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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달리기

한겨레 마라톤이 6일 앞으로 다가왔다. 10키로미터. 연습량은 절대 부족하다. 하지만 10키로 정도야 어떻게든 되겠지. 아직은 젊으니까.

 

풀코스 마라톤 러너들에게는 10키로 정도는 가벼운 하루 연습량 밖에 되지 않는 아주 짧은 거리다. 나에게도 그리 부담스러운 거리는 아니다. 그러나 일단 어느 거리든 레이스에 나가기로 마음 먹었으면 그 거리를 마음 속 깊이 새기게 된다. 그 거리를 중심에 두고 훈련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나에게 10키로나 풀코스 러너에게 풀코스나 부담이 되는 정도는 비슷하지 않을까.

 

이번에 50분 안으로 들어오면 다음엔(아마도 4월 중순에 하남에서 있을 엠비시 마라톤) 하프를 신청할 계획이다. 그러려면 연습을 지금보다 몇 배는 많이 해야겠지. 이번 달 들어 총 달린 거리가 50키로나 되려는지 모르겠다. 저번 주 까지는 일주일에 하루 10키로 정도 밖에 뛰질 않았으니... 물론 일주일에 이틀 이상은 수영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절대적인 연습량은 한참 부족하다.

 

저번 주 금요일 부터 오늘까지 30키로를 뛰었다. 어쩌면 지금은 다리의 피로를 풀기 위해 쉬어야 할 지도 모르는 기간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달려야 한다, 연습을 해둬야 한다는 마음에 어쩔 수 없이 달린다. 실제 경기에서 해로울 수 있지만... 하지만 뭐, 겨우, 10키로니까... 어떻게든 될 것이다.

 

오늘은 날씨가 흐렸지만 기온은 따뜻했다. 운동복에 가벼운 웃도리를 걸치고 달렸는데 더웠다. 바람이 불긴 하였으나 더워진 몸을 조금 식혀줄 만한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도림천은 지금 한창 공사중이다. 환경정비와 하천 주변을 공원처럼 조성한다는 공사인데 청계천 처럼 만들어 놓을까봐 걱정이다.  한참 공사중이라 포크레인이 흙들을 파헤쳐 놔 시궁창 냄새가 난다. 하천 맞은 편의 나무들도 색바랜 잎들을 떨어뜨리고 풀들도 시들어 누렇게 변해 지저분하게 헝클어져 있다. 하늘도 흐려 회색빛이고, 전체적으로 참 음울한 분위기였다.

 

그래도 달리면서 들은 음악이 날 위로해준다. 요새는 달리면서 예스(yes)의 음악을 듣는다. 예스의 음악은 달리면서 듣기에 참 좋은 것 같다. 전체적으로 발랄하고 또 보컬에 화음을 주는 것이 상쾌한 느낌을 줘(때로는 너무 작위적인 느낌이 들긴 하지만) 달리기를 즐겁게 한다.  약간 시카고(chicago)의 음악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장르로 치면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에 들어가지만 내가 들어 느끼기에는 그렇다.

 

오늘은 처음부터 달리기가 힘들다. 다리가 무겁고 숨도 가쁘다. 왜 이러지. 아침에 수영을 해서 그런가. 하긴 수영을 하고나면 끝나고 계단 올라오는 것도 힘이 든다. 다리 근육을 꽤 쓰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힘이 들면 10킬로를 어떻게 뛸 것인가. 나는 다음에 하프도 도전해야하고 내년 쯤에 풀코스도 한번 달리려 하는데, 겨우 이 정도 밖에 안된단 말인가... 평소라면 오늘 컨디션이 영 아닌걸 하고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제 다 읽은 하루키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보면 힘이 들다가도 어느정도 지나면 호흡도 근육도 제 기능을 찾는 경험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도 참고 계속 달려본다. 이래뵈도 10킬로 정도는 48분대에 끊었던 러너다. 그리 쉽게 그만둘 순 없다...고 억지로 자존심을 끌어내본다. 이런 생각이 뒤죽박죽으로 엉켜 달리는 중 예스의 음악이 3번째 트랙으로 넘어갈 때 쯤, 이제야 달리기가 편해진다. 아 하루키의 말은 이런 것이로군. 호흡도 안정되고 다리도 훨씬 가벼워졌다. 이제 쉽게 달릴 수 있다. 

 

내가 달릴 때 신는 신발은 아식스의 GT-2120. 재작년에 산 러닝화다. 당시 매장에서 제일 비싼 러닝화였는데 요새는 그 두배하는 신발도 나온 것 같다. 재작년에 샀지만 달릴 때만 신기 때문에 그리 많이 신지는 않았다.(물론 가끔 신어도 오래 달리기 때문에 신고 간 거리는 꽤 될테지만.) 이 신발은 뭐가 안맞는지 오래 달리다 보면 발 안쪽에 물집이 생긴다. 신발은 길들여 질때 그런 일이 있기 마련이라 그리 신경은 안쓰는데 신발을 하도 가끔 신다 보니 길도 안들고 신을 때 마다 물집이 생긴다.

물집이 그렇게 아프진 않다. 발을 딛을 때마다 약간씩 찝히는 고통이 있긴 한데 오히려 단조로운 달리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약간의 자극 같은 것이 된다고 할까. 아무튼 그리 고통스럽진 않다.

언젠가는 신발이 길이 들여지든 내 발의 안쪽에 굳은 살이 백히든 더 이상 물집이 잡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스포츠 매장에 가면 러닝화와 마라톤화가 따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두 신발의 차이는 러닝화는 쿠션이 조금 더 있지만 약간 더 무거운 반면에 마라톤화는 쿠션이 덜하고 무게가 가볍다. 러닝화도 신으면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가벼운데 마라톤화는 그것마저 무겁다고 쿠션을 빼버리면서까지 무게를 줄인다. 풀코스의 고통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평소엔 거의 느껴지지 않는 무게마저 풀코스 레이스에서는 천근만근으로 느껴지는 것.

대부분의 러너는 마라톤화가 아닌 러닝화를 신는다. 왠만한 중급 러너와 많은 수의 상급 러너도 러닝화를 신는다. 달리기를 하면 발을 디딜 때 몸무게의 3배의 압력이 무릎에 가해진다. 이 발디딤을 수천번에서 수만번까지 해야한다. 당연히 무릎에 무리가 온다. 그렇기 때문에 쿠션은 소중하다. 무릎의 충격을 덜 수 있는 것은 땅과 발바닥 사이에 있는 신발의 쿠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소중한 쿠션을 포기하고 그 대신 가벼움을 선택한 마라톤화를 신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빠른 속도가 필요한 사람들, 기록이 중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완주가 목적이 아니라 기록이 목적인 사람들(물론 대부분의 러너는 출발 전에 자신의 목표 시간을 정하지만 그 목표를 위해 쿠션을 포기하진 않는다)인 그들은 마라톤을 직업으로 하는 프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 프로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어느 기록 내에 들어오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거나 경쟁상대를 이기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러닝화를 신는 사람들과의 마음가짐의 차이는 분명히 있지 않을까 싶다. 어느 정도의 목표 시간대는 있지만 다치지 않고 완주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인 러닝화와 목표로 정한 시간대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고통과 건강의 위협까지 감수하려는 마라톤화. 둘 중에 옳고 그름은 없다. 각자의 스타일이 있을 뿐. 나로 말하자면, 물론 전자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달리다 보니 어느 새 신도림 역에 와 있었다. 초반에 너무 힘들어서 그랬는지 정말 눈 깜짝할 새에 신도림까지 온 것 같다. 전에는 여기 까지 오기가 참 지루했는데. 시간을 보니 이번에 특히나 빨리 온 건 아니고 다른 때랑 비슷하게 도착했다. 잡생각을 많이 해서 시간이 짧게 느껴졌나보다. 좀 더 뛸 수 있는 기분이었지만 오후의 약속에 늦지 않기 위해 오던 길로 방향을 바꿔 돌아서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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