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6/06/09 21:14
Filed Under 이미지적 인간

참 쉽게 금방 금방 읽히는 책이다. 아침에 출근하면서 책을 들고 나갔는데 출장검진 가고 집으로 오고 하는 길에서 다 읽었다. 왜 이렇게 잘 읽히는 것일까?

 

일단은 블로그를 그대로 옮겨온듯한 그녀들의 글쓰기 방식때문일 것이고,

두번째는 나도 그리고 이 땅의 여성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그녀들의 삶과 느낌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섹스, 삶, 사랑을 적절히 황금비율로 배분한 이야기의 구성도 그러할 것이다.

 

지하철을 타면서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가 볼까봐 살짝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오히려 이 땅의 많은 남성들이나 친구가 '유사아들'이라고 부르는 나같은 인종에게도 필요한 책임에는 틀림없다. 더군다나 섹스나 동성애등 민감한 소재에 대한 거침없는 솔직한 표현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여성들간의 언어와 소통의 즐거움을 느낄수 있는 책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섹스앤시티나 위기의 주부같은 시트콤이 유행하고 동성애코드가 그리도 강했던 '왕의 남자'가 1200만이나 들고 브로크백 마운틴이 조용히 그 여세를 확장했던 요즈음, 대한민국의 현실은 동성애와 여성의 성이 상품으로 그저 소비만되고 있는건 아닌지 우려될 지경이니 발간 1달만에 5쇄를 찍은 이 책의 성공은 사실 예견되어 있던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아쉽게도 '상품화된 페미니즘'의 냄새가 너무도 물씬나는 것 같았다. 이런 느낌 자체가 나의 경직된 사고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여성성'에 담겨 있는 가부장적 권위의 해체와 변혁적 흐름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이 책을 통해 남성들은 여성들이 원하는 섹스를 알게되고, 피임을 하게 될 수 있다. 그리고 여성들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그 욕망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에게 당당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러한 자기 찾기의 과정속에서 연대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도 있다.

 

하지만 왠지 메시지가 너무 공허한 느낌이었다. 개인이 바라고 욕망하는 것을 발언하는 것보다 무엇을 바라고 욕망하는지 모르는 우리가 더 많지 않을까? 머리속으로 행동의 지침을 아는 것과 무엇을 어떻게 행동할지를 생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가 아닐가? 본인이 원하는 것을 알게하는 경험들의 총체...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걸까?

 

맛있는 것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했다. 자기의 느낌을 이야기하고 발언하는 것도 해본 사람이 잘 하는 거고 느껴본 사람이 욕구도 느끼고 원하는 것을 인식하기도 하는거 아닐까? 난 아직도 내가 원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잘 모르겠는데...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는 지침은 알고 있지만 그 지침의 내용은 없는것 같은데 이 책은 지침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지침의 내용이라는 것도 섹스와 개인으로서의 삶과 개인적 관계 (물론 레즈비언 공동체를 이야기하는 글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레즈비언들만의 고립을 이야기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2-30대 여성만을 담고 있는 느낌이다. 개인을 찾음으로서 갇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향해 활짝 열리는 관계여야 하는 것이 아닐가?

 

워낙에 이쪽 분야에 아는게 없는지라 내 판단이 틀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런 표현과 발언을 하는것 자체가 지금까지 금기시 되어 왔던 것이고 힘든 것이었으니까... 그런 표현과 발언들이 나오는 것이 이미 성과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쉽다. 왠지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에 걸려있는 체게바라의 얼굴을 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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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09 21:14 2006/06/09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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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붉은사랑 2006/06/10 1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의 소감, 동감. 1달만의 5쇄라...제겐 추천해주고 싶은 책은 아니었어요.

  2. 해미 2006/06/11 0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붉은사랑/ 그러게요. 저두 추천하고 싶은 책은 아니네요.

  3. re 2006/06/11 08: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 안 읽어봐서리 뭐라 말은 못하겠구. 지난달 네트워커에 관련기사가 하나 있어 적어놔요. 인터뷰라 이 책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아니지만서도. http://networker.jinbo.net/zine/view.php?board=networker_4&id=1555&category2=34
    나 '네트워커'networker.jinbo.net에 들어가시면 볼 수 있슴다

  4. 스머프... 2006/06/14 15: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형서점의 베스트셀러에 걸려있는 체게바라의 얼굴을 본 느낌'이 말이 딱인것 같네요. 그럴것 같아서 안봤어욤..^^(참고로, 언니네 온라인 회원인지라, 자방-자기만의 방-을 종종 둘러 보거든요..)
    발표 잘 하시공, 무사히 귀환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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