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6/07/30 13:56
Filed Under 내 멋대로 살기

금요일이었다. 파업중인 사업장에 내려가려고 동생의 차를 끌고 막 병원을 빠져 나온참이었다. 파업이 길어질것 같아 휴가전에 오늘 문화제를 하고 조합원들은 휴가에, 상집들은 출근투쟁에 돌입할 계획이었다. 마침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어서 쌩초보인 나로서는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던 찰나였다.

 

전화벨이 울린다. 사업장의 위원장 형이다. 갑자기 무슨일인가 싶어 전화를 받았다.

 

'끝났습니다' 하는 형의 목소리에 약간의 떨림이 느껴진다.

'어떻게요? 동결은 어케 됬는데요?'

'3% 인상하고 합의했어요.'

 

일단 다행이다 싶다. 화요일날 사업장을 찾았을 때 많이 지쳐보이던 동지들의 모습이 계속 눈에 아른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 지금 막 내려가려고 나선 참이었는데... 어떡할까요?'

'소주라도 한잔하게 와요'

 

정말 앞이 안 보이게 쏟아지는 비를 뚫고 안성으로 향했다. 수해가 났는지 도로의 일부가 누런 흙탕물에 잠겨 있었다. 그 와중에 도착한 뒷풀이 장소, 이미 많은 동지들이 술을 꽤 마셨다.

 

이동하는 사이 협상 결과를 물어보았다. 500억 이상의 신규아이템과 관련한 기한 세부합의를 마쳤고 나머지 단협안에 대해서는 작년 단협으로 가는걸로 하고 임금만 기본급 대비 3%를 올렸다고 한다. 예상하고 있던 바였기는 했지만 너무 쉽게 끝난건 아닌가 싶었다. 조합원 총회 결과를 물어보니 73%가 합의안에 찬성을 했다고 한다. 위원장 선거도, 산별전환 투표도, 쟁의행위 찬반투표도 90%가 넘었던 사업장이다. 상대적으로 찬성률이 좀 낮은 듯 하다.

 

'조합원들은 더 가고 싶었는데 전임자, 상집들 불쌍해서 찬성한거 아니에요? 휴가나 갔다 와서 싸우자고 말예요? ㅎㅎ' 라고 농담삼아 이야기를 하며 술잔을 부딪혔다.

 

많은 동지들이 와서 고맙다면서 잔을 부딪힌다. 참으로 민망하다 한 것두 없는데 고맙다구 이야기하는 동지들의 눈에 진정성이 담겨있다. 더 열심히 하라는 말로 알아듣기로 했다.

 

어떤 동지는 완전히 이겼다고 승리했다고 이야기를 하고, 어떤 동지들은 앞으로가 문제라며 다시 결의를 다지고 있고, 어떤 동지는 조합이 너무 이기기만 해서 걱정이라며 속내들을 털어 놓는다. 상대적으로 활동가들은 승리라고 생각하고 조합원들은 아쉬워하는 감이 있는것 같았다. 그럴만도 했다. 실천단이 사수대로 전환하고 현장 활동이 이루어지면서 '사수대가 사수는 안하고 현장 조직사업만 하는거 아니냐?'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현장의 분위기는 올라오고 있었다. 지도부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이 토론과 활동들이 만들어 지고 있었고 조합원들의 투쟁력은 그 어느때보다도 높았기 때문이다.

 

'뭐, 어느 구조조정 싸움이나 그렇지. 지도부가 먼저 접는 거지 뭐~' 하고 농을 쳤다. 그런 나의 농담에 현장의 활동을 지켜보면서 위원장 형은 '자발적인 현장활동이 뭔지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상황은 좋았다.

 

올해 초, 시작은 쉽지 않았다. 이미 2년전부터 준비한 구조조정 싸움이었지만 내년 말이면 매출이 현재의 1/3로 줄게 뻔한 상태였다. 답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보쉬가 인수 얘기를 할때도 현대가 신규아이템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도 전제는 인력감축이었고 노사화합선언이었다. 노조가 백기들고 투항하면 아이템주고 회사가 유지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이야기였다. 보쉬나 현대의 이런한 제안을 노조는 번번히 거절했다. 함께 살고, 함께 죽겠다는 결의 뿐이었다. 이번 파업을 시작할때도 그랬다. '답없으면 그냥 같이 죽는거지 뭐...'

 

이런 대책없는(!) 파업에 결국 사측이 아이템을 가져왔다. 인원줄이기 전에는 죽어도 안 된다던 신규 투자와 함께 노사화합선언도 안 했건만 보쉬와 현대에서 아이템을 가져왔다. 결국 당분간 이 사업장은 지금의 매출 규모를 유지하면서 갈 수 있게 되었다.

 

사측의 전격적 제안이 이루어진것은 파업초기였다. 사실 올해 임단협에서 신규투자안만 넣으면 되는게 아닐까 고민했던 경험도 있기 때문에 신규투자가 확인만 된다면 이긴 싸움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리 양보할 필요는 없었다. 신규투자안 말고도 올해는 단협 개정안도 꽤 많았다. 임금을 포함한 단협안의 동결을 요구하는 사측 때문에 어제도 협상이 결렬이 났었고 장기투쟁을 준비하고 있던 중이었다. 동결은 아이템과 나머지를 바꿔치기하는 의미밖에 안 되기 때문에 먼저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결국 파업은 승리로 끝났다. 3개월은 갈 줄 알았던 파업이었다.

 

'함께 살고 함께 죽는다'고 외치던 동지들이 당분간 함께 살게 되었다. 그리고 그 동지애는 더욱 커진게 분명했다. 사수대 한다고 열심이던 실천단 동지들에게 이제 무엇을 제안하고 이야기해야 되나 고민이 되기 시작한다.

 

과제가 여전히 남기는 하지만 잘 끝난 파업... 그 동안의 어려움과 힘듦을 휴가때 잘 풀고 또 다른 현장활동을 준비할 수 있으면 될 거 같다. 합의안이 휴지가 안 되게, 그리고 올라와 있던 현장 동력들을 유지하기 위한 실천 활동들이 필요할 때이다.

 

파업기간... 우연히 앉아본 위원장 형의 컴퓨터 모니터에는 여러개의 포스트 잇이 붙어 있었다. 구조조정과 관련해서 사측이 이야기했던 발언 하나하나와 가대위를 비롯한 파업전술에 대한 고민까지...  포스트 잇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현장을 고민했을 그 시간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뭐, 어쩔 수 없다.

 

그렇게 계속 고민하고 방법을 찾고, 소통하지 않으면 함께 살 수가 없으니까. 이번 파업에 애쓴 모든 동지들에게 수고했다는 한마디를 크~~게 외쳐 전하고 싶다. 그리고 앞으로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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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30 13:56 2006/07/30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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