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5/09/04 22:24
Filed Under 내 멋대로 살기

아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지만 의료생협과 관련해서 일본에 다녀왔다. 하이텍 투쟁이 정신없는 올 여름 나는 우짜다가 생전 해 본적도 없는 외유가 몰려 있는지...

 

일본에서 약 10일을 보내면서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루는 연구소 동지들이 꿈 속에 나타나고, 또 하루는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하이텍 동지들과 아사 단식을 진행중인 동지들의 얼굴이 나타나고, 하루는 참세상 사람들이 나타나고, 하루는 빈곤팀 관련 성원들이 나타나고, 하루는 정치조직의 선배들이 번갈아가며 잘도 나의 꿈을 방문해 주었다.

 

출국하는 날 서울교에 메달려 있던 후배들도 눈 앞에 아른 거렸다.

 

어떤이는 꿈속에서 호통을 치기도 하고 어떤이는 꿈 속에서 같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어떤이는 호러 분위기로 내 잠을 깨우기도 했다. 꿈이었지만... 꿈이었지만... 마음이 아팠다.

 

한국에 도착한 다음날 병원에서의 출장검진을 마치고 농성장으로 직행했다. 문화제가 예정되어있는 농성장은 하이텍의 유명한 파전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열흘만에 만난 동지들의 모습에 식욕이 싹 가셔버렸다. 거의 10kg씩은 빠져 헬쓱해진 모습에 마음이 참 많이도 아팠다. 다이어트를 해 본 사람은 다들 알거다 10kg을 빼기가 얼마나 힘든지... 눈물이 핑 도는데 꾹 참느라고 뜨겁고 뻐근한 것을 가슴에 담았다.

 

기초 대사량을 만들기 위해 그들의 근육과 지방은 마구마구 분해되고 있었고 에너지원으로 쓰일 당분을 공급받지 못한 뇌는 최소한의 활동만을 허하고 있었다. 말도 느려지고, 동작도 느려지고 모든게 느려졌다.

 

단식 5일차, 내가 동조 단식을 하던 날에도 끊임없이 뭔가 이야기를 하던 소장님의 수다도 많이 줄었고, 지회장동지는 높지도 않은 체온에 열이 나는 것 같다며 얼음을 끼고 누워있고, 가뜩이나 말랐던 산재노협 대표 형은 더 말랐고, 힘들어 하던 이대 친구는 혈당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며 수다도 떨어보지만 마음 한켠이 정말 뻐근하게 아픈건 어쩔 수가 없었다. 파전도 못 먹겠고, 술도 못 먹겠고... 입맛이 가시는 느낌이었다.

 

어제, 오늘 수련회 비슷한게 있어 내려간 지방에서 고생하고 있는 집짱을 봤다. 어찌나 반가운지 눈물이 날 뻔했다. 그 자리가 그리 편하지가 않았다. 즐거워하는 듯한 형의 모습이 왜 이리 안 쓰러워 보이는지... 또 눈물이 날 뻔했다.

 

새벽까지 뒷풀이에서 술을 홀짝이다가 가려던 산업의학세미나를 제끼고 선배와 북한산 계곡에 가서 아침부터 술을 마셨다. 이런 저런 운동 얘기, 활동 얘기, 개인 얘기 등등을 해가며 남들이 산에 올라갔다 내려올 시간만큼 술을 마셨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이런 저런 고민들과 생활을 이야기하며 술을 마시니 맘이 한결 편해지는 것 같았다. 오후까지 술을 마시고 두어시간도 못자 저절로 내려 앉는 눈꺼풀을 겨우겨우 지탱하며 집으로 왔다.

 

집으로 오는 길... 농성장에 가 있다는 집짱형의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원의 자살 소식도 들었다. 도저히 바로 잠이 들수 없어 컴퓨터를 켰다.

 

밀린 숙제를 하듯 블록을 기웃거리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하이텍 투쟁의 모습에, 연구소 동지들의 마음에... 울고 말았다.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연구소 동지들의 흔적에 눈 앞에서 아른 거리는 단식 농성자들의 모습에 건강이 걱정돼 죽을거 같은 마음에 많이 울었다. 이렇게 싸우는데 정말 이렇게 싸우는데 꿈쩍도 하지 않는 근로복지공단이 죽도록 미웠다.

 

이번 추석... 지리산을 가고 싶다. 하지만 그 전에 투쟁이 승리하지 못하면 아마도 농성장을 지켜야 할 거 같다. 제발 그 전에 투쟁이 승리해서 동지들의 말라가는 모습도 보지 않고, 지리산으로 맘 편하게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왠지... 웃는 연습을 해야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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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04 22:24 2005/09/04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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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타맨 2005/09/06 2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술취하고 싶은 나날들이네요.
    투쟁을 목청껏 외쳐부르지만 쉽지 않은 현실이네요. 또 잊혀질 열사의 이름이 아닐까? 얼굴을 들고 살수 없는 나날들인것 같습니다. 도처에서 자살 소식을 무덤덤히 접하네요. 그러나 정작 할수 있는 것은 별로 없네요.

  2. 해미 2005/09/07 1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타맨/ 그럴수록 더 열심히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좌절하고 실망하고 아쉬워하기 보다 문제를 찾고 아프더라도 드러내고 할 수있는 일들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요새 마음 속으로 몇 번씩 되새기는 생각임다. 홧팅 해야지요. ^^

  3. 간장 오타맨... 2005/09/07 18: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네.. 갈대는 흔들리지만 결코 꺽이지 않는 잖아요. 현실이 조건은 어렵지만 그래도 투쟁하는 동지들이 있기에 희망은 있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갑니다. 늘 화이팅이 넘쳐서 문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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