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 거절의 미학

2007/06/04 11:06

"거절"의 미학 | 만감: 일기장  2007/05/30 22:34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6491   

 

저는 "한국이 이렇다, 한국인이 저렇다"는 식의 일반화 방식을 매우 싫어합니다. 개인마다, 세대마다, 계층마다 다 제각기 다르기에 어떻게 "국적"/"민족"이라는 기준으로 이렇게도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가 라는 것은 저의 반대 논리입니다. 그런데, 지나친 일반화가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문화 차이"를 이야기하자면 예컨대 "거절"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야 없지만, 대략적으로 보면 "거절"이라는 것은 제가 아는 다른 문화들 (예컨대 러시아문화나 북구 문화)에 비해서 한국에서 조금 더 하기 어려운 행위인 듯합니다. 초면이면 그나마 비교적으로 쉽지만, 구면일 때에는 아주 불가피한 사정을 자세히 말하지 않고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고, "불가피한 사정"이 있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인식시킬 수 있어도 그래도 왠지 미안한 분위기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좀 수직성이 있는 관계라면 - 특히 사제지간은 좀 그렇습니다 - 아주 우회적인 형태의 거절이라 해도 때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으로 느껴질 때가 있더랍니다.

 

물론 이 이야기를 하면, "안그런 데가 어디 있느냐"는 식의 반응이 나올 것을 충분히 예상합니다. 그런데 장담컨대 안그런 데가 있긴 있습니다. 러시아만 해도 비교적으로 권위주의가 강한 분위기에다가 특히 학계의 조직에서 위계성이 철저한데도, 저만 해도 한 번 한국에서 온 한 목사에게 좀 도와주라는 제 지도 교수의 요청을 - 물론 꽤나 우회적으로 - 거절한 일이 있었습니다. 거절했을 때에는 느낌이 좀 좋지 않았지만 결국 다행히도 스승과의 관계는 그대로 잘 유지됐습니다. 노르웨이에서 같으면 제게 이런저런 이유로 거절을 한 제 제자도 꽤 있었습니다. 한 석사과정의 제자에게 학위 논문을 조금 더 이른 시기에 제출할 것을, 기존의 한 전례에 입각해 요청을 했을 때에는, "그럴 수 없다, 이와 같은 요청이 반복될 경우 상급기관에 법적 해결을 요청하겠다"는 답을 받은 것도 있었습니다. 그 답을 받아 '법적 해결'과 같은 문구를 접했을 때에, 제 기분은 약간 묘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오히려 그런 방식은 사람 살기 좋은 방식이란 결론이 나서, 별로 기분 나쁘지 않았습니다. 한국 같으면 특히 서비스부문의 노동자들이 고객에게 어떤 이유로든 거절을 할 때에 비상하게 "공손한 태도"를 취하느라고 신경을 곤두세우곤 하는데, 노르웨이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약 6년 전에, 경험이 좀 없었을 때에 신분증 없이 은행에 가서 돈을 빼려 했는데, "신분증 제시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한 은행 직원은 "미안하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더랍니다. 그 때에 기분이 비상히 안좋았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직원이 과연 미안할 이유가 있었나 싶었습니다. 규칙을 모르는 게 고객의 잘못이 아닙니까?

 

하여간 노르웨이가 "거절이 좀 쉬운" 풍토라면 한국은 거절이란 외교적으로 잘 하지 않으면 안될, 외교적으로 잘 해도 안통할 수 있는 중대한 사항이더랍니다. "관계 문화", 집단에서 낙오되거나 관계망에서 차질이 생기면 생존이 어려워지는 문화, 거기에다가 사회나 국가가 개인의 생존을 공적으로 책임지지 않는 사회적 "정글" 현실이다 보니 대인 관계가 "외교화"될 수밖에 없지요. 노르웨이에서 자기 스승(? - 사실, 그런 개념도 아닌데 말씀입니다)에게 "무리하다 싶은 요구를 하면 법적 해결하겠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답한 석사과정생 뒤에 그녀의 미래를 책임질 사회와 국가가 있지만, 한국에서는 "어려운 관계"일 때에 거절하면 "내 미래가 불안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기에다가 6-25 이후에 "가족끼리 튼튼히 뭉쳐 어려움을 극복하자"는 '생존 도모'의 가족주의적 형태도 공고화된 부분이 있고 하니까 "거절"이나 "거부"가 좀 이상하게 들리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같으면 매우 독선적인 것으로 인식될 수 있지만 전통시대 지배계층, 사대부의 문화는 "대의명분"에 관련되는 부분에 있어서는 필요할 때에 "거절"이 잘 통하는 문화이었지요 (그것도 미화만 할 수 없지만). 그런데 이제는 우리 이상은 "둥글게 둥글게" 관계를 잘 관리하면서, "거절"로 거래처들을 화나게 만드는 "무례함"을 잘 보여주지 않는 "민간인 외교관"인 셈입니다. 신자유주의로 가면 갈 수록 이와 같은 풍토가 심화되지 않을까 싶어요. "모나지 않게, 둥글게, 사이 좋게, 원만하게"... 이러다가 무슨 재미로 살다 가려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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