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원에게 드리는 글 -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연정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유시민의언의 글 그대로라면, 어떤 분들이 말씀하시던 이번 연정론이 한나라당이 못 먹을 독사과임을 알면서도 약올리듯이 던져 놓고, 먹든 먹지 않든 상대방을 궁지에 몰아넣어서 치명적 일격을 가하고자 하는 "치졸한 정치적 술수"는 아니란 얘기군요. 그 점에서만큼은 안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연정론은 말 그대로 "잘못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탄핵 때를 생각해 보지요. 당시 촛불을 들고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을 막기 위해 싸운 모든 사람들이 흔히 말하여지는 "노빠"일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그리고 유시민의원님 역시 그 정도의 사실은 알고 계시겠지요.)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여러 시민/단체들 중에는 그 당시에도 노무현대통령의 정책이나 노선에 대해 공공연하게 반기를 들던 세력도 많습니다. 그러한 시민/단체들까지도 모두 탄핵이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인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노무현대통령이 맘에 들지 않을 수도 있고, 그의 노선에 대해 그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헌법이 정해놓은 적법한 절차라는 빚좋은 개살구로 무장한 "제도적 민주주의"는 이제 절대로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지요. 이제 국민들은 지금 유시민의원님이 그토록 극복하고 싶어하는 '87체제'따위에 얽매여 있지 않은, 이미 스스로의 힘으로 87체제를 극복한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유시민의원 스스로 인정하시듯이 "앙시앙 레짐"의 일원이시기에 이러한 흐름이 눈에 안 들어오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정치권 내부에서 '87체제'의 한계와 이에 대한 극복을 얘기하기 이미 오래전부터 국민들의 의식은 이미 그 수준은 훌쩍 뛰어넘어버렸습니다. 이제 국민들은 더이상 그저 호남에서 나온 민주당 후보라고, 영남에서 나온 한나라당 후보라고 눈 딱 감고 찍어주지 않습니다. 지난 총선에서 호남은 이미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래서 열린우리당이 제 1당이 된 것입니다.) 영남권 역시 사람에 따라 투표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재/보선의 참패를 얘기하신다면, 이는 지역주의투표행태의 재창궐이 아니라 열린우리당의 실정에 대한 심판입니다. 그동안 나름의 대안으로 여겨왔던 열린우리당의 정치행태가 과거의 행태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크게 개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함에 실망한 국민들이 '계속된 실정은 당신들이 그처럼 치를 떨며 싫어하는 망국적 지역주의의 부활을 불러올 수도 있다'라는 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방법은, 그러므로 간단합니다. 이미 오래전에 87체제를 극복한 국민들이 요구하는 대로 개혁정책들을 흔들림없이 추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역주의, 나아가서는 정치권 내부에 아직도 망령처럼 드리우고 있는 87체제의 극복을 위한 가장 정확하고 안전한 "정도적 해법"입니다.

지금의 연정론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과거 대다수의 국민들이 노무현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했던 가장 큰 사유였던 '제도적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회의원들이 어떻게 생각하건간에 국민들이 5년간의 임기를 보장해준 대통령을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끌어내리는 것은 (그것이 적법한 일인지 어떤지는 나중문제입니다. 과연 다수국민들이 그러한 일을 할 필요성을 느꼈냐입니다.)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가 온몸으로 막아주었던 국민들이, 자신들이 준 5년간의 임기를 맘대로 단축하면서까지 지역주의 (지역주의의 폐해가 얼마냐 큰가 크지 않은가의 문제가 아니라 이 역시 국민들이 과연 그러한 일을 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얼마나 공감하고 있느냐입니다.)를 타파하겠다고 하는 행위를 옳게 보고, 지지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물론 지지해줄 수도 있습니다. 정당한 시대적 소명을 띄고 있는, 국가의 미래를 위해 지금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라는 것에 공감만 한다면, 지지해줄 수 있습니다. 느끼지 못했었는데 찬찬히 얘기를 듣고 보니 이거 정말로 필요한 일이겠구나 생각한다면 얼마든지 지지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필요한 것은 한나라당 박근혜총재와 독대하면서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큰 결심 한번 하시라고 설득할 때가 아니라 국민들 상대로 지금 하고자 하는 일이 어떠한 일이고 어떠한 의미가 있으며 그 결과 어떠한 점이 어떻게 바뀔 것이다 라고 하는 청사진을 제시하고 동의를 구하는 일입니다. 오늘 박근혜총재와의 회담에서 만일 대연정에 합의했다고, 이제 망국적 지역주의는 끝장났다고 선언한다고 해서 갑자기 지역주의가 끝장납니까? 지역주의의 주체는 정치인이 아닙니다. 가장 큰 피해자이면서 또한 그 주체는 바로 국민들이고 보다 정확하게는 국민들 마음 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과거 폭압정권에 의한 트라우마입니다. 환자는 치료하지도 않고 의사들끼리 모여서 토론하다가 '우리끼리 토론해본 결과, 당신은 완치되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지금의 상황을 어찌 이해하라는 것입니까?

"대중"은 결코 "우매"하지 않습니다. "특정 언론"이나 "지적 오만에 빠진 일부 지식인들"의 몇마디 말에 놀아나서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단정하시는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과거 대중을 우매하고 계몽의 대상이라고 생각한 지도자들은 거의 모두가 결국에는 국민 위에서 군림하는 독재자로 변질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내가 노무현대통령을 지지했던 이유는 그가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정도만을 묵묵히 걸어왔고, 그 과정의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왔기 때문입니다. 지역주의가 정말 그토록 타도되어야 하는 '망국의 병'이라면, 그래서 그를 극복하시고자 한다면, '정도'를 걸어주십시오. 대연정은 정도가 아닙니다. 글의 앞부분에 제시되어 있듯이, 당신을 지지했던 국민들이 당신에게 요구한 개혁정책의 완성들이, 망국적 지역주의 뿐만 아니라 이 사회 곳곳에 암세포처럼 퍼져 있는 모든 부정한 요소들을 뿌리뽑을 수 있는 '정도'이며, '만병통치약'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9/08 09:39 2005/09/08 09:39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psychoic/trackback/4
Return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