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여행

from diary 2010/11/12 01:01

이사일이 다가와서 였는지, 작년부터 한쪽에 쌓아둔 종이뭉치들이 눈에 들어왔다. 끌어내서 버릴 것을 분류하고, 먼지를 털어내었다. 덕분에 다 나았다고 생각한 감기가 도졌다. 입에서 코로 넘어가는 구멍이 따갑다. 종이들 사이에 지난 여행 때 끄적였던 노트가 숨어있다. 뒤적뒤적 옛이야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성실하게 적은 여행기는 아니지만,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여행 하는 동안 어떤 기분이었고, 무엇을 했는지, 그런 것들을 복기하게 된다. 그때 작은 티켓 따위에도 짧은 감상을 쓰곤했는데, 그 종이들을 다 어디다 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또 언젠가 어디에서 툭하고 나타나겠지. 오늘도 서랍을 정리하면서 잃어버린 줄 알았던 2G 메모리를 찾아내었다. B에게 빌렸다가 못 찾겠다고 물어준 것인데, 액트에까지 전화해서 찾아달라고 사정한 것이었다. 잘 챙긴다고 명함갑에 넣어둔 것이 이제야 발견되었다.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하면 꼭 그런 것들은 기억에서 사라지고야 만다.

 

J와 늘 얘기하는 거지만, 우리가 여행기를 제대로 끝마친 적이 없다. 베트남 여행도 그렇고, 늘 시작은 원대하였으나 그 끝은 알 수 없는 이야기. 이번에도 왠지 시작만 올리고 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의 뒷부분은 아직은 혼자서 담아두고 싶은 이야기..... 그때는 그런 생각도 문득 들었다. 나중에 소설을 쓰게되면 이 문장으로 시작해야지. 하지만 그런 구상도 역시 항상 시작만이다. 시작만.....

 

방을 여행한다는 것은 알랭 드 보통이 여행의 기술에서 누군가의 글을 인용하면서 썼던 내용이다. 여행은 늘 새로운 것을 찾으러 가는 것이라면, 그러나 어느순간 그 새로운 것이 다시 낡은 것이 되고야 마는 것이라면, 낡은 것에서 또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이 또한 여행이 아니겠느냐 그런 의미였을까. 내 작은 방에서 어떤 새로운 것을 난 발견할 수 있을까. 난 여전히 방 안에 숨겨진 어떤 것을 찾아낼 수 있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9년 나의 여행의 유일한 길잡이였던 아시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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