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5/09/14 08:34
Filed Under 내 멋대로 살기

뭘, 어떻게 해야 할까? 몇일째 계속 머리속을 맴도는 질문이다.

 

#1.

 

의사탄원서를 조직하면서, 정말 오래간만에 학생때 경인의학협 활동을 하면서 알고 지내던 동기, 선배, 후배에게 전화를 돌렸다. 원래는 이들이 속해 있는 단체에 조직을 부탁을 할 생각이었으나 그런 조직을 할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에, 그리고 간만에 성명서 쓰려니 것두 힘들고 부담스럽다는 사무국장을 하는 형의 이야기에, 전화를 통해 들리는 병동의 바쁜 소음에... 그냥 내가 아는 지인들을 중심으로 개별조직에 들어간 것이었다.

 

그 친구들은 대부분 학생회를 하면서 만났고 이상관투쟁을 같이 겪었고, 같이 졸업을 했다. 인턴 생활을 하면서도 종종 만나기도 했었고, 그런 모임을 키워 단체를 하나 만들기도 했다.

 

모두들 흔쾌히 이름을 올리는 것에 동의했다. 여전히 세상을 올곧게 살려고 노력하는 친구들임에는 틀림없었다. 하지만... 한켠에 아쉬움이 남는다. 하이텍이 100일이 다 돼가도록 농성을 하고 있고 무기한 단식을 한지 1달이 다 돼가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많은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두 이상관 투쟁이후 근로복지공단에서 다시 장기 농성과 결사투쟁을 하고 있는 하이텍 투쟁인데... 우리 후배들이 서울교에 메달리기도 하면서 방송도 좀 탔을 텐데...

 

한 때는 의대 운동판에서 또는 학생운동판에서 정세를 전망하고 전술기획을 하고 판을 짜던 사람들이었다. 각자의 갈길을 따라 전공을 정한 후 많은 시간이 지났음을 갑자기 깨달았고 그들과의 관계가 낯설게 느껴졌다. 내 핸드폰에 무수히 많이 저장되어 있는 '의사'들의 번호가 이렇게 낯설었던 적이 없었다. 당황스러웠다.

 

같이 술을 먹어도, 같이 할 얘기가 없더라는 야총의 말도 떠올랐다.

 

무엇이 그들을 변하게 한 것일까? 임상이라는 전공의 선택이? 병원이라는 사회가? 글쎄... 모르겠다. 왠지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이미 낯설게 느껴지는 그 친구들과 무슨 이야기를 그리고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일상적인 접점을 만들고 소통을 시도하지 못한 우리의 책임일까?

 

요양원을 만든다고 돈을 기부하고 주요 일간지에 실리는 그들의 얼굴이 낯설다. 정말로 낯설다. 그리고 아쉽다.

 

 

#2.

 

하이텍 농성장에서 선배들과 수다를 떨었다. 지금이야 물론 같은 조직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나는 이상관 투쟁 당시의 어려뵈는 학생으로 또는 그렇게 조차 기억되어 있지 못한 인물이다. 그 형들은 나에게는 끝까지 원칙을 지키며 투쟁을 사수한 선배로, 집회 사회를 엄청시리 잘 보던 선배로 그리고 전설적으로 이름이 전해져 내려오는 선배로 기억되어 있다.

 

그 선배들하고 옛날 얘기를 했다. 내가 학생이라 잘 모르던 시절 '노동보건운동판과 보건의료운동판에 대한 회고' 정도의 이야기였다. 핵심은 "그 잘나가던 친구들이 어디있는고?"였다. "교수가 되더니만 하이텍 농성장에 얼굴 한번 안 비춘다", "교수가 되더니만 변했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다시 활동을 시작할 무렵 전국적으로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었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기획의 일가를 이룬 것으로 평가 받는 형을 얼마전 학회에서 만났던 기억이 있다. "어떻게 지내냐?"는 형의 물음에 나는 하이텍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었다. 근데... 그 형이 연구소 회원이면서도 연구소에서 하고 있는 싸움인 '하이텍'을 모르는 것이었다. 정말 적잖이 당황했다.

 

한 형이 이야기한다. 100인 동조단식하던날 인간띠 잇기를 하다가 민주노총 앞에서 역전의 용사 중 한명을 만났다고 한다. 동조단식에는 얼굴 한 번 안 비추고 정책회의 같은걸 하러 갔다고 한다. 말 하는 형의 표정에 섭섭함 보다 강한 감정이 묻어 난다. "교수 되더니만 다 변했어"라는 말이 말미에 걸린다.

 

부산 화물연대 김동윤 동지가 기어코 사망하고 말았다는 전화를 받으면서, 그 소식을 차마 단식자들한테는 전하지 못하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 한 선배는 "노동자들은 해고를 각오하고 싸우는데, 교수들은 교수직 버릴 각오가 안 돼어 있어서 변하는 거야"라고 이야기했다.

 

여전히 죽고, 죽음을 각오하고, 해고 당하고, 해고를 각오하고 노동자들은 싸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는 무엇을 각오하고 싸우는 걸까? 정말 그 선배의 말대로 교수가 된 선배들이 교수직을 버리면서 까지 투쟁할 생각을 못 하기 때문에 그들이 변했다고 우리가 모여 앉아 통탄해야 하는 걸까? 나는 지금 뭘 버릴 각오를 하면서 싸우는 걸까?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 훌륭한 활동가라던 선배들도 변했다. 무엇이 그들을 변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 답을 찾지 못하면 나 역시 변하게 되는 걸까? 뭘,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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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14 08:34 2005/09/14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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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위기감

    Tracked from / 2005/09/14 11:35  삭제

    해미님의 [변하지 않기 위해서] 에 관련된 글. 옛 일기들을 보면, 내 위기감은 97년부터 시작된 것 같다. 의식을 삶에 순응시킨다는 말. 옛 편견을 허물어내고 새로운 편견을 받아들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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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ewtimes 2005/09/14 1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눈에 안보인다고, 조건이 달라졌다고, 그래서 쉽사리 그들이 변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되묻는 것은 어떨까?...그들이 변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변했다고 생각하는 내가 변한 것이 아닐까? 아님 내가 변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1000일 이상 투쟁을 벌이고, 그 투쟁의 후과(결과도 뭐같게 되어버렸지만)로 정신질환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동지가 있는 투쟁에 있어서도 그 투쟁을 함께했던 동지들은, 투쟁에 함께 하지 못했던 동지들이 변했다고 생각지를 않고 있는데...

  2. 해미 2005/09/14 17: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newtimes/ 형, 술 한잔 해요. 형이 물음표로 처리한 이야기들에 저도 공감해요. 회의 뒷풀이 말고 여유있게 시간 잡아 길게 이야기했음 좋겠네요.

  3. newtimes 2005/09/15 1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술이야 뭐...항상 대기(?) 중이니깐..ㅎㅎ..추석연휴 난 서울 있을 거 같다..

  4. 야총 2005/09/19 0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난 몇년간 나는 변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놓치고 싶지 않은 것, 놓치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한 것이 있었다.
    그렇게 애쓰면서 내가 알게 된 것은 "변하지(change) 않기" 위해서는 "변해야(develop) 한다"는 것이었다.
    힘겨운 시간을 함께 했던 동지, 친구, 연인, 가족이 있어서 변할수(develop) 있었다.
    나는 감히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변하지(develop) 않는 사람은 변할수(change) 밖에 없다.
    난 오늘도 변하지(change) 않기 위해 끊임없이 변하려고(develop) 애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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