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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구-웅얼거림] "양극화"는 적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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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영구-웅얼거림] "양극화"는 적의 언어?!

 글쓴이 : 새벼리
 등록일 : 2006-03-13   06:43:54 조회수 조회 : 139    추천수 추천 : 4    반대수 반대 : 1    
   


"....‘양극화’는 이데올로기적 왜곡입니다. 양극화의 본질은 노동과 자본 간의 계급적 양극화입니다. 미국의 경우 기업 CEO들의 평균연봉은 노동자 평균 연봉의 500배에 달합니다. 한국의 경우도 200배에 달할 정도로 격차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두, 세배의 임금격차를 양극화의 본질적 격차로 왜곡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계급적 대립구도를 계층적 구도로 왜곡하는 것입니다. ..." (허영구의 '2006정세와 민주노총 지자체 후보의 역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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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가 하나의 이데올로기일 수 있다는 것은 아마 사실일 것입니다. 그것은 대중이 겪는 빈곤과 차별의 증대를 '물타기' 하는 언어입니다.

하지만, 그것에서 '양극화는 결국 자본과 노동의 계급적 양극화이다'라고 말해 버리는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그것은 '이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이다'라는 말과 이음동의어에 불과합니다. 이야기가 그렇게 끝날 것이라면, 굳이 힘들게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던가 '시장화를 통한 축적체제 강화'등등의 단어를 써가며 현재 시기의 특수성을 논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당연히 이해하실 부분이겠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축적구조에서 '계급적 대립구도'와 '계층적 구도'는 따로 노는 게 아닙니다. 계층화의 강화가 곧 계급적 착취의 강화입니다. 강화된 계층화를 통해, 위계적 분할을 통해 즉 배제와 차별의 강화를 통해 자본이 획득하는 부불노동의 총량을 증대시키는 것이 이른바 '양극화'라는 단어가 함의하는 계급적 대립구도의 진실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야기하는 빈곤과 차별의 직접적 고통은 모두가 동일한 방식으로 동일한 크기로 느끼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배제의 공포는 보편화 되겠지만 말입니다.

때문에 굳이 힘들여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그 축적구조에 대해, 소위 양극화 담론에 대해 말을 꺼냈다면, 옳은 결론은 분할과 배제에 대항하는 연대를 촉구하는 것으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연대'는 사회적 고통의 차별적인 경험과 그 공통의 기원 모두를 인정하는 가운데만 현실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분할과 배제가 야기하는 고통과 공포에 대항하는 유일한 경로는 언제나 아래로부터 치고 올라가는 것 밖에 될 수 없습니다.

양극화는 아마도 '적의 언어'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포획하려고 하는 대중의 빈곤과 차별의 고통은 우리의 언어로 획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적의 언어'가 사회적 사실에 등극하도록 방관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양극화라는 단어가 '계급적 대립을 계층적 구도로 왜곡 한다'는 표현은 강화된 계층화와 배제가 계급적 착취를 강화하는 전략인 지금의 시점에서는 부족한 이야기입니다.

사회적 절망을 느낄 것을 강요받는 어떤 노동자들과 그들을 바라보며 공포에 떨 것을 (동시에 일말의 위안을 얻을 것을 강요받는) 노동자로 분해 당하는 지금 그것이 '두 세배의 수입차이에 불과한'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부족합니다.

아직은 정상고용인 이들이 두 세배가 아니라 네 배 다섯 배를 받아도 좁혀오는 배제의 벼랑과, 먼저 떨어진 이들의 비명을 듣도록 강요받는 사회의 불안과 공포는 끝나지 않습니다. 더 이상 누구도 떨어지지 않도록 서로를 붙들어 줄 때만, 우리는 수백 배나 더 번다는 자본소유자들의 '산 노동'에 대한 총량적 지출액에 손을 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4)

새벼리2006-03-13   06:47:01 쪽글 삭제
허영구 당원의 "2006 정세와 민주노총 지자체 후보의 역할-민주노총 정치위원회(충남 도고, 2006.3.10)" 주장글에 대한 '웅얼거림' 동지의 리플글입니다. 약간의 편집을 거쳤음을 밝혀 두며, '웅얼거림' 동지의 양해 바랍니다.

새벼리2006-03-13   07:06:13 쪽글 삭제
비정규노동자 집회에 단순 결합하는 수준에서 멈추고 있는 민주노동당의 비정규 사업, 비/철/본의 사업 관점과 사업 내용, 사업 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혁신 강화가 필요합니다.

민주노동당은 비정규노동자 투쟁에 형식적인 연대로 그치고 있는 민주노총의 (노동) 사업 집행기구로 전락해서는 안됩니다. 독자적인 정책 생산 능력을 갖추고, 벼랑끝 비정규노동자들과의 전면적인 결합을 위한 민주노동당 (비/철/본) 내용적-조직적 혁신 강화가 절실합니다. (민주노총에 대한 평가는 별도로 합니다. 다만, 허영구 당원의 정견은 한계가 뚜렷합니다. 필요하다면, 별도 평가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민주노동당의 비정규 사업과 관련하여, 특히, '웅얼거림' 동지의 다음 관점은 깊이 음미할 만 합니다.

'연대'는 사회적 고통의 차별적인 경험과 그 공통의 기원 모두를 인정하는 가운데만 현실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분할과 배제가 야기하는 고통과 공포에 대항하는 유일한 경로는 언제나 아래로부터 치고 올라가는 것 밖에 될 수 없습니다. ,,,

웅얼거림2006-03-13   08:35:41 쪽글 삭제
새벼리/
...무슨 양해씩이나요...^ ^;;. 원고료 받겠다고 쓴 글도 아니고, 카피야 당근 레프트이지요... 그리고 다소 감상적인 기분으로 단 리플이 누구에게라도 쓸모 있게 보였다면 그것만으로 제가 황송할 따름입니다.

덧붙여,
별로 실천적으로 보태는 것 하나 없이, 좀 감정적으로 읽힐 수도 있는 글만 남겨놓게 된 것에 대해 허영구님께 다소 죄송한 기분도 듭니다. 다만, '연대에는 역지사지의 관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쓴 어느 평당원의 과민한 걱정으로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새벼리2006-03-13   22:25:49 쪽글 삭제
웅얼거림, 허영구 당원의 정규직 중심적 관점은 일정정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 허영구 당원에 대해 무슨 비난한 것도 아니고, 논쟁용 주장을 한 것인데,,, 뭐, 죄송스러워 할 것까지야 없다는 개인적 생각이 듭니다.

어찌 됐건,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강행으로 이미 총노동 vs 총자본의 전투 '현장'은 바뀌었는데도, 달라진 '현장'을 허영구 당원은 제대로 담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게 허영구 당원의 한계인지, 아니면 민주노총 노선의 한계인지는 더 세세한 평가가 필요합니다. 다만, 허영구 당원은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100가지 주장할 것 중에서 50가지 주장에 멈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저도 그간 수차례 허영구 당원의 진정성있는 주장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허영구 당원은 민주노총 지도부 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자본과 국가 권력에 맞서 우리가 투쟁해야 하는 것은 민주노총에 대한 이데올로기적인 방어가 핵심이 아니라, 남한 노동계급에 대한 옹호가 핵심이라고 판단합니다.

(민주노총에 대한 방어와 남한 노동계급에 대한 옹호가 일치하면 좋겠지만,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안타까움을 전하며,,, 그만큼 민주노총의 내용적 혁신 강화가 절실하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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