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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울교협통신] 47호 96.12.20

 

여전한 부정부패

  부정부패와 비리를 빼놓고 한국 사회가 굴러가는 속 힘을 얘기할 순 없다. 올해도 이 점을 다시 확인시켜주는 '화려'한 사건들이 많았다.

  전두환, 노태우의 5,6공 비리가 재판정에 오르면서 사람들은 대통령만 되면 몇년 사이에 5천억원 쯤 제 주머니에 쑤셔넣는 건 일이 아니구나, 그래서 정치한다는 작자들이 죽어라 대통령할라고 그러나 부다 그랬다. 연봉 2,3천만원짜리 노동자들이 이만큼 되는 돈을 만져보려면 죽어라 일해서 20년에 1억 모은다 치고 10만년 걸린다. 10만년이면 단군 할아버지서부터 비롯된 한반도 5천년 역사를 열아홉번 더 써야 하는 시간이다.

  김영삼의 가신(家臣)으로 청와대 살림을 도맡는 제1부속실장 자리에 앉아 있던 장학로는 '떡값'으로 효산그룹을 비롯한 기업들한테서 몇천만원씩 챙기다가 쇠고랑을 찼다. 사람들은 뭔 놈의 떡값이 그리 비싼지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은행 돈 빌려주는 값으로 5억원짜리 집 한 채가 뚝딱, 한번만 만나자고 안달내는 사람들 시간 쪼개 술 한잔 얻어마시면 덤으로 또 몇백만원이 뚝딱! 청와대가 좋긴 좋은 모양이다, 아파트 한 채 마련하려고 죽을둥 살둥 발버둥치던 '쪼다' 인생들은 썰렁한 속을 애꿎은 소주로 달랠 수밖에 없었다.

  장학로 같은 잔챙이들만 '튄' 게 아니다. 보건복지부장관이던 이성호는 이른바 안경비리에 얽혀 장관 자리에서 잘렸고 제 마누라는 감방살이 신세다. 이양호는 국방부장관일 때 뒷돈 먹은 게 들통나 지금 '법무부 밥'을 먹고 있다. 잘 나가는 국회의원 나리들도 질세라 물밖 나들이에 돈 씀새가 커 눈총 받긴 매한가지였다. 도대체 그 많은 돈들이 다 어디서 나서 저 지경일까 사람들은 그저 세상 꼴이 그러려니 하고 이제 그닥 놀라지도 않는다.

  8월 15일 5,6공 때 비리를 저질렀던 '범털' 죄수들이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해방'됐다. 12월 18일 전두환은 사형에서 무기로, 노태우는 22년하고 여섯달에서 17년으로 징역이 줄었다. 재벌들은 싸그리 다 '면죄부'를 받고 입이 찢어졌다. 전두환과 노태우도 이 징역을 그대로 살 거라 믿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게 우리네 통박이다.

   '봉투'가 없으면 되는 일이 없는 세상, 우리네 임금 총액과 맞먹는 기업 매출액의 10% 넘는 돈이 이 놈의 '윤활유'로 쓰여지는 세상, 줄줄이 얽히고 설켜 있는 먹이사슬, 그 한 고리라도 부여잡지 못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세상,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이런 세상이다.

  정부가 자본의 경영합리화를 빚대 체제유지비용의 낭비를 줄이겠다고 개혁이다 뭐다 정치행정을 합리화하겠다고 나섰지만 그 나물에 그 밥인 처지로 칼 휘둘기가 마땅찮다. 시민운동세력이 '맑은 사회 만들기 운동'에 나서지만 세상 꼴을 이루는 뿌리를 건들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노동자 말고는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와 비리를 그 밑바탕에서부터 철저하게 뿌리뽑고 새로운 삶의 질서를 일궈낼만한 세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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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08:18 2005/02/14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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