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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현미향 사무국장 
 
'산재도시' 울산

 

중대재해로 한 해 70~80명이 죽고 산재 요양중인 노동자 수가 평균 3000명을 넘나드는 ‘산재도시’ 울산.

 

‘산재직업병 백화점’이란 별명이 붙은 현대중공업, 오랜 기간 반복된 주야맞교대 밤샘노동으로 ‘골병과 죽음의 공장’이란 오명을 듣고 있는 현대자동차, 잦은 화재폭발 사고와 유기용제 중독, 직업성 암의 공포에 시달리는 석유화학 공장, 여전히 “잘린 손가락 바라보면서 소주 한잔 마시는 밤”을 노래해야 하는 경주 모화, 외동, 달천공단의 영세공장들까지 울산엔 크고 작은 ‘산재다발’ 사업장들이 즐비하다.


'노안'활동 10년째

 

지난달 열 번째 정기총회를 치른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은 ‘산재도시’ 울산에 하나밖에 없는 노동안전 전문단체다.

 

10년째 울산산추련의 살림을 도맡아온 현미향 사무국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울산의 ‘노동안전 전문활동가’다.

현미향 사무국장은 1991년 동양나일론 울산공장에 입사했다가 창원으로 건너가 소규모 부품사업장들이 밀집해 있는 차룡단지의 한 공장에서 일을 했다.

 

1994년 ‘창원지역금속노조’가 만들어지자 분회장과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거기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울산에 다시 온 건 1997년 3월. 생계가 너무 어려워 학습지 교사를 했다. 2004년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에 따른 호흡곤란으로 목숨을 잃은 구몬학습지 고 이정연 교사의 산재 재심청구서를 이 때 경험을 살려 썼다. “학습지 교사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절절함이 재심청구서에 담겼다.

 

1999년 3월 서울, 인천, 대구, 마창 등지에 있는 노동안전보건단체들이 울산에 모여 전국산재추방운동연합 창립총회를 열었다.

 

울산에도 노안단체가 있으면 좋겠다고 느낀 현장의 산안부장들이 팔을 걷어붙여 울산산추련 준비위원회가 꾸려졌고, 다음 해 1월11일 울산산추련이 공식 출범했다.

 

현미향 사무국장은 1999년 10월 민주노총울산본부에 마련된 울산산추련 준비위원회 사무실에서 상근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노안’활동이 벌써 10년째다.


산재추방운동의 역사

 

1988년 문송면 수은중독 사망사건과 원진레이온 직업병 인정투쟁을 기점으로 시작된 산재추방운동은 90년대 중반 금속연맹 조선분과를 중심으로 진행된 작업중지권투쟁과 근골격계 공동검진사업 등을 거치면서 발전해왔다.

 

1998년 IMF 이후 몰아닥친 구조조정과 인원축소, 노동강도 강화는 2~3년 뒤 현장에 골병(근골격계질환)과 과로사(뇌심혈관계질환)를 집단 발병시켰고, 강화된 현장통제는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질환을 불러왔다.

 

노동자들은 집단으로 저항했다. 2000년대 들어와 대우조선노조를 필두로 현장에서 근골격계투쟁이 활발하게 벌어졌다. 근골격계투쟁은 집단적으로 산재인정을 요구하는 집단요양투쟁이자 치료를 마치고 현장에 돌아왔을 때 재발을 막기 위한 노동강도완화투쟁이었다.

 

깜짝 놀란 자본은 2003년 근골격계 법제화로 밀리는가 싶더니 2004년 경총 산하에 기업안전보건위원회를 꾸리면서 반격에 나섰다. 근골격계 산재인정 기준, 요양업무 처리 기준, 집단민원에 대한 처리지침 등 3대 독소조항이 도입됐다.

 

IMF 이후 노동현장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근골격계, 뇌심혈관계, 직무스트레스 관련 정신질환 등에 대한 산재 불승인을 강화하는 공격이 시작됐다.

 

자본과 노동계는 산재보상보험법 개정을 둘러싸고 2005년부터 2007년까지 투쟁을 벌였다. 결론은 노동계의 완패였다.

 

2007년 11월23일 산재보상보험법이 전면 개정돼 지난해 7월1일부터 적용되기 시작했다.

 

“개악된 산재보상보험법은 산재 진입은 최대한 어렵게, 산재요양은 최대한 짧게, 장애등급은 최대한 낮게, 각종 보장은 최대한 적게 하는 게 핵심이예요. 40년만에 최악으로 개악된 겁니다.”


작업환경을 바꾸는 현장 일상활동이 가장 중요

 

현미향 사무국장은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직접 위험요인을 찾아내서 작업환경을 개선해나가는 안전점검활동이 일상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속노조에서 작년부터 노안사업을 다양하게 벌이고 있어요. 노안단체들과 함께 ‘노동안전보건활동지침서’도 만들었고, 11개 지역지부를 순회하면서 교육도 실시했습니다. 현장에서는 개악된 산재법의 내용도 궁금해 하고, 특히 유해물질이나 MSDS(물질안전보건자료) 같은 쉽게 접할 수 있는 문제들을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관심이 많거든요. 현장에서 일상적인 안전점검활동을 비롯해서 다양한 시도들을 진행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일이 너무 많아요"

 

울산산추련은 노조회원과 대부분 전현직 노조 노안간부들인 개인회원, 후원회원들이 내는 회비로 재정을 꾸려간다. 한달 130만원이 조금 안되는 돈이다. 모자라는 재정은 1년에 한 번 하는 재정사업으로 메운다.

현미향 사무국장과 이정욱 상담실장의 활동비는 ‘최저임금’에 맞춰져 있다. 여기에 1년에 1만원 근속수당이 붙는다. 빠듯할 수밖에 없다.

 

“해마다 보릿고개가 있어요. 재정사업 하는 5월 전 3~4월이 제일 어려운 시기예요. 그때마다 무사히 넘어가길 바라면서 그냥 견딥니다.”

 

재정의 어려움 말고도 힘든 건 또 있다. “일이 너무 많아요. 울산의 노안활동에 대한 무거운 짐을 산추련 혼자 외롭게 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굉장히 힘들어요. 어떤 분이 저더러 노동자 건강만 챙기지 말고 본인 건강도 챙기라고 메일을 보내왔어요. 작년에 118명을 상담했는데 이 분들을 서류 만들고 이런다고 보통 서너 차례 이상 만나거든요. 그러니 하루에 한 명 꼴로 상담을 한 거예요. 10년 동안 따지면 1000명 넘는 노동자들을 만난 셈입니다. 거기다 노안교육도 늘어났고, 연대사업도 해야 하고, 회원교육에 소식지 발행까지 업무가 너무 과중해요.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 하나로 10년 동안 버틴 것 같아요.”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주야맞교대 밤샘노동을 주간연속2교대로 바꿔야 합니다. 노동강도가 완화되지 않으면 현장에서 쓰러지는 사람은 계속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노동재해를 입은 노동자들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만날 수 있는 현미향 사무국장. 그의 ‘노안활동’이 지난 10년에 이어 앞으로 10년 동안에도 계속 이어지기를... 너무 '염치'없는 바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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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5 16:57 2009/03/05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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