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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당신과 나의 전쟁>을 보았다. <저 달이 차기 전에>가 파업현장 안에서 동고동락하며 파업노동자들의 생활을 감성적으로 담아냈다면 <당신과 나의 전쟁>은 상대적으로 감성적인 것과는 거리를 두고 공장 안과 공장 밖의 풍경을 모두 담아낸 작품이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걸렸던 것이 노무현을 추모하는 사람들이 쌍용차 파업 현장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모습이었다. 노무현을 전혀 지지하지 않았던 나도 당시 분위기에 휩쓸린 건지, 광화문에서 노제를 할 때는 그 곳에 갔었다. 그 많은 사람들 틈에 섞여 떠나는 운구차를 그저 바라보았다. 그 곳의 많은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지만 난 그닥 슬프지도 않았고 그저 착잡했을 따름이다. 그저 착잡함이나 좀 달래보려고 그 곳에 갔었는데, 어제 그 노제를 보여주는 영화의 장면을 보고 그 자리에 있던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난 평택엔 한번도 가지 않은 것이다.
물론, 그 날 광화문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평택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또 대부분이 파업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호의적이지도 않았을거다.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하는 건 아니다. 전직 대통령의 억울한 죽음을 애닲아 하는 마음이야 왜 이해를 못하겠는가. 현직 대통령이 워낙에 무대뽀로 뻘짓을 해대니 상대적으로 과대평가된 면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그의 죽음은 비극이었다. 그 비극에 눈물을 흘린 사람들을 비난할 이유가 무에 있으랴.
그러나, 그럼에도, 영화속에서 '강상구'가 얘기했듯이 노무현을 보내며 슬퍼했던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더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어있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평택으로 가지 않고 단지 노무현을 보내며 슬퍼하는 걸로 끝났다. 그 날 광화문에 있던 사람들의 반만이라도 평택으로 갔더라면 쌍차의 파업이 지금처럼 끝났을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정도의 연대라면 프랑스에서조차 찾기 힘들텐데, 제도권 교육과 언론을 자본이 꽉 잡고 있는 나라에서 그것을 바란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다만, 영화속 광화문의 노란 풍선들이 괴기스럽게 보이면서 그 수 많은 인파 속 어딘가에 서 있을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럽기만 하다.
그리고 '산자'. 산자란 정리해고 명단에 없는 자, 즉 살아남은 자를 뜻하는 것 같다. 처음엔 산자들도 파업에 동참했지만 회사에서 정리해고 명단을 공개하자 대부분은 파업장을 빠져 나온다. 그리고 사측의 관제대모에 동원되어 파업중지를 외치고, 나중에는 파업을 하는 동료들과 싸우기까지 한다.
산자들도 알고있다. 자신들의 행동이 부끄러운 것을. 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관제대모에 온 사람들에게 "나오고 싶어서 나오신 거예요?", "정리해고 말고 다른 방법이 있다면 어느 것이 좋을까요?" 같은 말을 물었을 때 자리를 피하거나 눈길을 돌리며 아무 말도 못한다. 하지만 어쩔 수 있나. 짤리지 않으려면,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그 짓거리를 해야 하는 거다. 아무리 자기의 생각과 양심에 거스르는 일이더라도...
누구에게나 그럴 때가 있을 것이다. 아무리 가치관이 개입될 여지가 없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도 선택을 해야할 때가 올 것이다. 신념 또는 양심이냐 아니면 평온한 삶이냐. 신념이나 양심을 버리고 부와 명예라도 얻으면 좋겠건만, 그것도 아니고 그저 평온한 아니, 평온하다는 건 옳은 표현이 아니다. 그저 전과 다름없는 평범한 삶을 얻는 것이다. 신념과 양심을 버리는 대가 치고는 너무 보잘 것 없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산자들이 그렇다. 그저 어제까지 다니던 직장을 다니기 위해 관제대모에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다 같이 살자고 공장을 점거한 동료들을 비난하는 집회를 하고 파업가족들의 천막을 부순다. 동료들과 스스로에게 조금 비겁해진 대가로 그들은 일자리를 보장 받는다. 그들의 영혼은 사라지고 체제를 유지하는 부품만 남았다.
그들을 비난할 순 없는 것인가. 단지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나온 그들을 비난하는 건 너무 가혹한 일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때로 가혹해져야 할 때가 있다. '산자'들 뿐이 아니라 수 많은 사람들이 단지 먹고살기 위해, 직장을 지키기 위해 매일같이 자신의 양심과 영혼을 버리고 체제의 부품이 되어간다. 그 잃어버린 양심, 사라져간 영혼을 복원시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가혹해질 필요가 있다. 평온을 얻기 위해 조금의 비겁을 택한 자들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인생에서 가장 잊고 싶은 경험을 한 뒤부터 옳은 것을 옳다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얘기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 바람이 지금까지 내 삶의 가장 큰 화두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화두가 이번 영화를 통해서 좀 더 명확해진 것 같다. "적어도 부품은 되지 말자..." 아직까지는 부품으로서 먹고살지 않아도 되는 지금의 직업에 고마울 따름이다. 하지만 유혹은 계속된다. "조금만 더 비겁해봐. 인생 훨씬 편해진다."
물론 난 지금도 많이 비겁하다. 하지만 적어도 내 마음 속에 양심과 영혼을 지키려는 마지노선을 지키기 위해서 변변찮은 유혹들과 힘겹게 싸우는 중이다. 그리고 점차 느슨해지려는 방어선을 이 영화가 다잡는다. "제발 이 엿같은 자본주의의 부품이 되지는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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