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8/01/27 21:51
Filed Under 손가락 수다방

연초, 잠깐의 여유로움이 가신지 며칠 안 된 월요일의 일이었다. 아침 일찍 휴대폰 문자가 왔다. 얼마 전부터 위독하시다는 이야기가 간간히 전해지던 모 대학 재단 이사장의 부고였다. 그리고 잠시 후 뉴스에는 끔찍한 떼죽음의 현장이 보도되었다. 40명이나 되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들이 사망한 이천 화재참사에 대한 보도였다. 그렇게 7일 아침은 나에게 죽음에 대한 소식과 찾아왔다.

 

이사장의 죽음은 사실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얼마 전에는 중환자실에 계시다는 이야기가 병원에 돌기도 했고,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 참석을 하고 있던 병원장이 이사장의 진료를 이유로 자리를 뜨기도 했다. 병원 꼭대기 층에 화려하게 꾸며졌다는 VIP병실에서 전담 간호사들이 24시간 간호를 하는 상태에서 병원장을 주치의로 하여 대학 병원의 최고인 교수들이 돌아가면서 당직을 설 정도로 병원의 긴장감은 팽배했다. 보통 당직이 전공의의 전담 업무임을 고려하면 교수들에게는 아마도 의약분업 사태이후 수년만의 당직이었을 것이다. 부고의 소식은 수시로 문자로 날라들었고, 빈소는 학교에 차려졌고 직원들은 빈소를 지키고 조문객을 맞이하는 일에 동원되었다. 그 동안의 업적이 어느 정도인지 나야 잘 모르고,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충분히 존중받고 보살핌을 받은 후 애도를 받으면서 떠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같은 날 벌어진 40명의 죽음은 그렇지 않았다. 다들 아는 것처럼 그들은 소방 설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냉동 창고에서 폭발성 물질을 다루다가 사고가 났다. 월요일 아침 일찍부터 일하던 일용직 노동자들은 탈출구조차 없는 그 곳에서 처참하게 타 죽은 것이다.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에 왔을 이주노동자와 없는 집안에 푼돈이라도 보태보려고 그 자리에 나왔을 여성 노동자, 그날그날의 벌이로 먹고 살았을 일용직 노동자들이 조금이라도 업무를 빨리 해보려는 사업주 때문에 처참한 재앙의 희생자가 된 것이다. 신원을 확인하는 데만도 며칠이 걸렸고, 화재의 원인을 밝히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 땅에서 어렵게 살아가던 노동자들의 죽음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충분히 존중받지도 보살핌을 받지도 못한 채 찾아왔다.

 

이런 일이 하루 이틀은 아니지만, 같은 날 접한 죽음이 참으로 다르다. 모두의 생명이 모두 똑같이 존중 받을 만한 것인데, 누구나 충분히 존중받고 보살핌을 받은 후 세상을 떠날 권리가 있는데, 세상에서 벌어지는 죽음들은 참 다르다. 하이닉스 건설현장에서는 안전장치가 되어 있지 않는 작업장에서 노동자들이 떨어져 죽었고, 조선소에서는 자율안전점검이라는 미명하에 허술해진 안전조치에서 야간작업을 하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깔려죽었다. 태안에서는 절망한 주민이 몸에 불을 붙이고, 농약을 마시고 있다. 광주·전남에서 일어난 산재 사망 10명중 7명은 비정규직이라고 하고, 호황이라는 조선업 더욱 호황이 될 거라는 건설업이 매년 사망재해 최악의 기업에 당당히 선정되고 있다. 이천 화재 진압에 나서느라 몇 일간 잠도 못자고 일을 했던 소방관은 과로사로 사망했다.

 

이런 와중에 이명박 정부는 기업의 규제를 완화할거라고 한다. IMF 이후 이루어진 규제완화조치의 많은 부분들이 안전보건에 관한 것이었음을 감안할 때, 경총이 애타게 매달리고 있는 것도 규제완화의 많은 내용도 안전보건에 관한 것임을 감안할 때 또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죽어나갈 생명이 늘어날 것 같은 불안에 시달린다.

 

세상에는 다른 죽음이 존재한다. 누구나 존경받고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갈 권한이 있건만 그것 역시 그 사람이 속해있는 위치에 따라 결정되고 효율성이라는 또는 생산성이라는 이유로 무시되기 일쑤다. 제발, 인간답게 살아가고 존중받으며 죽을 수 있는 기본적인 권한 만이라도, 우리가 초등학교 때 배우던 생명은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는 상식이라도 통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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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27 21:51 2008/01/27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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