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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에 대한민국의 하늘에서는 부분일식이 있었다. 달이 해의 일부를 가려버린 것이다. 금세기 최대의 일식이라니 아마 내 일생 한국에선 더한 일식을 보기는 힘들 것이다.
오늘, 오후에 대한민국의 국회에서는 미디어법이 통과되었다. 국회에 있는 친구는 야당의 의원들이 마치 스파이더맨 처럼 국회 안으로 줄을 타고 들어갔는데 졸라 멋있었단다. 인터넷 신문의 기자인 선배는 2류에서 3류로 밀려나게 될 거 라며 "이놈의 마이너 인생이란..."과 같은 소회를 밝혔다. 야당과 진보진영에서는 수구집단의 언론장악 음모라 주장하고 여당과 보수진영에서는 미디어 관련 일자리가 2만개 이상 생길거란다. 물론 난 미디어법은 기득권 세력의 언론장악 음모라고 생각한다.
오늘, 하루종일 대한민국의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서는 공장을 점거한 노조원들과 경찰·구사대 간에 전투가 있었다. 경찰은 헬기와 물대포로 최루액을 뿌려대고 노조원들과 구사대들은 새총과 쇠파이프로 서로 싸웠다.이것은 완연한 전투다. 중소도시 한 공장의 한 복판에서 이런 전투가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실로 의아한 일이다. 그러는 한편 공장의 다른 곳에서는 1000명이 넘는 임직원들이 출근을 하여 업무를 봤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얘기만 듣고는 도무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경찰은 식수, 전기, 음식 뿐만 아니라 소화전의 물 마저 끊어버렸다. 고사작전을 쓰고 있나보다. 그러는 한편 용산에서 썼던 컨테이너를 준비하고 있다. 노조원들이 점거하고 있는 도장공장 안에는 인화물질이 가득하다. 실로 일촉즉발, 용산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참사가 예정된 사실 처럼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오늘 하루, 나는 무척이나 한가하였다. 아침에 퇴근을 하여 밥을 먹고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도 머리가 멍해서 어영부영 하다가 저녁을 맞았다. 일식 때에는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집에 오는 중에 주위가 조금 어두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 일식이구나. 자전거를 세우고 하늘을 보았다. 구름 사이로 상현달 모양의 해가 언뜻 보인다. 달이 해를 먹고 있다. 내 일생 마지막 일식인데 좀 더 보다 갈까. 하다가 별 것도 없고 빨리 집에나 가자 싶어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그래, 내 일생 최대의 일식이지만, 나랑은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다.
미디어법은 낮잠에서 깨어나 인터넷을 하다가 통과된 줄 알았다. 그래 그렇게 되었구나. 앞으로 조중동 처럼 나불되는 방송을 어찌볼까 짜증이 난다. 언론노조와 야당에서 끝까지 투쟁을 한다니 믿어본다. 부디 승리하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평택. 아아, 여기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냐. 예정된 참사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데 다들 뭘 하고 있느냔 말이다. 이미 벌어진 참사도 있다. 한 조합원의 부인이 스스로 목을 맸다. 이 지경까지 정부는 사측은 국회의원들은 시민단체들은 노조는 무엇을 했단 말이냐. 난 비겁하게도 예정된 참사가 벌어졌을 때 내 마음의 부담을 덜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내가 뭘 어떡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속한 노조의 좌파그룹에선 평택으로 모이길 호소하는 메세지가 계속 오고 있다. 거기 가서 그들과 함께 정부와 사측을 규탄하는 집회를 하면 내 역할을 하는 것일까. 옥쇄 투쟁 중인 노조에 연대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아, 정말 모르겠다.
두렵다, 정말 두렵다. 내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 용산참사 때 처럼 평택에서의 대참사를 속보로 전하는 뉴스를 보게 될까 두렵다. 죽음도 불사한다는 노조원들이 정말 다 죽어버릴까봐 정말 두렵다. 그런 일이 곧 벌어질 것 같은데 너무나 태평스런 세상과 사람들이 너무 무섭다. 죽어가는 사람을 눈 앞에 놔둔 채로 "어 어, 이러면 안되는데. 어떻게 해야 되는데." 그러고만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내 책장의 수 많은 사회과학 책들은 다 무슨 소용이며 그 책을 쓴 저자들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누구 하나 속시원히 해답을 내 줄 수 있는가.
언제나 희망을 밖에서만 찾는 나, 비겁한 내가 누구를 탓하고 원망하겠나. 나 같은 사람이 모여 만든 이 사회에도 정녕 희망이 있을까. 그렇지만 부디, 평택 쌍차의 노조원들은 무사히 공장 밖으로 나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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