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만나기

"우리 손으로 만든 소극장, 용감하게 들이대세요"
[인터뷰] 대안문화공간 소극장 '품' 유미희 대표

 


"니 뭐가 될라꼬 학원비 띵가먹고 땡땡이 치나? 아빠가 니 학원 보내려고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 줄 아나?"

 

"에이 씨, 한 대가리(잔업 또는 특근) 더 하면 될 거 아이가?"

 

현대차 문화회관에서 어느 엄마와 초등학생 남자 아이가 나눴다는 대화 한 토막이다. 이 아이의 눈에 노동자 아빠는 그저 '돈 벌어오는 기계'로 비쳐졌던 걸까?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22년이 지났지만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시각은 그닥 변한 게 없다.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는 여전히 TV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나오지 않는다. 노동조합이 경제적 요구에 몰두하는 동안 노동자들의 사회적, 문화적 삶의 질은 형편없이 떨어졌다. 잠을 자거나 TV를 보거나 술을 마시거나 노래방을 가는 것 말고 노동자들이 누리는 '여가'라는 걸 상상하기 힘들다. 노동자들은 자본주의에서 배설물처럼 버려지는 싸구려 유흥문화를 그냥 소비할 뿐이다. 일상의 모든 것들이 자본주의에 포섭돼 있다. 대안은 없을까? 지난해 10월1일 중구 성남동에 문을 연 소극장 '품' 유미희 대표를 만나 자본주의적 삶의 양식과는 다른 노동자들의 대안문화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 팍팍한 사람들에게 문화라는 건 여전히 아주 먼 얘기죠. 하지만 가파른 삶 속에서도 먹고 사는 것 말고 우리가 향유하고 요구해야 할 것들이 분명히 있어요. 문화란 사회적 약자들이 세상과 싸우는 또 하나의 중요한 투쟁 영역입니다.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문화를 좀더 가깝게 자기 것으로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자본주의 문화상품을 단지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저항과 연대, 공동체적 가치를 담은 예술작품을 함께 소통하고, 다양한 상상력으로 자신의 삶을 표현하고 실험할 수 있는 그런 거점, 진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소극장 '품'은 문을 열고나서 연극 '짜장면 불어요'와 고난받는 사람들을 위한 작은 음악회 등을 공연했고, 연극 아카데미를 진행해왔다. "몇 차례 공연을 통해서 관객들 사이에 관계 인프라가 만들어졌어요. 그게 성과라면 성과죠. 지난 석 달 동안이 대안문화공간을 만든 문제의식을 넓혀온 과정이었다면 이제부터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사람을 만들고 주체를 형성하는 일을 하나씩 벌일 계획이예요."

 

자아를 찾아가는 춤 여행, 청소년 연극교실 등 교육 프로그램과 기획공연, 콘서트 등이 준비되고 있다. "여백을 많이 두려고 해요. 주변에서 용감하게 많이 들이댔으면 좋겠어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창발적 상상력을 갖고 이 공간을 활용한다면 1년 계획이 촘촘하게 잡힐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기획자들이 많이 생겨서 기획자 네트워크도 만들고 관객 네트워크도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소극장 '품'은 회원들의 후원회비와 대관료 수입으로 운영된다. 정부와 기업의 지원을 받지 않는 공연.예술작품의 경우 "저렴한" 대관료로 소극장을 이용할 수 있다. 대관료 수입은 더 큰 대안문화공간 마련을 위한 종자돈으로 모아갈 계획이다. "5개년 계획을 잡아서 임대가 아닌 제대로 '갖춰진' 공간을 마련하는 게 꿈이예요. 대기업 노조에 제법 큰 규모의 적립금이 쌓여 있는데 이 돈들이 단위사업장에 갇혀 있지 않고 노동자들이 나눠 쓸 수 있는 대안문화공간과 프로그램으로 사회화됐으면 좋겠어요."

 

돈 문제가 나온 김에 유미희 대표 개인은 생계를 어떻게 꾸려가는지 물었다. "너무 끔찍하죠. 한달에 차 기름값으로 한 20만원 들어가고 핸드폰 사용료가 7~8만원 나와요. 나머지 생활비는 같이 사는 사람들이 도맡아 내죠. 지난 몇 달 동안 생활비를 한번도 내지 못했어요. 다른 건 거의 소비하지 않습니다." 소극장 '품'의 여러 실무를 혼자 도맡아 해야 하는 유미희 대표는 생계를 위해 일주일에 한 시간씩 아이들을 대상으로 책을 읽어주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이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이 한달 6만원. 나머지는 연극 지도 나갔을 때 불규칙하게 들어오는 2~30만원이 전부다.

 

돈도 문제지만 '사람'이 더 큰 문제다. "문화운동을 자기 활동의 중심으로 삼는 활동가가 너무 없어요. 대안문화공간이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전업으로 이 일에 매달릴 문화활동가가 절실합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유미희 대표는 꿈을 멈추지 않는다. "방치되고 있는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다른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어요. 이주노동자들이 연대해나갈 수 있는 거점이 돼 주는 것도 중요할 것이고, 노동재해로 다치거나 병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도 한 공간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대안문화공간 소극장 '품'(052-244-9654), 후원계좌: 농협 823-02-486054 유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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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2 07:57 2009/02/12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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