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8/03/09 20:17
Filed Under 이미지적 인간

여행으로 공백이 많은 2월이었지만 오가는 길 잠깐씩 남는 시간에 봤던 영화들. 또는 벼르고 별러서 본 콘서트.

 

#1. 6년째 연애중

 

 

내가 했던 최장의 연애기간은 3년이었다. 세상에 6년이라니 깜짝 놀랄 일이다. 어렸을 때, 친구이자 애인이자 동지인 사람과의 연애를 꿈꿨지만 나이가 들고 나니 어짜피 연인 관계는 연인 관계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꿈이 깨진지 오래인 나에게 '넌 나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식의 멘트가 참으로 와 닿았다.

 

정확히는 이들이 사귀었던 것처럼 가슴이 콩닥거리고 미친듯이 설레여서 할 일을 제낄정도가 되고 연애라는 것이 내 일상의 우선 순위가 됬던 적은 거의 없거나 있더라도 기간이 아주 짧은 나에게 그 시작은 오히려 좀 연애의 환상을 부추기는 느낌이었다.

 

연애라는 관계 밖에서도 자신을 찾아가고자 하는 늦었지만 당당한 그녀 다진이 예뻐보이기도 하고, 다진과 엄마의 관계가 부럽기도 했다. 윤계상이 은근 연기를 귀엽게 하더라는 느낌. ^^

 

#2.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언 형제의 냉소적 유머를 좋아하는 편인데. 이번 영화는 정말 유머보다 긴장감이 최고였다. 영화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안타까워하고 손에 땀을 쥐고 있더라는. 특히 도망중인 남자과 쫓는 남자가 맞닥뜨리기 일보 직전의 그 순간 어두워진 복도 사이에 보이던 두 개의 다리의 음영이 사라지던 순간의 긴장은 정말 끝장이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우연히 돈가방을 발견한 남자와 그 남자를 쫓는 산소통을 들고 다니는 살인자의 추격전은 인간의 근본을 생각하게 한다. 쫓기는 남자는 일말의 양심때문에 돈가방을 발견한 장소로 그 밤에 돌아간 것이다. 일말의 양심만 아니었다면 그는 정말로 큰 돈을 가지고 편안하게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쫓는 남자는 정말 피도 눈물도 없다. 살인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심지어 동전을 던질 기회를 주면서 동전의 결정이 자기와 같을 거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하는 남자이고 교통사고로 개방형 골절의 중상을 입었으면서도 목격자인 아이들에게 자기를 본 것을 잊으라고 주문하는 남자이다.

 

무표정한 듯 괴이한 표정을 지니고 살인 무기로는 고압산소통을 쓰는 킬러. 괴이한 헤어스타일이 그의 괴이한 성격을 말해주지만 그는 너무도 논리적이고 운동신경도 빠르다. 쫓기는 남자가 가지고 있던 일말의 양심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다른 사람보다 훌륭한 그 남자. 살인자를 연기한 하비에르 바르뎀은 엄청난 연기를 보여줬다. 데어윌비블러드만 아니었다면 남우주연상도 당연히 그의 차지였을 것이다.

 

너무나 미국적인 화면은 킬러의 냉소와 끝을 알 수 없는 악함을 미국적인 것으로 승화시키고 음악대신 사용한 숨소리, 발자국 소리, 땀이 흐르는 소리와 같은 효과음은 긴장감을 가중 시킨다. 특히 무기력하게 뒷북만 치는 보안관의 모습 역시 지금의 미국 사회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올해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받았다는데 아카데미가 이상하단 생각이 들 지경이다.

 

#3. 스위트피 2집 발매 콘서트


 

지역에서 교육을 하고 올라온데다가 하필이면 발렌타인데이여서 차가 우찌나 막히는지 공연장에 20분정도 늦게 도착했다. 살금살금 들어간 공연장에서 비극적인 삐에로 같기도 하고 배트맨의 조커같은 분장을 한, 생각보다 비쩍 마른 작은 체구의 남자를 봤다.

 

델리스파이스 시절부터 좋아했던 김민규의 솔로 프로젝트인 스위트피는 델리보다 개인의 성향이 더 잘 드러나는 음반이라 생각했다. 콘서트 역시 '정말 이 사람은 음악에 미쳐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열정이 느껴졌다.

 

음악을 제대로 듣지 못할까봐 박수조차 잘 치지 않고 그저 숨 죽이고 공연을 감상하는 사람들과 숨소리까지 느껴질만큼 고요한 공간에 퍼지는 그의 탁탁 던지는 것 같으면서도 이야기를 하는 듯한 보컬은 환상적이었다. 썰렁한 멘트와 넘치는 박수와 환호는 없지만 그의 어색하고 약간은 이상해 보일 수도 있는 몸짓 하나하나에 담겨져 있는 열정이 듣는 사람의 기분까지 좋게 만드는 콘서트였다.

 

덧니> 게스트로 나온 언니네 이발관의 보컬 이석원도 짱이었다. 부끄러움이 많아 무대에서도 고개를 푹 숙이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목소리가 어찌나 울림이 있던지. 참 매력적이었다. 다음엔 언니네 콘서트를 한번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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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09 20:17 2008/03/0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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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hongsili 2008/03/09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가 갔던 날은 유희열이 게스트로 나왔음. 김민규의 음악적 열정이, 그 눈화장으로 승화된 것이라 설명해주어서 객석 다 쓰러졌음 ㅎㅎㅎ 코앤 형제 영화는 꼭 봐야하는디, 이러다 놓치겠네..

  2. 해미 2008/03/09 2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홍실/ 오호라 유희열은 심지어 유머감각까지 있군여. 꼭 보세요. 음향이 죽이는 영화라서 영화관에서 보시는게 좋슴다. 글구 한가지 더 데어윌비블러드 보실거면 그 전에 보세요. 충격과 감동이 감소될 수 있으니.. ^^

  3. 염둥이 2008/03/12 14: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이 얘긴 안 하려 했는데...
    김민규 넘 못생겼다.
    아우 속 시원해.

  4. 해미 2008/03/12 15: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염둥이/ 속 시원하다니 다행이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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