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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지부신문 칼럼 원고

 

지난 9일 이석행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노총 5기 지도부가 핵심 간부의 성폭력 파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사퇴했다. 이준용 사무차장 등 실장급 집행간부 9명과 특별위원장 5명도 사직서를 제출했다. 민주노총은 11일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오는 4월8일 안에 대의원대회를 열어 보궐선거를 치르기로 했다.


민주노총 지도부 총사퇴는 이번이 네번째다. 지난 1998년 민주노총이 참여한 노사정위원회가 정리해고 법제화에 합의하자 민주노총 대의원들은 2월 임시대의원대회에서 합의안을 부결시켰고, 1기 지도부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2002년 4월에는 민주노총 투본 대표자회의에서 발전노조 파업에 대한 노정합의안이 부결됐고, 구속 중이던 단병호 위원장을 제외한 3기 지도부 전원이 총파업 철회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2005년 10월에도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뇌물수수 파문으로 4기 이수호 집행부가 총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3~4년에 한 번 꼴로 되풀이돼온 민주노총 지도부의 총사퇴 배경에는 무엇보다 민주노조운동의 이념(자주성, 민주성, 투쟁성)과 도덕성, 운동성(연대성, 변혁지향성)의 상실이 놓여 있다. 민주노총 1기 지도부의 노사정합의와 3기 지도부의 노정합의가 민주노조운동의 자주성과 투쟁성, 민주성을 훼손시켰다면, 4기 이수호 집행부의 뇌물수수 비리와 5기 이석행 집행부의 성폭력 사태는 민주노조운동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혔다.


민주노총이 정규직 대공장 남성 조합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안주하면서 대공장-중소공장, 남성-여성, 정규직-비정규직, 정주-이주 노동자 사이의 차별은 갈수록 심화됐고 “노동자는 하나”라는 계급성과 우리 안의 낮고 약한 곳을 돌보고 함께하는 연대의 정신은 시나브로 무너졌다.


민주노조운동이 공장 안에서 경제적 요구와 임단협에 집중하는 동안 공장 바깥에선 신자유주의 자본주의가 우리 사회 구석구석을 초토화시켰다. 우리 사회 모든 곳에서 정규직 일자리는 급속도로 사라졌고, 교육, 의료, 사회보험, 전기, 가스, 물, 철도 등 공공영역이 야금야금 허물어져갔다. 은행도 방송도 삼성․현대 등 대재벌과 조․중․동 등 보수 언론에 송두리째 넘어갈 판이다. 사회 공공영역에서 보장받을 게 없으면 모든 것을 사적 소득(임금)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임금인상을 위해 공장 안 임단투에 매달려야 하고, 아이들 사교육비를 대기 위해 잔업․특근에 목을 매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자본주의를 넘어선 다른 세상과 새로운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노동운동 본연의 가치는 어느 순간 우리 운동에서 사라져버렸다.


민주노총이 이 지경으로 처참하게 무너지는 사이에 검찰은 용산 참사가 철거민들의 ‘자폭’ 때문에 일어났다고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22년 전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두고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던 경찰의 거짓 발표가 떠오른다. 이명박 정부가 저토록 막 나가는 까닭 중에는 운동성을 잃어버린 민주노총의 참담한 현실도 한 몫 하고 있다. 위기 때마다 처방전처럼 언급돼온 ‘민주노조운동의 뼈저린 반성과 재구성’이 이번에도 말로 그친다면 이 땅에서 민주노조운동은 다시는 회복되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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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1 12:46 2009/02/11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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