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8/01/30 13:23
Filed Under 손가락 수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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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는 잠자고, 휴일에는 쉬고 싶다.

 

저번에 이야기한 것처럼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긴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나라이다. 왜 밤에 일하는 게 나쁠까? 독일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밤에 일을 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수명이 13년이나 줄어든다고 한다.

 

낮과 밤의 변화에 따라서 사람의 몸은 민감하게 변화한다. 생체 리듬이라는 게 있어서 몸이 스스로 낮과 밤을 알고 이에 적합하게 몸을 만들기 때문이다. 낮에는 활동하고 밤에는 자라고 만들어진 몸인데 밤에 활동을 하다 보니 이런 변화가 깨지게 된다. 이때 특히 영향을 많이 받는 기관이 심장이다. 이러다 보니 돌연사와 과로사의 위험이 높아지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심야노동이 일반적인 것이고, 심지어 젊을 때는 적극적으로 활용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모 조선소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연달아 몇 달째 야간작업만 하고 있다고 했다. 야간작업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주간작업을 하는 것보다 일당이 많기 때문이다. 그 노동자는 ‘젊었을 때, 벌수 있을 때 벌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심야노동은 노동자의 몸을 갉아먹는 치명적인 암세포와 다름없다. 처음에는 그 영향을 잘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서 온 몸 구석구석에 퍼지면서 삶을 파괴한다. 건강도 파괴되고, 가족들과의 시간도 파괴되고, 친구들과의 우정도 파괴된다. 자본이 공장을 24시간 돌리는 건 더 적은 수의 노동자들로 공장을 쉼 없이 돌리는 게 더 돈이 많이 남기 때문인데 그 속에서 노동자들은 병들고 있다.

 

살인적인 24시간 맞교대를 수년간 했던 철도 노동자들 사이에 떠도는 말이 있다. 정년 퇴직하고 나면 이상하게 줄초상이라는 것이다. 젊을 때 열심히 벌어서 퇴직 후에 잘 살아봐야겠다고 이야기하던 노동자들이 정년퇴직하고 나서 몇 년 못살고 세상을 뜨는 건 심야노동의 영향을 보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한 밤 환하게 켜져 있는 조선소의 불빛이 무섭다. 밤에는 잠자고 휴일에는 쉬는 것, 가장 인간적인 요구를 가슴에 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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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사 예방, 기본은 우리를 살피는 것부터

 

근처에 자주 가는 병원의 의사에게 뇌심혈관계 질환이 걱정된다고 하면, 대번 하는 소리가 담배 끊고, 술 좀 적게 마시고, 살을 빼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라고 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조금 억울하지 않은가? 누군 하기 싫어서 안 하냔 말이다.

 

최근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유명해진 회사가 있다. 바로 1년간 15명의 노동자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 한국타이어이다. 자살과 암으로 사망한 노동자도 있었지만 8명은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 이건 일반적인 사람들에 비해 몇 배나 높게 발생한 거라고 한다. 이렇게 사망한 노동자들 중에는 20대 후반의 건강한 청년도 있었다. 연구소에서 일하던 그는 고혈압이나 당뇨 같은 흔한 질환도 없었고, 평상시에도 건강했다. 28살이던 노동자는 회식이 끝나고 집에서 잠을 자다 사망했다. 이렇게 기존 질병이 없는 노동자가 심장질환으로 갑자기 사망한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노동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현장의 통제시스템과 동료들과 편하게 말조차 하기 힘든 현장의 분위기 때문은 아닐까?

 

과로사는 직무스트레스와 같은 다양한 심리적 원인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고혈압이나 당뇨 등 기존 질환이 있는 경우에는 그 진행이 더 빠르다. 야간노동을 할 경우에는 과로사의 발병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 때문에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는, 노동시간이 길고 임금도 적어서 술 마시는 것 외에는 딱히 다른 소일거리도 없고, 운동을 할 시간도 없는 노동자들에게 뇌심혈관계 질환의 예방은 개인적 노력만으로는 어려워 보인다.

 

과로사의 예방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힘들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직무스트레스가, 통제 시스템이 우리의 몸을 병들게 하고 있는 건 아니지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살펴보자. 그리고 작더라도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찾아보자. 그것이 과로사를 예방하는 기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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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30 13:23 2008/01/30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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