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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들이 무섭습니다
생명과도 같은,아니 그보다 더 끔찍히 여겨지는 땅에 대한 만행에 나는 당신들이 무섭습니다
매일매일 마주하는 사람들로부터 온갖 욕설과 항의에 시달리는 당신들이 무섭습니다
그 화가 다시 마을로 되돌아 올것이 뻔하니 나는 당신들이 무섭습니다
국가가 시키는대로, 상부에서 시키는대로 할 수밖에 없는 당신들이 나는 무섭습니다
허구헌날 들이대는 불심 검문과 말도 안되는 이유들 때문에 당신들이 무섭습니다
겹겹이 막아대는 당신들의 방패가 무섭습니다
우렁차게 질러대는 구호소리가 무섭습니다
차곡차곡 쌓이는 진압버스가 무섭습니다
사뿐히 논과 밭에 내려앉는 군 헬기가 나는 무섭습니다
무참히 파헤쳐지고 물웅덩이가 되어버린 땅이 무섭습니다
하루하루 사람들이 지치는게 무섭고 하루하루 마음을 접고 몸마저 떠나버리는 사람들이 무섭습니다
당신들은 무섭지 않습니까?
아직까지도 마을을 지키고 있는 여전한 의지가,땅을 지켜내고 다시 농사짓겠다는 결연함이 나는 더더욱 무섭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는 그나마 덜 무서운 황새울의 군경들을 마주할 수 있나봅니다
그래도 당신들이 무서운건 사실이예요
일본 출장 다녀 온 실장님을 통해 근사한 선물을 하나 받습니다
영화에서나 봐오던 시계_뭐라고 부르는지는 나도 모르겠다.웬지 뭔가 그럴싸한 이름이 따로 있을법한_를 받고 너무 기뻤지요!!!
평소에 쓸데 없는 부분에 있어서 지나치게 예민한 비대칭 통신원의 집에는 시계가 없어요
핸드폰이나 티브이 시간 표시를 통해서만 시간을 알수가 있는 거죠
시계가 없는 이유는 그 미세한 째깍째깍 소리 때문!
전에 시계가 있었던 시절에는 자기전에 일부러 건전지를 빼어 놓아서 시계도 같이 잠이 들곤 했었습니다
시계가 없어 한없이 고요해진 밤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은 한없는 호사였지만 출근을 위해 아침에 깨어나기 위한 알람 대신으로 쓰여지던 핸드폰 때문에 겪는 곤욕 역시 만만치 않아요
우선 알람을 맞춰 놓고 잠이듭니다
갑자기 신새벽에 전화가 오거나 문자가 오거나 하면 겨우 든 잠에서 가차없이 깨어나고 다시 잠들기 전까지 전화나 문자를 한 사람을 원망하기가 일쑤(특히 잘못 걸려온 전화나 별로 친하지도 않은 주제에 술먹고 괜히 객짓거리 하는 통화나 문자의 주인공은 세상의 온갖 몹쓸 저주에서 벗어날 수가 없을 테지!!!)
그러나 어제 선물 받은 이 시계는!!!전혀 째깍이지가 않아요!
건전지를 넣고도 작동이 안되나 싶을 정도로 몹시 잔잔한 째깍음이 귀를 기울여(귀를 시계에 갖다 붙이고 관음증 환자처럼 숨을 죽이고 집중해야만 들릴정도)야 겨우 들릴락말락 하니 이 얼마나 희소식인가!!!!
하느님!!아날로그식 인간 비대칭에게 전혀 디지탈 스럽지 않으면서 아날로그인양 버젓이 뽐내고 있는 저 시계를 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저희 실장님에게 복을 내려 주소서!!!!!!!!!!!라고 속으로 외치고 또 외쳤어요
또 한가지 다행인 것은 동료 직원에게 건내어진 선물은 만능 달력!!매달 요일과 날짜 부분을 레고 블럭처럼 조립하여 쓰는 달력이예요(일본인의 아이디어는 스고이데쓰네!!!)
내게 내려진 선물이 만약 그 달력이었다면 아마도 달력은 달력으로써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체 아마 100년 내내 2006년 9월이 되었을 수도 있을 운명이니 말이지요
그러나 이 시계 예찬은 영 해피 엔딩만은 아니랍니다
전에는_이 근사한 시계를 갖기 전까지는_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잘 느끼지 못했어요
그저 시계 바늘이 느리게 움직인다 던지,빠르게 움직인다 던지 단지 그때그때 느껴지는 흐름만을 알 수 있었지요
그!런!데!
이 시계는 큰 눈을 껌벅이는 송아지마냥 시간이 껌뻑거리면서 내려 앉아요
매 일분이 지날때마다 착착착 숫자가 쌓이는 것이 아닙니까!!!!
갑자기 시계에 대한 열렬한 찬양 모드에서 공포 모드로 반전
굳이 예를 들자면 친애하는 어버이 김일성 수령동지 모드에서 미제의 악의 축 부시로 변신했다고나 할까?
굳이 저런 예를 들어 놓으면 김일성에게만 환영받을 테고 반미에 빨갱이로 오해받아 낙인찍힐 우려가 있으니 다른 예를 들어야겠군요
뭐가 좋을까?
그래 아주 어여쁜 바비 인형이 사탄의 인형 척키로 변신한 정도?
어쨌거나 그렇다는 거죠
인간이 이래서 간사한가 봐요
그래도 난 저 시계 덕분에 세상을 다 얻은 듯 싶어요
이제 시간을 알기 위해 굳이 티브이를 켤 필요도 없고 어디다 두었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핸드폰을 찾아 헤매일 필요도 없으니까요
어제 깜박 잊고 챙겨가지 못한 시계를 오늘은 고이 모셔 집으로 데리고 갈거예요
아뿔싸!!!!!!!!!!!!!!!!!이 시계에는 알람 기능이 없어요!!!!!!!!!!!!!!!!!!!!!!!
특별한 시계와 말썽꾸러기 핸드폰의 병용 생활이 시작되는 겁니다
그래도 한가지 변화는 생길테지요
문자나 전화가 왔을때 인상을 쓰며 비몽사몽간에 핸드폰 시간을 확인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시계전]
1.문자나 전화가 온다
2.주섬주섬 핸드폰을 챙긴다
3.문자 내용 확인이나 통화 종료후 시간 확인
4_1.중요한 내용일 경우 살짝 원망만하다가 주섬주섬 잠을 챙긴다
4_2.별 그지 깽깽이 같을 경우 울화가 치밀며 잠은 달아나 버리고 안절 부절 못하면서 세상의,아니 전우주적인 저주를 퍼붓다가 겨우겨우 잠이 든다
[시계후]
1.문자나 전화가 온다
2.시계를 향해 눈을 번쩍 뜬 후 바로 시간을 확인
3.문자 내용 확인이나 통화 중에(이미 시간에 대한 확신이 서 있으므로)
_1.중요한 내용일 경우 살짝 원망만하다가 주섬주섬 잠을 챙긴다
_2.별 그지 깽깽이 같지도 않을 경우 울화가 치밀며 잠은 달아나 버리고 안절 부절 못하면서 세상의,아니 전우주적인 저주를 바로 퍼부어 준다
드디어 나의 B.C(Before Clock)는 지나가고 A.C(After Clock) 시대가 도래한 것이지요!!!!
안녕하십니까 애독자 여러분!
몸소 무소식이 희소식임을 알려드리고자 긴긴 칩거에 들어가 앉았던 비대칭 통신원입니다.
깜깜 무소식이었지만 희소식을 전하고파 내심 갖은 애를 쓰며 지내온 3주였습니다.
나예뻐??-_-
뭐 순전히 다 핑계입니다.
회사일로 바쁘다(24시간 바쁠리 만무합니다.),잠자기도 모자란 시간에 어찌 통신원 노릇을 할 수 있느냐(비대칭 통신원 불면증 있습니다.),회사일에 집안 살림까지 너무 힘들다(혼자 사는 살림에 집이 넓지도 않은데다가 한없이 게을러 집은 이틀에 두번 치우면 자주 치웁니다.설겆이 역시 이틀에 한번!)너도 강아지 3마리 데리고 살아보셈!(해주는 것이라고는 똥치워주고 사료 놓아 주는 것밖에 없습니다.우리 개쉐들 산책 나가본게 1달이 넘었으며 몸에서는 구수한 냄새가 납니다.목욕시켜야 해 끄응 -_-) -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왜 저는 3주동안이나 기사를 쓰지 않았을까요?
레드썬!!최면으로나마 풀릴까 말까한 미스테리를 접어두고 어쨌거나 오랫만의 무소식 희소식 통신 제 7 호는 여행특집!!!!
챕터 워어언!! 계획!
운전면허와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꼭 실행에 옮기겠다는 생각만 가진 대상중의 하나가 바로 지리산 산행이었습니다.
지리산에 대한 로망을 품은지 어언 10년!!
드디어 지리산에 가보기로 작정을 한 것입니다.
한창 휴가 인파로 어딜가나 치일 8월 중순,그냥 혼자 여행이나 가보자 싶어 지리산으로 목적지를 정하고 여기저기에 나는 지리산가 지리산에 가는거야 지리산에 갈테다"를 외쳐대던 그 어느날 7월 31일 드디어!!!뚜둥~인터넷으로 코스를 알아보기 시작했지요.
뭔 산이 길이 그리 많은지 백무가 어쩌구~노고단에 천왕봉이 어쩌구~아~!복잡한거 딱 질색은 본 통신원에게 지리산의 더 이상의 로망이 아닌 현실로 다가온 것입니다!
다음 날인 8월 1일 결국 하룻밤 7천원 한다는 대피소들이 2주간 예약이 꽉 차버리는 바람에 1박코스에서 당일 코스로 변경되었습니다.
어차피 혼자 가는데 당일이 편하겠다 싶어 무작정 기차를 예매하고 당일코스인 화엄사-노고단 구간으로 계획 수립!!
챕터 투우우!! 짐 꾸리기
전생에 짐보따리 싸기의 일인자였던 비대칭 통신원은 어딜가나 짐이 많기로 유명한 학창 시절을 보낸바 있습니다.
평일에는 도시락 4개,주말에는 2개(놀라지 마셔요 .비대칭이 돼지가 아니라 교육열이 활활 타오른 학교가 토요일에도 5시까지 자율학습을 시켜버렸기 때문이여요!),수학여행이나 극기 훈련 한번 갈라치면 기본 가방 2개 이상이었던 비대칭의 온갖 경우의 수와 노파심을 접기 위한 한가지 방법은 출발직전 짐싸기 입니다.
차라리 몇개 빼먹는 게 미리 챙긴답시고 마구잡이로 챙겨 넣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비대칭의 논리-_-!!!
새벽 6시 50분 용산발 열차를 타려면 남양주시에 위치한 집에서 적어도 5시 반 전철을 타야합니다.그러기 위해서는 4시반에는 일어나 씻고 준비를 해야하는 법!
그러나 오 놀라워라 배째정신 비대칭 통신원!!!!5시에 보무도 당당히 일어나 휘리릭 짐챙기고 양치질만 한채 집을 나섰습니다.참고로 세수를 하지 않은 이유는 잠이 깨기 싫었기 때문입니다.-_-
제 2장의 교훈은 짐은 적을수록 좋으니 급하게 챙길수록 더 좋다 입니다.
챔터 뜨리이!! 실전 여행
그나마 요 근래 기차를 탔던것은 서울-평택 또는 용산-평택 구간의 1시간 정도가 다였던 비비대칭에게 무려 4시간은 너무 가혹하였습니다.
테크놀로지의 총아 엠피3플레이어나 피디피 따위조차 없는 상황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혼자 노래부르기는 30분 정도 하고 나니 지치더군요.한 1시간은 어떻게든 자보겠는데 그이상은 힘들었다구요.카메라 건전지도 없고 해서 셀카놀이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그나마 바깥 경치가 점점 더 황홀해진 덕분에 달리는 기차에서 더이상은 참을 수 없다!!며 뛰어내리는 변고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10분도 안되는 시간동안 인터넷으로 대충 훑어보고 온 가락이 있어서인지 구례구 역에 내려 건너편 가게에서 건전지를 사고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구례구역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서는 이런 풍경이!!!_말그대로 지리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군요!!띠요요오옹~
버스를 타고 시외버스 터미날까지 약 15분,터미날에서 화엄사 입구까지 들어가는 버스는 30분마다 있고,약 30분에서 40분 가량 소요되지요
택시를 타고 구례역에서 화엄사까지 바로 들어가는 비용은 만원,시간은 20분
40분정도의 차이가 나고 차비도 8000원 가량 차이가 납니다.(편도)
버스는 주차장에서 서는데,여기서 초행자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
아~다왔구나!"라고 생각해 버리면 곤란해요
주차장에서 식당들을 지나 화엄사코스 국립공원 입구까지 약 5분 입구에서 화엄사까지 약 20분을 더 걸어야합니다.
청년성 치매에 평택 경찰서 어떤 고귀하신 형사 나으리께서 머리통 한대 더 쳐주시어 그야말로 정신이 오락가락 하던중에 전날 저녁에 아침까지 거른 것을 화들짝 깨닫고 식당에서 산채비빔밥을 먹은게 신이내린 축복이었습니다.
한참을 걸으며 생각해보니 태양을 절대로 피할 수 없음에 이미 동남아 휴가 10박 11일치 만큼이나 타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썬크림하나 준비하지 않았으며 생수 한통조차 사들고 오지 않은 것입니다.
아뿔싸!!마음뿐만 아니라 뇌마저 가벼웠던거죠!
그래도 화엄사에 다 당도해서 오른쪽에 보이는 찻집에서 500ml 얼음생수를 1000원에 판답니다~다행이지요!
몸과 마음, 뇌 또한 다 비워버린 비대칭 통신원은 음치도 환영하는 합창단이 있다는 화엄사에 드디어 보무도 당당하게(한없이 헥헥 거리며 다리는 후들후들 땀은 삐질삐질) 입성한 것입니다!!!
다녀온지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때의 감흥은 이미 가슴속에 푹 파묻혀버려서 뭐라고 써야할지 갑자기 막막하지만,확실히 기억하는 한가지는 하늘이 참 예쁜 곳이라는 거예요
휴가철이라 사람들이 많을 줄 알았지만 오히려 너무 한가로웠습니다.
절 곳곳에 지하수인지 약수인지 알수 없는 샘물이 흐르고 있지만 별로 맛은 없었어요
찻집에서 산 얼음물 대충 녹혀 마시면서 한 10분쯤 쉬다가 절 밖으로 나가 노고단으로 향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노고단은 생각보다 몹시 멉니다.
500미리 생수 한통 달랑 들고 올라가는 순진 무구한 짓은 절대로 하지맙시다!!!!
그리고 우리 모두 로켓트 밧데리는 쓰지 맙시다.
구례구역 내려서 새로 갈아 끼운 건전지가 노고단까지 가는 와중에 방전되었습니다.
너무해요!!
물도 떨어지고 카메라 건전지도 떨어지고 사기도 떨어진 나머지 생명의 위협마저 느끼면서 노고단을 약 3.5 킬로미터 남겨두고 축지법 쓰는 산신령처럼 마구마구 뛰어서 내려왔습니다.
그 돌밭길을 어떻게 내려왔는지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지요
챕터 포오오!! 정리
이번 여행을 정리해보겠습니다.
1.일단 질러보자 나홀로 여행
2.짐은 당일 출발 직전에 꾸릴 것!
3.어딜가건 물은 넉넉히 챙기자
4.로켓드 밧데리는 쓰면 안된다!
5.무작정 떠난다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
반달곰이 살고 있다는 안내문과 곰을 만났을때의 대처법 등등이 적혀있어 곰을 만나면 어쩐다지?하면서 두근두근 했지만 제가 본 것은 다람쥐 한마리와 실뱀 두마리였습니다.
그 더위에 미치지 않고서야 홀로 산행을!무섭지도 않더냐!!!등등의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노고단 등반에 실패하고 돌아 온 비대칭 통신원 입니다!
어제 드디어 옆집에서의 첫날밤 뚜둥~
주5일제를 철저히 보장해 주는 회사인지라 지난 토요일 종일 일한 것이 안스러우셨는지 실장님께서 수요일에 포상 휴가를 주셨어요~
토요일에 대추리에 못가본게 못내 아쉬웠지만 토요일과 월요일,그리고 화요일을 공기 답답한 셋트장에서 거의 12시간씩 보냈기에 기운이 딸려, 갈까 말까 망설였지요
혼자 사는 주제에 무려 강아지를 3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두달 넘게 제대로 돌보질 못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 미용도 맡기고 집도 치우고 부지런을 떨었습니다.
근 2달 정도를 평일엔 회사 주말엔 대추리'식의 라이프 스타일(거창하네~)로 지내왔기 때문에 주말 동안에 강아지들 굶어 죽을까봐 물도 마구 사료도 마구(물론 제딴에는 넉넉히라고 생각 했지만 그양이 몹시 많았던 게지요)놓아둔 통에 강아지 한마리가 완전 뚱뚱해진거예요
그것도 요크셔의 특징상 털이 무성할 당시에는 몰랐다가 털을 박박 밀어놓았더니 숫컷임에도 불구하고 임신한 암캐같은 형상이였지요
미안하고미안하고 또 미안할 따름이예요
배려랍시고 오히려 방관만하고 학대아닌 학대를 한게 아닌가 싶어서요
하여간 오전동안 볼일 다보고 거만하게 낮잠까지 한숨 자준 다음 대추리로 갔어요
언제나 그렇듯이 버스를 타면 검문소에서 어찌어찌 대처해야지 하면서 거짓말 시나리오를 그럴싸하게 짰지만 5시 10분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6시까지 기다리기 힘겨워 그냥 택시를 홀랑 잡아 탔습니다
때마침 옆에 계시던 할아버님도 16번을 기다리시는 것 같아 여쭈어보니 동창리에 사신다셔서 같이 택시를 탔습니다(살초대첩 모자가 웬지 정겹더라니~)
버스용 거짓 시나리오를 택시용으로 각색까지 하였으나 너무나 싱겁게 술술 들여보내주는 통에 허무하기 그지 없었어요
지난달 신들린 듯이 꾸몄던 옆집은 그 후로 단 한번 청소하러 들어간 것 외에는 가도 잘 들르질 못했어요
불판 친구들이 없으니 혼자 있기가 좀 그래서요
어제는 먼저 들어간 D***과 매*,비*가 있어서 큰맘 먹고 그집에서 자기로 하였지요
게다가 지난주에 들어왔던 구뿅뿅과 미뿅뿅님께서 D뿅뿅님과 함께 여기저기서 마련한 세간살이는 최고최고!!!없는게 없습니다!포터블 카셋트(전기와 건전지 겸용!!+_+),씨디가 한장도 안 꼽혀있는 40장용 씨디꽂이,책이 별로 없는 책장,거실 테이블과 티테이블!!!전기와 수도가 없는게 흠이지만 지킴네 집에서 전기는 연결이 되어 형광등까지 환히 밝히고 온갖 유치하고 알찬 놀이를 하였어요
기억력테스트,원카드,고스톱(아 이건 놀이가 아니라 노름인가요?그래도 판돈은 오가지 않았다구요!),물론 매*이 염원하던 마피아 게임은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즐거웠어요
자기가 참여한 방에서 자야한다는 말도 안되는 규칙 때문에 비대칭 통신원은 모두가 두려워 마지 않는,급기야 미친방이라 불리우는 싯퍼런 방에서 자게 되었습니다
당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방에서 자다간 10분도 안되어 뛰쳐 나오게 된다,필경 귀신이 나오고 말것이다,자려면 그 귀신같은 인형은 치우고 자라'(주로D***이 한말들임)면서 은근히 겁을 주었습니다
뭐면 어때'식으로 자려고 누웠는데 머리를 풀어헤지고 D***이 오더니 매*과 비*가 줄이어 들어왔습니다
그 순간 출사대회 모드로 분위기가 확 바뀌면서 서로 괴기스러운 사진찍기에 몰입했습니다
감정에 몰입한 나머지 너무나 망가진 무소식 희소식 통신원은 행여나 그 사진들이 엽기 사이트에 유포 되지나 않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수천만!!(내 카메라에는 별로 없지만 나머지 3인의 카메라에 무수히 찍혔으니 입수되는대로 마져 올릴게요)
그나저나 무서운 것은 귀신이 아니라 모기라는 새로운 사실!!!
어찌나 모기가 많은지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밤이었어요
그리고 새벽엔 살짝 귀신 비슷한 것도 보았답니다!!오예~
하여간 그 으시시한 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새벽버스로 나와 기차를 타고 출근했어요
오랫만에 부지런한 하루입니다~
그렇지만 졸리고 배고파요!!!
아참! 그리고 마뿅뿅이 강아지를 좋아한다고 하니 뚱땡 강아지도 이제 대추리에 데리고 갈까해요^^
몽상님의 [박래군 구속과 석방에 관한 새로운 진실. ^^] 에 관련된 글.
또 웃고 계시내요.
내공이 장난이 아니세요.
유치장 만 이틀 있는 것만으로 곤욕이였는데
거의 2주를 갇혀 지내시고도 저런 해맑은 웃음이 나올 수 있다니 놀라워요.
언제 어디서나 웃을 수 있는 용기.
언제 어디서나 화내는 것보다 어려운 일일텐데도 너무 자연스러우셔서 새삼 더 놀랍니다.
석방 축하드려요^^
아싸~나는 부시의 몸종이 되지 않아도 되겠구나!!
비도 그치고 오랫만에 머리도 개운하고 지각도 겨우 10분!
아름다운 하늘!
오늘은 행복합니다!!!!!!!!!!
오 맙소사~
해마다 겪는 장마지만 어찌나 비가 내리쳐 주시던지 황금같던 연휴를 집밖으로 단 한발자국도 내딛지 않고 근 이틀을 버텼습니다.
금요일 퇴근후 바로 대추리에 갔다가 토요일 밤에 나왔습니다.
다행히 대추리에 있는 동안은 큰비는 없었어요.
당시 서울쪽은 비가 억수로 내렸다고 하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밤기차로 용산에 내려 덕소까지 오는 중에 비는 초지일관 내렸고 심지어 덕소역에서는 밤 12시 넘은 시각이라 버스도 깜깜무소식 택시도 무소식이었습니다.
희소식일리가 절대 없는 무소식 와중에 게으른 주제에 성질은 급해서 무작정 걸었습니다.
걷다가 택시라도 잡아 볼까 가던 걸음 고이고이 멈추기를 거듭하던 끝에 걸어서도 20분이면 오는 거리를 40분여에 걸쳐 당도했습니다.말그대로 오마이갓!
비가오면 남들은 허리가 아프다지만 비만 올라치면 하루전부터 기상청 레이다보다 더 확실하게 머리가 아파오는 비대칭 통신원이기에 삼가 아로옵기 황송하오나!!
이 비를 멈춰만 준다면 대 미합중국의 부시 대통령(바보바보!!!)의 몸종이라도 되겠다고 힘껏 외치는 바입니다. -_-
다시 태어나 나무가 되려는 이유도 비가오면 좋아라 할 것이 또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일요일과 월요일에는 왜 집에는 당췌 오지를 않냐며 성토하시는 어머니와 여동생의 갖은 협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무기력을 거듭하다 보면 오히려 일종의 카타르시스마저 느끼는지라 나름 잘 지낸 연휴였습니다.
문제는 연휴를 보낸후의 출근길!!!
아 괴롭습니다.
산업 역군이 되어 열심히 일해보겠다고 다짐해 보지만 역시 이틀째 되는 오늘도 힙겹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아~장마는 다음주에도 계속 된다고 합니다.
범국민 대회가 있을 이번 주말 내내 아마도 초초초초과 근무에까지 돌입할 듯 싶습니다.
어디에 있어도 마음이 안잡힐 듯한 주말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습니다.
에잇!목요일인줄 알았는데 이제 겨우 수요일이쟎아!!!!!!
참고사진:2006년 7월 17일 당시 초무기력 사진 -_-
여기서 잠깐!!!
또 한가지! 죽어라 비를 싫어라 하는 비대칭 통신원으로써는 도무지 이해가 안가는 미스테리!!
비가 온다고 온다고 온갖 매체에서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3일 이상의 연휴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시고 여행 가셨다가 구조당하신 분들 참 대단하십니다!!!짝짝짝!!!기립박수~
탄원서
판사님. 이 사건의 판결을 맡으신 용 판사 님께서는 판사 님의 가치관이나 삶과 퍽 다르게 살아온 사람의 이야기일지라도 가슴에 담아 읽으실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신 분이길 바라면서 탄원서를 씁니다.
저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다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된 인권활동가
박래군의 아내입니다. 동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며,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5학년인 두 딸을 키우는 평범한 엄마지만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과 남편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알고 한마음으로 더불어 한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저희 남편은 평생을 낮은 곳에서 인권을 일궈내고 정의와 진실이 살아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활동을 하면서 힘겹게 살아 왔습니다. 독재 시절에는 민주화를 외치다
억울한 옥살이를 1년이나 했고, 부모님도 모르는 사이에 군대에 강제 징집을 당했고,
자기 몸에 불을 붙여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며 분신 항거했던 동생의 시커멓게 탄
몸뚱이를, 꺼져가는 죽음을 지켜보아야만 했습니다.
숱한 슬픔과 고난이 있었지만 그는 한 번도 그 고난의 길을 피해 따뜻한 안식처를 찾지 않았습니다. 그가 그렇게 살아온 것은 내가 편안하고 배부르게 살 때, 내 곁에서 힘들게 고통받고 억압받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는 착하고 올곧은 심성의 소유자로 자랐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어릴 적 아주 가난하게 살았답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땅 한 평 없이 머슴살이로 시작해 농토를 일구어 삼형제를 가르쳐야 했던 집안이었으니까요. 도시락을 싸가지 못해 점심시간이면 집까지 뛰어와 끼니를 때우고, 등잔불도 아끼시는 할머니 때문에 밤에는 그토록 읽고 싶었던 책도 읽을 수 없었답니다.
악착같이 농사일을 하셨던 부모님은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고, 과일이며 채소를 장에 내다 팔고, 그것도 모자라 살을 에는 추운 겨울에는 뻥튀기 구르마를 끌고 다니며 장 바닥에서 겨울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삼형제는 너무도 착해 학교에서 돌아와 밤늦도록 농사일을 돕고 그 추운 겨울에도 뻥튀기 구르마를 따라나서 하루 종일 시커먼 연기를 뒤집어쓰고 부모님을 도왔답니다.
가슴 절절한 시를 많이 썼던 동생이 남긴 시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죽기 전에 자갈논 한 자리나마 가지고 싶다
밤낮없이 새경을 모으고
살 에이는 겨울길
뻥튀기 구르마를 끌던 아버지
국민학교 6학년 어린 나이로
구르마 쫓아다니던
큰 형님이 가여워
밤마다 베갯잎을 적시던 엄니
양회포 한 포대 얻자고
이장한테 삿대질하다가
퍼렇게 멍든 아버지 얼굴 보고
여보
우리도 한 번 보란듯이 삽시다
울며울며
자식새끼들 끌어안으시던
엄니
시에 나오는, 등골이 휘도록 힘들게 살아온 부모님을, 부모님처럼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남편은 외면하지 못했습니다. 잊지 않았습니다. 연세대 국문과를 나온 그가 마음만 먹으면, 귀를 막고 쳐다보지 않고 살았으면 이렇게 힘들게 살지는 않았을 텐데, 지금처럼 감옥에 갇히지도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남편은 인권의 불모지인 이 땅에 인권의 싹을 심고 키웠습니다. 장애인, 이주 노동자, 성적 소수자, 노숙자, 양심수, 구속 수감자, 복지 시설 수용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최소한의 인간적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고, 당하고, 멸시받고, 차별받는 곳으로 달려가 그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찾고 고민하고, 그들이 일어서서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만들어 갔습니다.
반인권과 부패로 얼룩진 사회복지설이었던 에바다 농아원을 정상화하기 위한 싸움에선 비리재단 측에서 퍼부은 똥물을 뒤집어쓰면서도 말 못하는 이들의 귀와 입이 되어 주는 일을 놓지 않았습니다. 고문후유증을 앓던 선배의 길잡이가 되어 주었고,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람들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을 했고, 폭력적인 수용 시설에 억울하게 끌려가 짐승만도 못한 삶을 살았던 수용자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수용 시설에서 나왔던 한 사람은 10년이나 인연을 맺고 있었는데 그는 고아여서 가족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남편은 그의 형제나 되는 듯 그 사람이 이사를 하면 이삿짐을 손수 날라 주고,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를 들어 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지금 교도소에 있는데 얼마 전 석방 날짜가 연기된 줄도 모르고 사무실 총회를 밤 새워 하고 새벽에 춘천까지 차를 몰아 그를 맞이하러 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왔습니다.
그가 가는 길엔 왜 이렇게 슬픔과 어려움과 시련이 많을까요. 쉽게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자신과의 싸움, 가진 자들과의 싸움, 폭력과의 싸움, 권력과의 싸움, 불의와의 싸움, 편견과의 싸움... 끝도 없는 싸움이 계속되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늘 씩씩하게 웃고 다닙니다. 우울하거나 비관하는 법이 없고, 좌절하지도 않고, 고난 앞에 무릎을 꿇지도 않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찾아갑니다. 어떤 사람과도 잘 어울리고, 자기 말을 하기 전에 남의 말을 들어 주었던 그의 곁엔 언제나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남편은 바깥 일로 늘 바쁘게 살지만 가정에도 충실한 책임감 있는 가장입니다. 아내를 존중하고 아낄 줄 아는 남편이고, 아이들로부터는 정신적 지주란 믿음을 얻고 있는 아빠입니다. 활동을 하면서도 틈틈이 원고를 쓰거나 이런저런 일을 하여 가정의 경제도 책임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들을 무책임하게 돌보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자는 시간이라도 쪼개어 가족들을 보살핍니다.
넓적하고 그을린 투박한 얼굴과는 달리 집에서는 아주 섬세하게 가족을 챙깁니다. 아이들이 엄마인 저보다 아빠를 더 좋아하는 이유는 아이들 눈높이에서 아이들을 이해해 주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아이들과 놀아 주고, 아빠는 좋은 분이라는 믿음을 주었기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희 옆집 아주머니는 저희 집 아이들은 엄마가 오면 엄마하고 큰소리로 나와 부르지 않는데 아빠가 오면 맨발로 뛰쳐나와 소리를 지르며 아빠를 반기며안긴다고 애들이 아빠를 참 좋아한다고, 무슨 아빠가 애들을 그렇게 이뻐하냐고 자주 말씀하십니다.
저희 남편은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아이들의 아빠로서 뿐만 아니라 지금도 경기도 화성에서 포도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늙으신 부모님에겐 너무도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들입니다. 저희 아버님은 여느 농민처럼 당신의 목숨처럼 땅을 아끼시며 한평생 농사밖에 모르고 살아온 분이십니다. 제가 결혼하던 해 고관절을 앓으시고 한 쪽 다리를 못 쓰게 되셔서 목발을 짚고 다니시지만 농사일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오래 서 있을 수도 쪼그려 앉을 수도 없으셔서 땅바닥을 기어다니시고 스티로폼으로 만든 방석을 끌고 다니면서도 밭일을 하십니다.
다들 왜 그렇게 사시냐면서 농사일을 그만두시라고 만류하지만 아버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농사를 지으시겠답니다. 만류하는 가족도 있지만 저희 남편은 아버님이 그토록 지키고 싶어하는 것을 존중해 드리고, 아버님이 그럴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 드리고, 주말에 시골에 내려가 농사일을 돕습니다. 토요일도 나가 일하고 돌아와 일요일엔 쉬어야 하는데 달려갑니다. 땅을 갈아 곡식과 채소를 심을 수 있게 해 드리고, 두둑을 만들고, 고추 말뚝을박고, 거름을 져 나르고, 농약을 주고, 포도를 따고, 포도를 갖다 팔고, 고추를 따고 고구마를 캐고, 깨를 털고, 농기계를 수리하고... 쓰려면 다 쓸 수도 없는 고된 농사일을 불평없이 하고 돌아옵니다. 막내아들을 그렇게 먼저 보낸 부모님이 찢긴 가슴을 쓸어내리며 외롭게 농사를 짓고 계신다는 생각을 놓을 수 없어서일 것입니다.
한평생 좋은 일도 없이 자식을 다 떠나보내고 병든 몸으로 외롭게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께 차마 남편이 구속되었다는 사실을 알릴 수 없었습니다. 자식이 감옥에 갇혀 있다는 걸 아시면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실까, 참 걱정이 많이 됩니다. 아빠가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들은 몹시 슬퍼하고 마음 아파했습니다. 아빠 같이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을 왜 구속시키는지 모르겠다며 엄마와 아빠 모두 힘내시라고 오히려 위로를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판사 님께 비굴하게 빌지 말고 당당하게 부모님의 뜻을 말씀 드리라는 말까지 하였습니다.
돌아보면 그와 수많은 인권활동가들의 행동은 이 땅의 소외된 자들의 인간다운 삶, 자유롭고 평등하고 인간의 권리가 존중되는, 존엄한 삶을 위한 고귀한 실천이었다고 생각됩니다.수많은 인권활동가의 노력으로 국가인권위원회도 만들어진 것이고 국민들도 인권에 대한이해를 넓히고 인권을 찾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남편이 경찰 대학에 가서 인권 교육을 하고 법조인이 인권 교육을 받기도 하는 세상이니 인권의 싹이 크긴 큰 모양입니다. 그러나 인권은 아직 커다란 나무로 자라지 못했고 숲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인권활동가가 구속되고, 평생 살아온 땅에서 옷이 벗겨진 채 처참하게 끌려가는 농민이 있는 걸 보면 말입니다. 그는 진실의 편에 서 있었고 그의 외침은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임에도 불구하고 왜 그가 지금 구속되어 철창 안에 갇혀 있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번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 반대 또한 이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외면해서는 안 되는소중한 것이었기에 나선 것입니다. 이 땅을 미군에게 내어 주어 전쟁터로 만들고 싶지 않으며 평생 살아온 땅에서 쫓겨나고 싶지 않음은 당연한 마음이고 지키려는 싸움은 정당한 싸움입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사업 추진 중 일어난 충돌은 주민과 국민의 충분한 협의와 동의 과정없이 일부는 돈으로 회유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땅은 강제로 빼앗으려 는 일련의 과정에서 빚어진 것입니다. 공무집행방해라는 실정법보다 더 소중한 것은 이 땅의 평화이고 농민들의 생존권입니다. 농민들을 강제로 내쫓고 땅을 강제로 파헤치는 일을 공무라고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국민들이 원하는 일을 했다면 그렇게 반대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공무를 방해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악이 그것에 저항한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몸부림 끝에 뒤바뀌었는지 역사를 돌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땅을 전쟁기지로 내어 주고 농민을 내쫓은 일도 부끄러운 역사가 되리라는 것을, 실정법보다 더 소중한 가치를 용기 있게 지켜내려 했던 실천이 옳았음을 재판 과정에서 밝힐 것입니다.
제가 길게 저희 남편의 어린시절이며 살아온 이야기를 한 것은 저희 남편은 비겁하게 도주하지 않을 것이며, 재판을 성실하게 받고 진실을 밝히려 애쓸 사람이라는 것을 판사님께서 알아주시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구속이 필요하다고 상당히 의심된다는 ‘공무집행방해죄’는 검사 님의 소견일 뿐입니다. 이렇게 충돌되는 사안은 양쪽의 주장을 공평하게 들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양쪽의 주장을 듣고 재판을 통해 진실을 가리면 됩니다.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불구속 수사와 재판으로도 얼마든지 죄를 물을 수 있습니다. 죄가 있다고 상당히 의심되지도 않거니와 증거 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는 인권활동가를 구속하는 것은 부당하고 억울합니다.
현 정부는 형사소송절차에서 피의자 인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불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집행해 나가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신념에 따라 공개적으로 활동해 온 저희 남편은 왜 구속되어야 하나요? 아빠의 구속을 아이들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판사 님, 부디 불구속수사 원칙이라도 지켜진 속에서 남편이 진실의 법정에 설 수 있도록 힘써 주시길 간절히 청합니다.
판사 님, 아이들 아빠를 풀어 주십시오. 남편이 집에 돌아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게, 그가 이 세상 그늘진 곳에서 햇볕을 드리우는 소중한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시길간곡히 청합니다.
박래군 아내 정종숙
출처 : rainmaker10
네이버 블로그에서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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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칭... 난 명랑.. 난 평상시에는 그네들이 무섭지 않은데.. 상관의 명령을 받은 그네들은 무서워... 명령 내리는 이만 혼내줄까요....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