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5/08/26 11:56
Filed Under 손가락 수다방

 

어느덧 아침·저녁으로 서늘해진 바람이 가을이 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다가 올 추석 명절 걱정에 주부의 역할을 겸하고 있는 여성들은 한숨이 나오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100년만의 더위 어쩌고 했던 무더위는 갔다. 이번 여름 많은 동지들은 에어컨 시원하게 나오는 근로복지공단 바로 앞, 그 뜨거운 여름 햇빛이 온전히 머리위로 떨어져 화상을 입을 것 같았던 그곳에서 80일을 버텨왔고, 단식을 하고 있다. 노조탄압으로 얻은 하이텍, 13명의 동지들의 정신질환을 인정해 주지 않는 근로복지공단을 분노의 눈으로 쳐다보다 건물 안의 공기가 한 줄도 새어 나올 수 없을 만큼 꽁꽁 닫혀있는 근로복지공단의 사무실이 눈에 들어왔다. 저렇게 꽁꽁 닫혀있는 건물 안에서 빌딩증후군에 시달리고 있을 노동자들이 생각나 이번호에는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로 결심했다.


빌딩 증후군은 최근 ‘새집 증후군’이라는 이름으로 각광(?)받고 있는 질환이다. 물론 ‘새집 증후군’이란 것이 새집의 각종 유해물질에 의한 다양한 증상에 국한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실내 공기오염이란 기본적인 개념과 원인은 같은 것이다. 1980년대 북미와 유럽의 공용빌딩에서 눈의 통증, 눈, 코, 목의 가려움, 피부의 가려움, 두통, 현기증, 졸음 등을 호소하는 증상이 주목되면서 빌딩 증후군은 역사에 등장한다. 이후 1983년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빌딩 증후군(sick building syndrome)으로서 인정을 하기 시작했다. 세계보건기구의 보고에 의하면 모든 빌딩의 40%정도가 실내공기의 오염에 따른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개인적 스트레스나 특이 체질쯤으로 치부되어 버리던 모호한 신체적, 정신적 증상들은 1984년 영국의 Finnegan 등에 의해 처음으로 ‘빌딩 증후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그가 기술한 병의 전형적인 증상은 반복되는 눈, 코 및 인후점막의 자극증상(눈이 따갑다거나 코가 시큰거리는 느낌), 전신 피로감, 무력감, 불쾌감, 두통, 현기증, 피부발적 등으로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며 이러한 증상들은 별다른 특징이 없고 빌딩에 있다가 실외로 나오면 저절로 없어지기도 한다.


물론 ‘빌딩’이라는 환경에 의해서 나타날 수 있는 질환은 위의 모호한(?) 증상들과는 다른 치명적인 질환들도 있다. 레지오넬라균에 감염된 에어컨으로 인한 집단 폐렴, 각종 물질들에 의한 과민성 폐장염, 기관지 천식, 알레르기성 비염과 같은 알레르기성 질환 그리고 실내 산소 부족등으로 인한 이산화탄소 중독까지 다양하다. 또한 건축물에 쓰인 다양한 자재들 역시 우리의 건강을 위협한다. 발암물질로 알려진 석면, 라돈, 포름알데하이드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사무실 환경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컴퓨터에 의한 VDT 증후군까지 우리가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보내는 ‘건물’과 연관된 질환들은 참으로 많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깨끗하게 청소도 안한 공기 청정기가 온갖 세균과 곰팡이를 내뿜고 있는 실정이니 사무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건강이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웃 일본의 경우 ‘빌딩증후군’으로 인한 산재 신청과 승인사례가 있을 정도로 이는 중요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1999년 10월부터 지구환경전략연구기관에서 연구비서로 근무하던 한 여성이 연구소가 신설, 이전한 2002년 6월부터 구역질, 두통, 불면을 앓기 시작했고 10월 새집증후군으로 진단을 받은 것이다. 2003년부터 휴업을 하던 이 여성은 2004년 3월 계약만료를 이유로 계약이 해제되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같은 연구기관에 근무하던 동료들 중 약 20여명은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기도 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새집증후군을 이유로 10건의 산재신청이 있었고 이중 5건이 승인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환경부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 올 4월 ‘다중이용시설 등의 실내 공기질관리법’을 제정했다. 법안의 핵심은 터미널, 병원, pc방등 다중이용시설과 아파트 등 공동주택을 지을 때 인체에 유해한 물질을 방출하는 건축자재의 사용을 엄격히 제한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다중이용시설 등의 실내 공기 질 관리법’이 지난 5월부터 시행되고 있으며 대상 사업장은 정기적으로 실내 공기의 질에 대한 평가를 해야만 한다. 또한 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서 일하던 일용직 여성이 유해물질로 인해 실신하는 사건이 있기도 했다. 게다가 언론에서는 새 아파트에서 일본 후생성 기준의 4-26배에 달하는 포름알데히드가 검출되었다고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문제가 공기청정기를 달고, 측정을 하고, 새 건물에 입주하기전 환기를 하고, 난방을 하고, 유해물질을 사용하지 않은 최첨단(?) 건축자재를 쓴다고 해결될까? 필자의 대답은 ‘아니올시다’이다.


페인트 및 합성수지, 인쇄물, 프린터 및 복사기 배출물질 같은 휘발성 유기화합물, 파손된 단열재, 종이먼지, 유리섬유 등에서 나오는 먼지나 섬유, 담배연기와 살충제 같은 일반오염물질, 세균, 진균류, 먼지진드기 같은 생물학적 부유물, 자동차 배기가스, 산업배기 가스등과 같은 외부오염물질, 온도, 습도, 조명, 소음과 같은 물리적인 요인 그리고 노동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스트레스까지... 빌딩증후군의 원인은 정말 다양하기도 하다. 이러다보니 문을 닫아놓고 살게 되는 여름과 겨울, 특히 난방으로 건조함까지 겸하게 되는 겨울에 빌딩증후군은 더욱 심해진다.


산업의학에서 유해물질에 노출될 경우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은 그 물질에서 대한 노출을 당장 중단시키는 것이다. 노출원이 우리의 일상을 대부분 살아가야 되는 ‘사무실’일 경우 문제는 복잡해진다. 다들 귀농을 할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은가? 따라서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을 고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즉, 온갖 오염물질들이 넘쳐나는 사무실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들을 하자는 것이다. 작업 중간 중간에 휴식을 취하기 창문을 열고 전체 환기 시간을 가지면서 VDT 예방을 위한 휴식시간 갖기 컴퓨터등을 잠시 끄고 심호흡하기 등등 굳이 비싼 건축자재나 공기청정기가 없어도 우리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길은 많다.


직무 스트레스와 온갖 유해물질이 넘쳐나는 사무실을 탈출하고 나의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 인간답게 일하고 인간답게 살고 싶은 것이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 아닐까? 수다도 떨고, 밖의 공기도 마시고, 스트레칭도 하고 음료수 한잔 하는 여유를 가지는 것은 노동자들의 건강과 삶의 질을 지키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시원한 사무실에 앉아서 일만 열심히 하다가도 잠깐씩 노숙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하이텍의 여성 동지들을 생각하고 이야기 하는 일, 사무실이 영등포 근처라면 슬쩍 근로복지공단 농성장에 들리는 일, 그리고 조금 더 여유있고 건강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일상에서의 작은 실천, 이제부터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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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26 11:56 2005/08/26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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