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는 왜 사이렌을 로고에 차용했을까-오디세우스의 모험 이야기]


오디세우스는 모든 그리스 영웅 중에서도 정신적인 면, 지략이 특출한 인물이다. 오디세우스의 길고 긴 모험에 지혜와 정의의 여신 아테네가 함께할 만큼 영웅으로 손색없는 육체적, 전투적 능력도 갖추고 있다. 로토파고스의 섬부터 스타벅스 로고의 상징인 사이렌의 섬까지, 지금부터 흥미진진한 오디세우스의 모험 속으로 들어가 보자.


트로이아 전쟁에 참전했던 그리스 영웅들은 전쟁종료 후 곧장 집으로 돌아오지만 오디세우스의 귀환에는 10년의 세월이 소요된다. 태양신 헬리오스의 신성한 가축을 잡아먹고 포세이돈의 아들을 죽여 신들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다. 전쟁기간과 모험기간을 합쳐 최소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서야 오디세우스는 고향인 이타케왕국으로 돌아온다.


오디세우스 일행은 키코네스족이 사는 항구도시인 이스마로스에 상륙하지만 그곳 주민들과의 싸움으로 그곳에서 모든 부하를 거의 다 잃고 만다. 이때부터 오디세우스의 귀향이 순조롭지 않다. 폭풍으로 아흐레 동안(9-고난의 수) 표류한 후 로토파고스에 정박하게 된다. 그곳 사람들은 연근 같은 것을 먹고살았는데 그것을 음식으로 취하면 모든 기억을 잃고 그곳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오디세우스는 부하 셋을 보내지만 그들은 그 음식을 받아먹고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자, 오디세우스는 그곳에 살겠다고 우기는 부하들을 밧줄로 묶어 빠져나온다. 그리고 외눈박이 거인인 폴리페모스의 섬에 도착한다.


오디세우스 일행은 식량과 물을 보충하기 위해 폴리페모스 섬에 정박한다. 그들은 어떤 동굴에 들어가게 되는데 그곳에는 먹을 것이 잔뜩 쌓여 있다. 폴리페모스의 거처인 것이다. 오디세우스 일행은 식량을 취하려다 발각되어 부하 여섯이 잡아먹히고, 동굴 안에 갇히게 된다. 이때 지략가 오디세우스는 포도주로 폴리페모스를 취하게 하고 아름드리 통나무를 불 속에 넣어서 빨갛게 달군 후 부하와 함께 잠든 폴리페모스의 눈을 찌른다. 눈이 지져진 폴리페모스가 고통스러워하고 있을 때, 오디세우스는 폴리페모스가 기르던 양떼들을 세 마리씩 묶는다. (폴뤼페모스는 양을 치는 거인이기 때문에 아침이 되면 양들을 데리고 나간다.) 폴리페모스는 눈이 멀었음에도 불구하고 양떼들을 내보내고, 그때 오디세우스와 부하들은 양들의 배 밑에 숨어 폴리페모스의 검사를 피해 무사히 탈출한다.


그 후 오디세우스는 세이레네스의 섬을 지나간다. 세이레네스는 세이렌이라고도 불리는 바다괴물로 얼굴은 아름다운 여인이고 몸은 바닷새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소리를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들은 선원들은 그 소리에 취해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진다. (경보를 뜻하는 사이렌이 여기서 유래)

세이레네스의 아름다운 목소리의 유혹을 피하기 위해 오디세우스는 선원들의 귀를 막게 하고 스스로 자신의 몸을 돛대에 밧줄로 묶어서 빠져나온다.


사이렌은 스타벅스 로고로 더욱 유명해 졌다. 스타벅스는 왜 사이렌을 로고로 차용했을까?

아름답고 달콤한 노랫소리고 지나가는 배의 선원들을 유혹하여 죽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사이렌(siren).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홀려서 스타벅스에 자주 발걸음을 하게 만들겠다는 뜻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 김길수 <그리스신화 다시 보기>중에서.



[엘레베이터에는 왜 거울이 있을까-창의적 사고의 시작]


우리는 보통 기존에 없던 것을 반짝 생각해낸 것, 새로 떠올린 것을 창의적이라 생각하고, 창작활동은 창의적인 것의 결과물을 향한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창의성의 가장 중요한 것은 관점 바꾸기를 통한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이다. 관점을 전환할 수 있는 것,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새로운 상황에 적용해서 새로운 문제 해결 방식을 만들어내는 것. 이 고도의 응용력, 적용력이 창의력이라고 할 수 있다.


디오게네스는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간단하고 단순하게 욕망을 채울 것을 주장했는데, 그는 아무 데서나 잠자고 뒹굴고 방귀를 뀌었으며, 심지어 아테네에서 자위행위를 했다는 일화도 있다. 디오게네스는 금기를 파괴하는 모습이 기존의 관습을 뒤엎는 행위라고 했다. 금기를 파괴하는 것은 냉소적인 모습으로 드러나지만, 단순한 냉소가 아니라 새로운 관점을 찾고자 하는 열정도 담겨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관점에서 보는 것이 왜 중요한가? 세계가 복잡해지고 다양하게 변화하면서 있는 것을 활용하는 방법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에 부족함이 많기 때문이다.

문학작품을 해석하면서 국사에 적용하는 것은 문학작품을 다른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생물에서 진화론을 배우면 진화론을 사회론에 적용해보는 것이다. 사회적 메커니즘을 발견하고 만드는 것이다. 결국 우리 시대가 강조하고 있는 것과 관점 바꾸기 형식은 다르지 않다.


하나의 재미있는 예를 보자. 지금은 엘리베이터 벽에 거울이 있지만, 사실 초기의 엘리베이터에는 거울이 없었다. 그러면 엘리베이터의 거울은 어떻게 생기게 되었을까?

미국은 엘리베이터가 가장 먼저 발달한 나라인데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은 빠른 엘리베이터를 원하게 되었다. 왜 빠른 엘리베이터를 원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지루하니까, 모르는 사람과 같이 타야 하니까 빨리 타고 빨리 내리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결국 시간의 효율성 때문이 아니라 갇힌 공간 안에서 ‘할 일 없음의 지루함’ 때문에 빠른 엘리베이터를 원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거울을 달았고, 거울로 인해 할 일이 생기자 사람들의 불만은 없어졌다. 엘리베이터 안의 거울을 생각해낸 사람의 창의성처럼 지루함에서 도발을 보는 방식이 관점의 변화이다.


창의력을 기르려면 우선 근본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근본적인 사고는 왜? 라는 질문에서 나온다. 누구나 당연하다는 생각에서 왜?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게 철학의 시작이다. 이것을 비판적 사고라고 부르며 비판적 사고가 관점 바꾸기, 창의성으로 가는 출발점이다. 비판적 사고는 흠잡기의 사고가 아니다. 비판적 사고라는 것은 틀렸다고 문제만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가 맞고 어디까지가 틀린지 금을 긋는 것이다. 여기에서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창의적 사고는 어려운 것이 아니며 그 안에서 관점 뒤집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 박정하 <논리학 입문>중에서

*** 출처 : 아트앤스터디 [지식메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Trackback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nomad22/trackback/160

Comments

What's on your mind?

댓글 입력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