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공무도하

2009/11/30 16:38

김훈의 글은 스케치가 정확하다. 매력魅力적(charming)이다

매력이 진짜 힘(권력)이다

매력이 사라진 인간은 죽는다.

 

 

-  아래의 발췌는,  김훈, 2009, [ 공무도하 公無渡河 ], 문학동네 ;  인용 (  )는 쪽수

  

1. 하늘의 구름

구름의 세력 (7)

 

2. 기상청의 예보

기상청은 비구름의 뒷자락에 매달려 갈팡질팡했다 (7) 

 

3. 배달된 자장면

먹다 남은 자장면이 비닐랩에 뒤엉켜 말라붙어 있었다 (17)

 

4. 샤워하는 장면

몸이 물의 온도 속으로 퍼졌다 (23)

창자와 허파와 자궁이 몸속에 가득 들어차는 꿈틀거림 (23)

 

5. 연대

역사와 문명을 구성하는 많은 요소들이 서로 연대하고 있었다 (25)

 

5. 햇빛

녹슨 지붕들이 햇빛을 튕겨내면서 막무가내로 색을 뿜어냈고 (29)

녹으로 삭아가는 함석지붕은 풍화의 시간 속에서 신생의 색을 뿜어내고 있었다 (29)

녹을 벗겨낸 탄두는 쇠의 푸른 속살로 햇빛을 튕겨냈다 (311)

 

6. 인간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 시급한 현안문제다 (35)

 

7. 해지는 저수지 풍경

수면에서 명멸하는 빛과 색 (41)

기우는 해에 끌리는 쪽으로 빛들은 떼지어 소멸했고 소멸의 순간마다 새롭게 태어나서 신생과 소멸을 잇대어가며 그것들은 어두워졌다 (41)

산그늘에 덮여서 빛이 물러서는 가장자리 수면에서 색들은 잠들었고, 바람이 수면을 스칠 때는 물의 주름사이에서 튕기는 빛이 잠든 색들을 흔들어 깨웠다 (41)

저녁의 수면은 지나간 시간의 흔적을 지우면서 어두워갔다 (43)

 

8. 밤에 울리는 핸드폰

램프는 바늘귀 같은 구멍으로 새빨간 섬광을 쏘아대어 어둠을 찔렀다. 중학생 때 저수지 뚝방에서 본 뱀의 눈알이 떠올랐다. 핸드폰은 살아서 교신을 갈구하는 작은 짐승의 눈구멍처럼 깜빡거렸다 (44)

가늘게 찌르륵거리는 신호음은 어둠의 저편에서 건너오는 벌레 소리로 들렸다. 소리의 느낌은 무력했고, 무력한 만큼 다급했다. 여러 산꼭대기의 기지국 철탑들을 거쳐서, 폭우가 쏟아지는 캄캄한 공간을 건너오는 한 가닥 신호의 여정이 노목희의 마음에 떠올랐다. 신호음이 멎고, 철탑과 철탑 사이가 끊어졌다가, 다시 신호음이 울렸다. 서로 알게 된다는 것은 때때로 신호를 보내오는 개입을 용납한다는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노목희는 폴더를 열였다 (45)

 

9. 새

새들의 울음소리는 속이 비어 있었고 높이 떠서 멀리 나아갔는데 (48)

 

10. 폭격

폭격기들이 저공으로 접근하면서 공대지 미사일을 발사할 때 수평선 너머의 어둠이 찢어졌다 (50)

삶 속에서 죽음이 폭발했고 (258)

폭격기들이 바다에 박힐 때, 물기둥이 치솟았고 물보라가 날렸다. 파도가 물기둥을 지워버리고 바람이 물보라를 쓸어내고 폭격기들이 물속으로 잠기면 바다는 다시 제 리듬으로 돌아갔다 (258)

 

11. 노을

해망의 노을은 깊고 또 가까웠다. 해가 내려앉고 수평선 쪽 하늘이 붉어지기 시작하면 붉은 기운이 물 위에 가득 찼다. 해망의 노을은 하늘로 번졌고 대기중에 스며서 어두워지는 내륙의 산맥 너머로까지 펼쳐진다. 해망의 노을은 바다와 마을에 가득 내려앉아 사람과 가축의 들숨에 실려서 몸속으로 빨려들었고 썰물의 갯고랑에서 퍼덕거렸다 (73)

마을에 걸린 빨래가 노을을 튕기며 펄럭였고 소금이 내려앉은 염전 바닥이 붉었고 숲으로 돌아오는 새들의 가슴이 붉었다 (74)

해가 더 기울자 노을은 산맥과 마을의 윤곽을 거두어서 어둠에 합쳐졌다 (80)

 

12. 죄수

해안초소에서 내려와보면 죄수들의 몸놀림은 지나간 시간의 지층 위를 기어가는 슬로 리뷰였다. 죄수들의 작업은 노동이 아니라 시간을 인내하는 자들의 종교의식처럼 보였다 (74)

 

13. 소금

소금은 노을지는 시간의 앙금으로 염전에 내려앉았다. 소금 오는 바닥에는 폭양에 졸여지는 시간의 무늬가 얼룩져 있었고 짠물 위를 스치고 간 바람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공기가 말라서 바람이 가벼운 날에 바다의 새들은 높이 날았고 새들의 울음은 멀리 닿았다 (75)

 

14. 자동차의 불빛

뒤차의 전조등 불빛이 안개에 풀렸다. 딱정벌레 같은 불빛들이 어둠 속에서 배어나와 백미러를 흘러나갔다 (86)

 

15. 사람의 냄새

그에게서는 오랫동안 담배를 피운 사람의 체취와 비슷한, 몸속 깊은 곳에서 스며나오는 냄새가 풍겼다. 시간이 사람의 몸속에서 절여지면 이런 냄새가 날 것 (91)

 

16. 기억

기억은 고압전류가 되어 몸속을 찔렀다 (94)

기억의 저 너머를 찌르면서 버린 것들의 이름을 불러왔다 (95)

 

17.  화재진압 현장

연기는 수증기에 젖어 무거웠다 (102)

무거운 연기가 바닥에 깔렸다. 손전등 불빛은 수증기에 젖은 연기를 뚫지 못했다 (109)

 

18. 미완성

그가 아름답다는 그 '미완성'이라는 것은 완성을 지향하는 과정이 아니라, 미완성 그 자체로서 하나의 자족한 국면을 이루는 것처럼 문정수는 느꼈다 (112)

 

19. 국물 담은 봉지

문정수는 멸칫국물 봉지를 무릎에 올려놓았다. 허벅지에 멀고 희미한 온기가 느껴졌다 (120)

 

20. 절박함

그렇게 절박한 것들을 기억할 수 없는 까닭은 보다 더 절박한 것이 보다 덜 절박했던 것들을 지웠기 때문 (123)

 

21. 깊은 잠

아침이 가까워올수록 문정수는 더 깊이 잠들어서 숨소리는 길고 깊었다. 문정수의 숨은 몸 깊은 곳의 소리와 냄새를 토해냈다 (131)

 

22. 죽음

이 세상의 헤아릴 수 없는 죽음과 끝없이 되풀이되는 죽음 중에서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죽음은 저 자신의 죽음뿐일 테지만, 그 죽음조차도 전할 수 없고 옮길 수 없어서 이해받지 못할 죽음일 것이었다 (131)

변사變死라기 보다는 폐사斃死에 가까웠다 (132)

 

23. 욕

니미, 쓰벌, 좆도 같은 욕설을 그가 손댈 수 없는 세상을 향해 내뱉었다 (133)

 

24. 낡은 배

낡은 목선들이 배의 희미한 흔적을 그리며 삭아갔다 (140)

 

25. 동물의 콧구멍

낙타는 콧구멍을 바람에 열어놓고 지평선 너머를 냄새맡고 있었는데, 콧구멍 언저리가 메말라 보였다 (201)

 

26. 저녁이 오는 시간

그림자가 어둠에 녹아서 사라질 무렵 (245)

 

27. 민들레

풀들의 세력은 풍매하는 솜털 씨앗으로 피어났다. 그것들은 가볍고 사소했다 (267)

그것들은 바람에 올라타서 이동했고 바람의 끝자락에서 착지했다. 한 점의 솜털로 떠돌던  그 하찮은 것들은 땅 위에 재집결해서 세력을 확장했고, 뿌리를 박으면 물러서지 않았다 (267)

 

28. 인연

인연은 풀려서 흩어졌다. 그것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었다. 부재하는 것들의 한시적 응집일 뿐이었다. 자궁은 증발하고 혈연은 해체되었다 (270)

 

29. 술 많이 먹고 일어난 다음날 아침

아침에, 문정수는 갈증에 몰려서 눈을 떴다. 입안이 목구멍까지 말라서 혀가 버르설거렸다. 혓바닥이 돌멩이처럼 입안에 떨어져 있었다. 속이 뒤집히고 골이 패였다. 술이 덜 깨서, 세상이 멀어서 아득헤 보였는데, 멀어 보이는 세상이 술이 덜 깬 망막으로 사정없이 밀려들었다. 문정수는 간밤에 강경감이 준 드링크를 마셨다. 인삼을 흉내낸 인공향료 냄새가 목젖을 치받았다. 칫솔을 입안에 넣자, 창자의 먼 끝에서부터 구역질이 올라왔다 (320)

 

30. 섹스

문정수의 몸은 다급했다. 노목희의 몸이 깊어서 문정수는 닿을 수 없었다. 몸이 다가가면, 몸은 달려들면서 물러섰다. 노목희는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문정수는 닿아지지 않는 저쪽 끝으로 몸을 몰아갔다. 노목희는 다가와서 넘치는 몸을 느꼈다. 노목희의 머리카락이 땀에 엉겼다. 문정수가 놓쳐버린 세상이 모두 내 몸속 깊은 곳으로 들어와서 거기에서 녹아서 편안해지기를, 그리고 그것들이 아무런 자취도 남기지 않기를, 그래서 아무것도 묻어 있지 않은 몸이 새로운 시간 앞에 다시 서기를, 홀로 그 시간 속을 걸어갈 수 있기를 노목희는 바랐다. 그 바람은 문정수가 물러선 몸속 깊은 곳에서 체액으로 분비되었다. 문정수는 쉽게 무너졌다. 문정수는 숨을 몰아 쉬었다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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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지나 2009/12/08 01:36

    김훈의 글이 스케치는 정확하다는 말씀에 난 왜 그의 글이 나르시스적이라는 느낌이 들까요...
    암튼 님의 마음공부는 잘 되어가고 계신지...궁금해서 와봤습니다...흐흐

    perm. |  mod/del.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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