내 말은 편이 없었다.오빠는 왜 그랬을까? 불안하기로 치면 지금보다 열배쯤 걱정스러웠을 백수시절에도 아무 도움 없었으면서.언니는 왜 그랬을까? 부모가 내 삶을 대신 살 수 없으며 본인 또한 그렇다는 걸 알거면서.

 

가족은, 때로 가족이라는 이유로, 참으로 책임질 수 없는 말들을 쉽게 남긴다. 가볍게 상처를 입히고, 가족이어서 이해할 거라며 사과하지 않고 상처를 키운다.

 

나와 관심사도 다르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도 다른 언니와 오빠는 끝내 내가 상처받은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일년이 지나도록 그 생채기가 사라지지 않아 한시간을 넘게 울면서 이유를 설명했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니가 지금 나에게 할말은 '많이 힘들었냐 외롭게 해서 미안하다'라고 직접 문장까지 만들어 줬는데도 말이다.

 

가족이 모여 화목함을 뽐내야 하는 추석 명절, 

해를 넘겨도 상처는 없어지지 않고 화목함과 반갑지 않은 관심이 부담스러워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계속 이러진 않을거다. 상처 입었다고 앉아서 징징거리기만 하는 건 볼썽사납다.

사실 언니는 참 좋고, 조카도 자주 보고싶고, 내 걱정을 많이 하는 형부도 자주 그립다.

 

그래도 아직은 "외로웠겠구나, 미안하다"라는 말이 듣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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