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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항해] 96년 11월

 

노동법개정투쟁, 어떻게 할 것인가?


노사관계개혁위원회(노개위), 어디까지 왔나?

  지난 4월 24일 김영삼 대통령은 '신노사관계 구상'이란 걸 발표했다. "우리 민족의 21세기를 여는 구국운동"이라는 각오로 낡은 노동법을 손질해서 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노사관계를 개혁하겠노라고 안팎에 밝힌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세계 선진국들만 들어간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란 데도 끼어야 하고, 민주노총이 뜬 마당에 옛날 하던대로 무작정 노동자들 밀어붙이기도 어려운 판이라 어차피 고칠 거 대통령이 아예 팔 걷어붙이고 나서는구나, 이번엔 다른나라 사람들한테 손가락질만 받아오던 우리나라 노동법도 선진국 수준으로다 '정상화'될 수도 있겠구나 기대도 많았다.

  5월 9일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 노개위가 만들어지고, 다섯 차례의 회의를 거쳐 7월 11일 노개위원 만장일치로 '법·제도 개선의 기본방향', '부문별 추진방향'에 합의할 때까지만 해도, 이래저래 말들은 많았지만, 적어도 복수노조 금지나 제3자 개입 금지, 노동조합의 정치활동 금지라는 이른바 '3금(三禁)'을 철폐하는 방향으로 노동법이 개정되고 있으려니 다들 믿었다.

  그런데 8월 13일 노개위 안에 '노동관계법 개정요강소위원회'(요강소위)라는 게 만들어지고, 9월 3일 공익위원들이 토론자료라고 요강소위에 자기네 안을 내놓으면서부터 문제는 엉뚱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공익위원이라는 사람들이 내놓은 안을 보자면,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 변형근로시간제라는 이른바 '3제(三制)'를 들여오고 여성노동자들의 생리휴가를 무급으로 처리하자는 것에서부터 노동조합 전임자의 임금을 조합비에서 내라거나 노조 대표자의 협약체결권을 명문화해서 직권조인을 합법화해야 한다는 것에 이르기까지 온통 '개악(改惡)' 투성이었다. 민주노총이 발끈할 수밖에 없었다. 해서 10월 1일 민주노총은 노개위에 더 이상 나가지 않겠노라 선언하고 개악저지투쟁에 총력을 모아가기로 결의했다.

  10월 7일 민주노총쪽 위원을 뺀 나머지 8명의 요강소위원들(노총 1명, 경총 2명, 공익 5명)은 11개 항을 합의했는데 이게 또 무시무시하다. 노조 대표자의 교섭권과 체결권을 일원화한 것은 조합원총회 인준투표를 불법으로 내몰고 직권조인을 합법화하는 조항인데 민주노총이 없는 틈을 타서 한국노총쪽에서 합의를 해준 것이다. 직권중재 대상 공익사업 가운데 통신부분이 추가된 것도 한국통신을 겨냥한 민주노조 죽이기의 시커먼 속내를 드러낸다. 이른바 '신축적 근로시간제'라는 항목에서도 자유출퇴근제라는 게 합의됐는데 이게 말하자면 변형근로시간제하고 같은 거라 변형근로시간제를 들여올 물꼬가 터진 셈이다.

  10월 10일 민주노총은 대의원대회를 열어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결의했다. 그리고 노개위에서 진전된 안이 나오면 임원 또는 연맹 대표들과 협의하여 권영길 위원장이 노개위 참여 등에 대한 방침을 결정하기로 했다.

  10월 12일 노개위 공익 대표들이 몇가지 개선된 안이라고 민주노총에 들고왔다.

  10월 13일 민주노총은 임원 및 산별 대표자회의를 갖고 이 안을 검토했다. 크게 세가지가 결정됐다. 첫째, 단결권을 인정하지 않고 근로기준법을 개악하려는 조항들을 없애라, 파견근로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둘째, 이 원칙이 받아들여지면 변형근로제는 노동시간의 단축을 전제로 노동시간의 조정이란 조항으로 검토할 수 있으며, 정리해고는 경영상 해고의 제한이란 조항으로 89년 판례를 기준으로 해고요건이 제한된다면 검토할 수 있다. 셋째, 민주노총이 빠진 채 10월 7일 요강소위에서 합의됐던 내용 가운데 교섭체결권 문제와 통신사업의 직권중재 허용 조항은 철회돼야 한다.

  10월 14일 이 결정을 가지고 민주노총쪽 요강소위원 양경규 전문노련 위원장이 요강소위에 '출석'했다. 그러나 요강소위는 '진전된 안'을 내놓지 않았다. 민주노총은 노개위 전체회의에 참가할 수 없다는 기본 입장만 다시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10월 16일 노개위쪽에서 다시 '비공식 최종안'이란 걸 들고 나왔다. 통신사업을 직권중재 대상으로 하는 거나 노조 대표자의 교섭권과 체결권을 일원화하는 조항은 그대로이고, 변형근로시간제도 격주 단위로 주 48시간 동안, 그리고 하루 10시간 동안 회사가 정하는 시간에 낮밤도 없고 수당도 없이 일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여전히 '진전된 안'이라기 보다는 개악안 그대로였다.

  10월 18일 민주노총은 중앙위원회를 열어 교사의 노동기본권 보장, 자주적 단결권의 조건없는 인정, 개별 노사관계법 개악조항 삭제, 노동시간의 단축없는 변형근로제 반대, 정리해고 요건 강화, 민주노총이 빠진 가운데 노-경총이 합의한 조항에서 교섭·체결권 문제, 통신사업의 직권중재 허용 문제 철회 등 노동법개정투쟁의 원칙과 목표를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그리고 노동법 개정안 협상에 대한 사항을 위원장에게 위임하고 10월 24일 민주노총 임시중앙위원회에서 노개위에 대한 태도를 포함한 향후 투쟁방침을 최종 결정하기로 하였다.

  10월 18일 열리기로 했던 노개위 전체회의는 10월 25일로 미뤄졌다. 노개위는 10월 25일 전체회의에서 합의된 조항들과 합의되지 않은 조항들을 어떻게든 '처리'하여 대통령에게 보고할 것이다. 가장 가능성이 많은 것은 합의된 조항들만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합의되지 않은 조항들은 2차 개혁과제로 넘기는 것이다. 또는 합의되지 않은 조항들을 복수안으로 올리거나 공익안으로 단일화하여 밀어붙일 수도 있다. 어쨌든 대통령에게 노개위 안이 보고되면 공은 정부로 넘어간다. 정부는 노개위안을 '참고'하여 따로 정부안을 만들 거고 이걸 이번 정기국회나 다음 임시국회 노동환경위원회에 상정할 것이다. 상임위에서 정부안이 처리되면 본회의에 상정될 것이고 이게 통과되면 우리들 일터와 일상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노동법이 고쳐지는 것이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정부

  노개위가 어찌 가든 칼자루는 정부가 쥐고 있다.

  10월 16일 진념 노동부장관은 "노동법 개정은 노사합의도 중요하지만 개혁 차원에서 추진되는 것"이라며 "법안 제출 때 복수노조 허용 및 변형근로제와 같은 핵심 내용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 장관은 또 "노개위 안이 건의되면 그 내용을 전적으로 따를 것인지, 여기에 정부 의사를 어느 정도 포함시킬지 여부를 따져 최종적인 개정안을 확정할 것"이라고 말하여, 노개위에서의 노사합의와 관계없이 복수노조 허용과 변형근로제 도입을 이번 노동관계법 개정안에 포함시켜 이번 정기국회에 제출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밝혔다.

  노동법 개정(악?)도 개정(악?)이지만 정부는 지금 여기저기서 칼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OECD 가입이 확정되고나서 정부는 선진국(?)답게 '경쟁력 10% 높이기운동'이란 걸 벌이기 시작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비롯하여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전국은행연합회 등에서 앞다퉈 97년 임금동결 방침을 내놓으면서 정부에 화답했다. 재벌그룹들도 이에 질새라 경영혁신 방안이란 걸 내놓으면서 발을 맞췄다. 현대그룹은 관리직 등 간접부문 사원들을 영업·생산·신규사업 분야로 전진배치시킬 수 있는 '그룹인력풀제'라는 걸 들여올 계획이다. 현대는 이와 함께 고과를 부활한 능력급제까지 넓혀 들여오겠다고 밝혔다. 삼성도 삼성대로 '직무전환스쿨'이란 걸 만들어 인력 재배치를 효율화한다는 방침이다. 포항제철은 운전원을 외주 용역화해 풀제로 운영하고 임금구조도 바꾸기로 했다. 한결같이 임금을 묶고 능력급제를 들여오겠다, 인력 재배치나 하청화 따위로 인원을 줄이겠다는 내용들이다. 우리에게 돌아오는 건 임금 동결과 고용 불안뿐이다.

  정부는 한술 더 떠 10월 19일 한국통신 노조 유덕상 위원장을 조계사 농성장에서 붙잡아 긴급 구속시켰다.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공공부문노조대표자회의(공노대) 간부 결의대회에서도 대회 마지막 상징 의식이었던 노동악법 화형식을 치르지 못하게 정부는 '전투'경찰들을 풀어 위협했다. 안산에 있는 한국후꼬꾸 노동조합 간부 두명도 10월 19일 전격 구속됐다. 울산에서도 노동자 중심의 진보정당추진위원회(노진추) 사건으로 현대중공업 원대용 대의원과 안기호 효성금속 위원장, 현대자동차 송홍복 동지가 구속되었다.

  여전히 우리는 칼날을 쥔 채 칼자루를 쥐고 여유를 부리는 정부와 이번 노개투에서 한판 씨름을 벌여야 될 처지다.

노개투, 어떻게 할 것인가?

  10월 7일 민주노총 울산시협의회(시협)는 대표자회의를 열어 울산지역 노동법개정투쟁본부(투본) 구성에 합의하고 본부장에 곽대천 현대미포조선 위원장을 선출했다. 투본은 10월 7일부터 10월 9일까지 시협 교육관에서 울산지역 노조 간부 농성투쟁을 벌이고 10월 14일 집행체계를 꾸려 투쟁을 본격화하고 있다.

  10월 9일 울해협과 현장조직대표자회의는 '노동법 개악안 설명회 및 울산지역 노동법개정투쟁의 방향'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갖고 '노동법개악저지 및 개정투쟁 울산지역 선봉대'(선봉대) 발대식을 가졌다. 선봉대는 10월 14일부터 11월 7일까지 울해협 사무실에서 밤샘농성에 들어감과 함께 민주당사, 신한국당사, 정몽준 의원 사무실 방문투쟁과 현장 정문 출퇴근투쟁을 힘차게 벌이고 있다.

  10월 19일 울산지역의 노동, 시민, 사회단체들은 '노동법개정과 사회개혁을 위한 울산지역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를 띄우고 기자회견과 주리원 백화점 앞 시민선전전을 벌였다. 공대위는 10월 25일 시국토론회를 열고 투본과 선봉대 사업에 적극 결합할 예정이다.

  투본, 선봉대, 공대위라는 '삼두마차'가 울산지역 노개투 총력투쟁으로 달려가고 있다. 이 마차는 11월 2일 태화강 고수부지에서 열리는 '노동법개정투쟁 울산지역 노동자·시민 결의대회'를 거쳐 11월 10일 여의도에서 있을 전국노동자대회를 향해 질주할 것이다. 이 마차의 최종 목적지는 노동법개악저지와 금속노동자총단결이다. 이번 노개투가 이 목적을 이뤄내는 힘찬 질주가 될지 빈 수레만 요란할지는 오로지 조합원 한사람 한사람의 '참여와 투쟁'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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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14 08:14 2005/02/14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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