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실망... 그리고 위기감...

노무현정부 출범 당시, 대단히 많은 것을 기대했었습니다. 뭐 무엇 하나 이루어진 것이 있냐 라며 비난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적어도 이 사회의 어떠한 "시스템적인 개혁"의 부분은 상당부분 성과가 있었고, 사실 그것만으로도 이 정부에 걸었던 '최소한의 기대치'는 만족시켰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연정론과, 그 연정론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노무현대통령 및 유시민의원의 얘기를 가만히 살펴보면 자신들의 손으로 이뤄낸 '거의 유일하다 할 수 있는' 개혁적 성과를 완전히 무시하는 발언들이 섞여있어서 안타까울 뿐입니다.

지적우월감에 빠진 자들의 놀음에 놀아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닙니다. 몇몇언론의 악다구니에 놀아날 만한 시스템이 아닙니다. 온 국민이 힘을 모아서 '대통령 조롱하기'나 하고 있을만큼 한가한 시스템도 아닙니다.

한쪽방향으로만 경도된 언로를 풀어놓아서 지금 나같은 사람이 감히 한나라의 위대하신 국회의원님께 이러한 형태의 반박글을 달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한 시스템이고, 아무렇게나 입으로 대변을 보는 대변인의 허술한 논리 정도는 한번에 꿰뚫어볼 수 있을 정도로 적확한 시스템이고, 아무리 민생을 보살펴야 한다느니, 세금폭탄이 떨어진다느니 하는 통계수치를 조작한 엉터리 언론들의 엉터리 기사들에 별 생각없이 따라하지 않는 똑똑한 시스템이고, 그것을 만들어내는데 일정 이상의 공로를 한 것이 지금의 이 정부고, 지금의 그 대통령이고, 지금의 그 국회의원입니다.

왜 당신들이 만들어낸 시스템의 기능들을 일거에 마비시키려는 듯한 그러한 발언들을 아무 생각 없이 툭툭 내뱉는 것입니까? 현행헌법에서 연정이 아무리 가능하다고 한 들, (그 연정이 지역구도를 타파하는 데에 도움이 될까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회의적이긴 하지만 그 부분은 일단 뒤에 얘기하기로 하겠습니다.) 국민들이 아무렇지도 않고, 정치적 파워도 미약한 노무현이라는 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켜 주고 5년간 잘 관리하라고 맡겨놓은 국가운영의 키를, 원래 주인인 국민들의 동의 없이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맡겨버리겠다는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입니까?

정말로 꼭 키를 다은 이에게 맡겨야겠다면, 먼저 주인의 동의를 얻으세요. 그 키를 그 사람에 게 맡김으로써 과연 주인이 어떠한 이익을 취할 수 있는지를 먼저 국민들에게 소상히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세요. 만일 아무리 소상히 설명해줘도 주인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그 일이 엄청난 이익을 창출하는 일이라고 할 지라도 당신 맘대로 결정하여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입니다. 일반 대중이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높은 확률로, 어떠한 한 개인이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선지자의 위치에 오르려고 하지 마세요. 당신이 선지자이고 내가 우매한 대중일지도 모르겠지만, 진정한 선지자는 결코 대중을 우매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답니다.

지금 권력을 통채로 걸고서라도 무엇인가를 반드시 이루어내겠다는 당신의 결연한 의지는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실패할 경우의 후폭풍은 생각해 보셨나요? 이번 노무현 정부의 실패는 곧바로 진보/개혁세력의 실패로 연결되게 될 것이고, 이는 곧 이나라 정치구도가 최소한 30년은 후퇴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지금 주변에서 쏟아지고 있는 수많은 반대의 목소리 중에서는 그러한 후폭풍의 조짐이 너무나 뚜렷히 보인다고 생각하고 그러한 최악의 사태만은 막아보자고 하는 '피를 토하는 심정'의 외침이 섞여 있습니다. 온 국민이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30년 동안 겨우 이만큼 이뤄낸 시스템의 발전을 단 한번에 되돌려버릴 수도 있는 이러한 위험한 도박을 꼭 해야만 하겠습니까?

도박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는 말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방향성을 완벽히 잃어버린 체 국회 주변을 유령같이 떠도는 개혁관련법안들만 미리 처리했어도 지금같은 냉소적인 반응은 없었을 것입니다. 과거의 일을 후회하지만 지금와서 시간을 돌릴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항변하지 마십시오. 때마침 당신의 손에는 X파일이라고 하는 이사회 구석구석에서 여전히 암약하고 있는 불순분자들에게 치명타를 먹이기 충분한 강력한 무기가 들려 있습니다. 왜 그것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그렇게까지 빼는 것입니까? 그것과 이것은 별개의 사안이라고 변명하지 마십시오. 지역주의의 극복은 단순히 호남인이 영남에서 당선되고 영남인이 호남에서 당선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경제적 불평등에서도 기인하고 왜곡된 일부 언론들에게서도 기인하고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고착화시키고자 하는 수구세력에게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어떤 정치인이 어떤 지역에서 당선되느냐의 문제는 단지 지역주의의 현상일 뿐입니다. 원인은 그대로 둔 체 현상만 치유하는 미봉책을 그토록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남은 2년의 임기 동안 당신을 지지해 주었던 사람들의 궁극적인 소망이 무엇이었는지 다시한번 찬찬히 생각해 주시고 그대로 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당신의 임기 내에 그러한 과제들이 모두 해결되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당신께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것이고 그럼으로써 진입단계에 들어가기 시작한 개혁의 바람이 당신의 후대에까지 이어질 수 있게 되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지금 당신께서 벌이고 있는 이 엄청난 도박이 실패한다면, 당신께서 어여삐 여겨하는 이 '우매한 대중'들은 다시 그 악몽같은 30년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 당신을 한때 지지했었고, 앞으로도 당신을 지지하고 싶어하는 어떤이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9/08 09:41 2005/09/08 09:41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psychoic/trackback/5
Return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