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6/05/29 17:50
Filed Under 내 멋대로 살기

어제 낮, 하이닉스 농성장에 와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12층 사장실을 점거하고 있는 동지들 중에 몇 명이 아프다는 것이었다. 들어가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가서 상황을 보겠다고 했다.

 

하이닉스로 가는 길... 비가 온 후에 모처럼 개인 하늘은 몽실몽실 구름이 떠 있어 예쁘기 그지 없다. 지하철을 타고 있던 사람들도 그 환한 햇살에 고개를 돌려 너무나도 이쁘게 파란 하늘과 햇살이 부서지는 한강을 바라보며 탄성을 내 지른다.

 

지하철을 나와 농성장까지 걸어가는 길, 빌딩 숲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이뻐 지나가던 사람들이 카메라에 하늘을 담는다. 누구라도 카메라가 꺼내고 싶어질 만큼, 딱 그민큼 이쁘고 환한 날이었다.

 

하이닉스 서울사무소가 있는 곳은 대한민국에서도 비싸기 그지없는 땅덩어리인 테헤란로 근처이다. 선릉역과 삼성역 사이 빽빽하게 솟아있는 건물들 사이로 푸르름이 빛나는 일요일 오후, 하이닉스 동지들이 농성을 하고 있는 그 곳에는 새까만 딱정벌레 같은 용역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의사도 못 들어 간다고 한다. 회사에서 고용한 의사가 아니면 그 어느 누구도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사장실에 갇혀 있는 것과 다름없는 동지들은 김밥 한줄로 하루를 겨우 때우고 있다고 한다. 그 김밥도 그나마 민노당 국회의원들이 찾아온 김에 넣어준거라고 한다. 국회의원도 일부만 들어갔다고 한다. 물을 먹을 수도 없어 거기 있는 화장실 물을 그냥 받아 마신다고 한다.

 

이렇게 날이 좋은데 12층에 갇혀서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고 있는 거다. 안 아픈게 더 이상하다.

 

한 동지는 할머니가 위독하시다고 한다. 애지중지 그 동지를 키워주셨을 할머니가 위독하신데도 사장실에 갇혀 있는 그 동지는 나오지 못한다. 나올수가 없다. 나오면 그 안쪽 상황을 궁금해 하는 경찰이 그냥 보낼리가 없기 때문이다. 나와도 어짜피 할머니를 보러갈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12층에는 문을 사이에 두고 안 나오려는 노동자들과 못나오게 하려는 새까만 용역들이 대치중이다. 웃기다. 건물안에 도대체 용역이 얼마나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화장실이 어디냐고 물으니, 하이닉스 동지들이 여자는 들여보내줄거라고 해서 건물 후문으로 갔다. 건물 후문에 그리고 주변 곳곳에 짱 박혀 있는 수 많은 검은 옷의 위협적인 사내들... 후문으로 내가 다가가자 우르르 어디선가 몰려온다. 뭐 하는 사람이냐고 제법 공손(?)하게 묻는다. 아니, 군대식으로 묻는다. 지나가는 사람인데 화장실이나 갈려고 한다고 하며 목소리를 좀 높였더니 어디서 또 딱정벌레들이 우르르 몰려나온다. 개미집을 건드렸을 때 어디에 있었나 싶을 만큼 몰려나오는 개미들처럼 그렇게 우르르...

 

건물밖 차가운 대리석 위에 바람막이 하나 없이 자리하나 깔고 누워있는 동지들은 밥 먹기도 미안하다. 투쟁기금  떨어진지 오래라 맛난거 올려줄 수도 없어 미안하기만 하단다. 얼결에 사온 담배 한보루에 농성장에 누워만 있던 동지들 얼굴에 생기가 돈다.

 

청주... 송전탑 위에 올라가 있는 동지들은 천둥번개가 치던 주말에도 그 곳에 있었다고 한다. 일어나서 세발짝만 걸어가면 떨어지는 그 좁디 좁은 판대기 위에 번개라도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송전탑 주변에 사는 아이들이 뇌암이 많이 걸리네 어쩌네 방송에서 난리이건만 공장으로 돌아가고싶은 두명의 젊음이 판대기 하나 놓고 버티고 있다.

 

외환은행이 최대주주라는 하이닉스와 매그나칩은 두 개의 회사다. 매그나칩은 미국계 회사라고 한다. 그저, 공장으로 돌아가 일하고 싶다는 노동자들을 굶겨 죽이려고 작정한게 틀림없지 싶다. 그저 만나서 이야기한번 하자는 것인데 니네는 죽든 말든 몰라라 하는 그 비싼 땅덩어리의 빌딩숲이 유난히 차가워 보인다. 그렇게 순이익을 많이 냈건만, 그 순이익의 5%만 있음 이 동지들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건만 도대체 뭐가 그리 무서운건지 모르겠다. 상대도 안하겠다는 저들이 밉다.

 

지방선거에 월드컵까지 겹쳤으니 언론타는거는 글렀다. 거기다가 돈도 엄청 많은 회사니 언론 막는거야 순식간이지 싶다. 투쟁기금도 없어서 농성중이 동지들이 밥도 잘 챙겨먹지 못하고 화장실 찾아 그 빌딩숲속을 한참을 헤매야 한다. 도대체가 상식으로 이해가 안 된다. 이게 말이되냔 말이다.

 

오늘, 다시 그 곳으로 향한다. 오늘은 들여보내줄지 어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가서 부딪혀라도 봐야겠다. 아프다는 사람 진료는 봐야겠다고 우기기라도 해야겠다. 담배 몇 보루라도, 초코파이 한두상자라도 사들고 연대의 정을 나누고 싶다. 그 바람 휭휭 부는 빌딩 숲속 동지들의 마음을 나누고 싶다.

 

하늘이 너무 아프게 푸른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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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29 17:50 2006/05/29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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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 이틀째

    Tracked from / 2006/05/29 23:35  삭제

    해미님의 [하늘, 아프게 푸른 하늘] 에 관련된 글. 이틀째 하이닉스에 다녀왔다. 나랑 울 연구소 의사하나 약사하나 이렇게 셋이 다녀왔다. 가운까지 챙겨서 들어가겠다고 한참을 용역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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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eeus 2006/05/30 0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케이티엑스도 7일날 500인 동조 단식농성들어간다는 소리를 듣고 하이텍^^ 가서 비오는날 500인 단식허던 생각을 했었다... 하이닉스 얘기 퍼트린지도 오래되얐다.... 그래서 일케 여적지 힘들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이글 퍼트리는 거 필요하다는 점에 왕동의허지? (두개다... 인쇄 요청임)

  2. 해미 2006/05/30 13: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리우스/ 언냐가 동조단식 한것은 하이텍 아닌감요? ㅋㅋ 뭐 인쇄요청에야 왕동의하죠. 케이티엑스 동조단식에도 참석하구 싶은데 병원일정이 영 거시기해서 걱정중이에요. ㅠㅠ

  3. leeus 2006/05/30 1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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