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소족의 어머니는 사람들 위에 군림하지 않으며 놀고먹지 않으며 위엄을 부려 다른 사람을 겁주지 않는다. 그 어머니를 그려 딸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모소족 사회에 대한 약간의 이해를 구할 수 있다.
달은 겨우 닷새만 환하지만 어머니는 딸에게 한평생 그렇게 환히 밝다.
집안에서는 어머니가 모든 일을 주관하고 집 밖에서는 심촌이 일을 가르쳐준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없으면 두 눈을 잃은 것과 같다.
어머니를 집에 두고는 섭섭해서 다른 집에 가서 살지 못한다.
내가 찾은 ‘아하’는 어머니의 마음의 뜻을 알 것이다.
어머니가 길러주지 않았으면 인간된 삶을 찾을 수 없었다.
아득하고 힘든 인생의 길에 어머니가 생각나면 어머니와 같이 지내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어머니가 더 이상 세상에 없어도 자식을 기르고 가르치는 은혜는 내 마음 안에 있다.
아름다운 루그 호, 내 어머니와 너무 닮았다.
세상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어머니,
재물은 사람이 만들지만 어머니는 사람이 만들 수 없다.
산과 들과 짐승은 풀을 먹고사는데 우리 어머니는 고생만 먹고산다.
- 이경자, 모계사회를 찾다 중에서...
영상을 보다 재미있게 만들기 위한 장치였는지, 아니면 평등하고 권력 분산적인 사회에 대한 상상력 부족인지는 알수 없지만, 영상에서는 마치 그 사회가 인류의 오래된 옛 원형이자 모권 사회인 것처럼 그리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루그호 모소족은 미개종족도 아니요. 어머니에 강력한 가장권을 주고 있지도 않다.
다만 모계로 혈통을 잇고 있고, 우리와는 다른 ‘주혼’이라는 방식의 혼인풍습을 가지고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는 모거제 사회이다. 굳이 모계제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종족, 민족들이 자신들 고유의 풍습을 잃어가고 가부장적 질서를 확고히하고 있는 요즈음에도 루그호의 모소족이 과거로부터 이어진 모계제를, 모택동 시절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지하고있는 사회경제적 토대가 무엇일까. 난 그것이 물질문명으로부터의 고립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생계는 주로 호수에서의 고기잡이와 밭농사, 그리고 남자들이 주로하는 목축업이다. 목축으로 상품경제에 어느정도 편입되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급자족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가. 임금이 생계의 원천이 아니라는 것이다. 임금이 생계의 원천이 되게되면 가계는 소비에 의해 꾸려지게 되고, 철저히 돈을 벌수 있는 일과 돈이 되지 않는 ‘잡다한 일’을 구별하게 된다. 모소족에게도 분명 여성의 일과 남성의 일의 영역이 있다. ‘아마’인 어머니는 집안의 최고 어른이지만, 그는 놀고먹는 이가 아니다. 위의 노래에서도 보이듯이 우리사회의 어머니와 다름없이 집안의 일을 주관하고 고생만 하는 어머니이다. 우리사회의 어머니가 하는 일은 돈이 되지 않는, 상품경제 사회에서의 교환가치를 생산할 수 없는 일인 반면, 모소족의 어머니는 가족의 생계와 인간된 삶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여전히 가부장제 하에서 억압을 경험하는 우리의 어머니, 그리고 딸들에게 이 사회는 유토피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과 동일한 문화를 가졌던 다른 지역의 모소인들의 경우 남성의 ‘해방’을 경험하거나, 기본적 뼈대는 동일하지만 여성은 중노동을 하고, 남성에게는 새기르고 분재하는 호사를 부리는 단지 모계사회의 흔적만 남고 왜곡된 구조를 갖기도 한다. 그것은 원래의 고유문화가 물질문명과 보다 가까운 지역에서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우리사회에서의 여성해방, 그것은 단지 어떠한 유토피아를 상정하고 그것을 이상화하여 따라가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미 현재의 사회는 남녀의 평등을 그 철학적 기반으로 하고 있다. 다만 근대적 질서에서 벗어나지 못한 구조와 의식이 여전히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남성과 여성을 짓누르고 있다. 그러나 균열지점이 보이지 않는가. 호주제가 폐지된 것은 제도적변화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미 평등한 가정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고, 남성의 우월성을 과도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마초로 낙인찍히기도 한다. 변화의 가능성은 우리 안에 이미 있다. 모소족의 유의미성은 유토피아로서가 아니라 우리사회의 현 구조가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변화가능한 것임을, 인류의 보편적 사회구조가 아니라 다만 근대적 가부장제 질서의 한 모습일 뿐임을 보여준다는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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