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8/03/03 17:40
Filed Under 손가락 수다방

귀국한지 일주일정도 지났는데, 너무너무 바쁘다. 인도 갔다온 이야기도 쓰고 싶고, 2월달에 있었던 일들도 정리해야 할 것 같고, 그 동안 못 본 뉴스도 몇개 찾아봐야 하는데 매일매일 당일치기로 살아가고 있다. 에효... 일단 한숨 돌리고 귀국인사는 정식으로 다시. ^^

 

우리네 이야기 하나

 

47세의 김말숙씨는 마트에서 일하는 계산원이다. 김말숙씨가 동네에 크게 생긴 마트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은 그녀의 딸이 대학 1학년이 되던 해였다. 나날이 오르는 등록금은 어떻게 학자금 대출로 해결을 했지만 서울에서 공부하는 딸의 하숙비와 교재비 등에 소용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딸이 대학에 입학할 무렵 대학에 다니고 있던 아들이 군대에 가서 그나마 짐을 덜었는데, 아들이 복학한 이후로는 더 형편이 어려워졌다. 지방에서는 공부를 잘 했고 똑똑했던 딸이어서 그녀는 충분히 도움을 주지는 못하지만 돈이 없어서 기를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하숙비라도 조금 보태려고 마트에 다니기 시작한지 3년이다. 한 달에 100만원이 조금 안 되는 그녀의 월급은 아들이 군대에 가 있던 동안 충분하지는 않지만 딸의 생활비에는 보탬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아들은 제대를 했고 복학을 했다. 그리고 그녀의 딸은 올해 대학교 4학년에 올라간다. 이젠 그녀의 월급으로 아들과 딸의 한 달 생활비조차 챙겨줄 수 없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착한 딸은 친구들처럼 해외로 어학연수를 가고 싶은 눈치인데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연수를 보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돈을 충분히 줄 수가 없어서 말숙씨도 미안하기만 할 뿐이다.

 

마트에 다닌 지 3년이 지난 요즘 말숙씨는 요즘 손목이 시큰거려서 손빨래를 짜기가 힘들다. 일하기 시작하고 1년이 지날 무렵부터 어깨가 많이 저려왔다. 처음에는 어깨만 저리더니 조금 지나니 손가락까지 저린 느낌이 뻗치기도 하고 밤에 잠을 잘 못잘 정도인 경우도 많았다. 이야기를 들은 딸은 디스크가 아니냐며 걱정을 했고 덜컥 겁이 난 말숙씨는 휴일을 이용해 동네에 유명하다는 정형외과를 찾았다.

 

의사는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이런 저런 동작을 시켜보더니만 X-선 촬영을 하고 몇 가지 피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그리고 검사 결과를 보더니만 뼈에는 이상이 없다면서 삼일치 약을 지어주고 물리치료를 받고 가라고 했다. 물리치료를 받고 약을 먹으니 약간 증상은 좋아지는 것 같았다. 의사는 일주일 정도 꾸준히 다니라고 했지만 말숙씨는 또 시간을 내기가 힘들었다. 일주일 정도는 별 증상 없이 일을 했다.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이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명절이 다가왔다. 많은 손님이 한꺼번에 몰리는 명절은 마트 직원에게 가장 바쁜 때이다. 명절을 며칠 앞둔 주말, 연장근무까지 하고 나니 다시 어깨가 심하게 아팠다. 이번에는 점심식사 시간에 숟가락을 들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말숙씨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던 동료들이 자기들도 비슷한 증상이 있다면서 유명하다는 침술원을 소개해주었다. 가서 벌침을 맞으면 좋다는 것이다. 바쁜 명절이 지나고 그녀는 휴일을 이용해 언니들이 소개해준 침술원을 찾았다. 침도 맞고 부황도 떴다. 부황을 뜨던 한의사 선생님은 나쁜 피가 엄청 많다면서 시커먼 피를 보여줬다. 벌침을 맞고 나니 저린 증상은 꽤 많이 없어졌다. 말숙씨는 벌침이 진짜 효과가 있나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깨는 시간이 조금 지나 일을 많이 했다고 생각되거나 고객 때문에 속상한 일이 있는 날이면 더 저렸다. 저리기만 하던 어깨가 욱신욱신 쑤시기도 하더니만 요즘은 아예 손가락까지 저리고 아픈 날이 많았다. 아파서 잠을 자기도 어렵지만 잠을 잔다고 해도 통증 때문에 아침에 깨는 일이 많아졌다. 2년전부터 매장에서는 신규직원을 뽑지 않고 있다. 마트가 매출이 올라가고 주변에 신규 아파트 단지에 입주가 시작되면서 손님도 많이 늘었는데 사람을 더 뽑지는 않았다. 사람이 줄어서 힘들다고 하니 점장은 바코드가 도입되면 좀 편해질 거라고 얘기했다. 바코드가 도입되고 예전처럼 키보드를 직접 쳐야하는 일은 많이 줄었지만 손님은 나날이 늘었고 그녀는 일이 힘들다고 느끼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요즘 말숙씨는 아주 심하게 아플 때만 가끔씩 병원 물리치료실이나 침술원을 찾는다. 이제는 그녀도 치료의 효과가 일시적이어서 그때 잠깐만 좋아진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잠을 깰 정도로 아플 때는 별수 없었다. 그렇게 잠깐씩이라도 치료를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았다.

 

얼마 전부터 말숙씨는 어깨에 대한 약을 먹는 것 외에 위염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속이 쓰리고 소화가 안 되서 병원을 갔는데 의사는 내시경을 해보자고 했고 위염이 있다고 했다. 밥을 조금씩 규칙적으로 천천히 챙겨서 먹으라는데 일하면서 밥을 먹는 것도 쉽지 않다. 손님이 몰릴 때면 시간이 훌쩍 지나고 결국 아무것도 못 먹고 지나가는 날도 있었다.

 

사실, 남들한테 말하기 민망해서 숨기고는 있지만 말숙씨는 2년 전부터 가끔 산부인과도 다니고 있다. 소변을 볼 때면 자꾸 아래가 아프고 가끔 소변을 지리기도 해서 다니고 있는 것이다. 방광염이라고 하는데 무슨 고질병인지 계속 재발돼서 걱정이 많이 된다. 손님이 몰리는 날이면 근무시간 동안 화장실을 한 번도 못 가는 날이 생기고 이런 날이면 증상은 더 심해진다. 소변을 볼 때 통증이 더 심하고 가끔은 아랫배가 뻐근하게 아프기도 하지만 끊이지 않고 줄을 잇는 손님한테 잠깐 화장실을 갔다 올 테니 기다리시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마음이 조급할 때가 많다. 손님이 몰렸을 때 화장실을 가고 싶을까봐 일부러 물을 많이 먹지 않는다. 실내에서 일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지라 감기에도 잘 걸리는 편인데, 물을 많이 마셔줄 수가 없어서 감기가 잘 낫지 않는다. 목이 아픈데도 고객에게 친절히 대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말이 많아 감기가 떨어질 날이 없다.

 

심지어 요즘은 친절관리를 한다고 손님을 가장한 친절 평가회사 직원들이 들이 닥치는 일도 많다. 그런날 화장실을 가고 싶으면 정말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다. 괜히 시비를 거는 고객을 보면 평가회사에서 나온 사람들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해서 매일 매일이 조심스럽다. 말숙씨처럼 어깨가 쑤시고 여기저기가 아픈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만두는 동료들이 많아지자 매장에서는 요즈음 아르바이트로 젊은 직원들을 쓰고 있다.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지만 그녀들의 월급은 말숙씨보다 적다고 한다. 3개월 계약직이라는 친구도 있고 2개월 계약직이라는 친구도 있다. 지금은 젊어서 괜찮겠지만 젊은 친구들이 몇 년 일을 하다 그녀와 비슷해질까봐 걱정이 된다. 그녀의 딸과 비슷한 나이의 그녀들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걸 보며 말숙씨는 자꾸 딸 생각이 난다.

 

우리 주변의 말숙씨

 

어떤가? 말숙씨의 이야기가 낯선가? 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 말숙씨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무거운 짐을 옮기느라 허리가 아픈 건설 노동자, 용접을 오래해서 눈이 침침한 용접공, 발암 물질을 다루다 암에 걸린 노동자, 가끔은 이상한 고객들을 상대하다 혈압이 올라가서 이젠 약을 먹어야 되는 고객센터의 직원, 하는 일이 영업이라 지방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밤마다 술을 마셔야 하는 영업직원, 2인 1조 작업을 하다가 1인 1조로 바뀌면서 사고가 생겼을 때 봐줄 사람도 없이 시체로 발견된 조선소의 노동자...

 

말숙씨가 가지고 있는 모든 병은 직업병이다. 어깨가 아프고 손이 시큰 거리는 것은 골병이라고 부르는 근골격계 직업병이고 방광염과 위염도 근무환경 때문에 생긴 병이다. 고객을 상대하는 직업인지라 직무스트레스도 높고 창문도 하나 없이 환기도 안 되는 마트에서 일하느라 감기가 떨어질 날이 없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병중에 직업과 관련이 없는 질병이란 있을 수가 없다. 적어도 하루의 3분의 1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의 일이 건강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직접적인 원인이 되느냐 악화의 원인이 되느냐의 차이가 있고 원인이 되는 경우 직업적인 요인이 발생과 악화의 몇 %를 차지하느냐의 문제가 다를 뿐이다.

 

노동자 건강권, 생각을 바꾸자

 

물론, 노동자들의 건강의 문제는 최근에만 발생한 것은 아니다. 굴뚝 청소를 하던 어린이들이 방광암에 잘 걸린다는 보고가 나온 것도 벌써 수백 년 전의 일이고, 수백 년 전 모자를 만드는 사람들이 성격이 이상해진다는 보고도 있었다. 오히려 문제는 지금 노동자의 건강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수백 년 전부터 지금까지 노동자들은 어딘가 아프고 병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은 다들 말숙씨처럼 그저 자식들 자라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또는 큰 욕심 없이 식구들 편안하게 먹고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노동자이다. 이 땅이 많고도 많은 말숙씨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은 불가능한 것일까?

 

노동자들의 건강은 저절로 좋아질 수 없다. 아니 건강해지겠다고 담배를 끊고 술을 줄이고 자는 시간을 쪼개서 운동을 한다고 해도 결국 좋아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 노동자들이 일을 하는 일터가 바뀌지 않으면 노동자들의 건강은 수백 년이 지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왜냐하면 문제의 근원은 다른데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말숙씨는 어떻게 하면 건강해 질 수 있을까? 어깨와 손목이 아픈 것은 증상이 약간만 생겼을 때라도 바로 바로 휴식을 취하면서 근육이 피로를 풀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많은 연구에 의하면 최소 50분 동안 일하고 10분은 아무 일도 안하고 쉬어야 근골격계 증상이 좋아진다고 한다. 그리고 위염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손님이 몰아닥치더라고 식사시간을 꼬박꼬박 챙겨주고 1시간 정도 여유 있게 식사를 하고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마찬가지로 언제든지 화장실을 갈 수 있도록 계산대도 많이 만들고 계산원 인력도 여유가 있어야 한다. 환기가 안 되는 지하에서 근무하는 만큼 제대로 환기를 시키기 위한 시설을 갖추던지 중간 중간에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 친절을 평가한다고 시시 때때로 들이닥쳐 사람들의 성미를 돋우는 평가 방법도 바뀌어야 한다. 아프면 아프다고 이야기하고 쉬는데 나 때문에 동료들이 더 힘들어지지 않을지 또는 자꾸 아프다고 하면 무슨 불이익을 받지 않을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되면 말숙씨의 병은 많이 좋아질 것이다.

 

그렇다. 사실 말숙씨의 문제는 계산대를 여유 있게 많이 만들고 계산원들의 숫자도 여유가 있어 적당히 일을 할 수 있게 하고 계산원을 충분히 고려한 근무환경을 조성해서 손님이 많은 시간에도 여유 있게 일이 처리되게 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매출을 얼마나 올릴지 얼마나 빨리 계산을 처리할 수 있는지가 기준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이 편안하고 아프지 않게 일할 수 있는 작업장 상황을 만들어 가면 충분히 해결 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노동자들의 건강과 조건을 우선순위에 두고 살피는 사장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 아닐까?

 

필자는 얼마 전 출장차 갔던 이탈리아에서 필요한 것을 사러 갔다가 들른 마트에서 깜짝 놀랄만한 상황을 발견했다. 바로 마트의 계산원들이 의자에 앉아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계산원들은 억지로 웃거나 상냥하게 미소를 짓지도 않고 앉아서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다. 언젠가 병원일로 방문했던 대형 마트의 보건관리자에게 계산원들이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느라 어깨도 아프고 허리도 아픈 것이니 의자를 놓아 주는 게 어떠냐고 했다가 크게 무안을 당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관리자는 어디 감히(!) 손님을 앉아서 맞을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고, 그렇게 하면 처리 속도가 늦어져서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디 앉아서 일하는 계산원이 있냐고 반론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는 버젓이(!) 계산원이 앉아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건강은 이렇게 별게 아닌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물론 인원과 계산대를 늘리는 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노동자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고 건강하게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고민을 대신 해줄 사장은 내가 아는 한 거의 없다. 바로,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들부터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무엇이 우리의 몸을 병들지 않고 즐겁게 일을 하게 만들어주는지를 고민하고 서로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확인하고 나만의 문제가 아님을 확인하는 것, 그리하여 필요한 것들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의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남의 생각을 먼저 바꾸기는 더 어렵다. 이제부터 노동자들의 건강과 노동의 질의 관점에서 우리의 현장을 다시 꼼꼼히 살펴보자. 이것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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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03 17:40 2008/03/03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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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염둥이 2008/03/04 17: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도...건강...카레...

  2. 해미 2008/03/05 13: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염둥/ 어케 알았소. 이 글을 인도에서 점심으로 카레 이빠이 먹고 난 후 호텔방에서 쓴 글이라는 사실을? ^^

  3. 해미 2008/03/06 0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염둥/ 헉! ㅠㅠ 그나저나 3월 마지막즈음 일잔해요. 아니면 맛난거 먹는거로.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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