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0/01/22 12:39
Filed Under 이미지적 인간

연말 연초 히말라야에 갔다가 손목은 부러져서 기브스를 한 채여서 키보드를 칠지 말지 잠깐 고민했지만, 서울 갈 기차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 다 읽은 후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던 책을 정리하고 몇 자 끄적.

 

#1, 청부과학 (Doubt is their product, 데이비드 마이클스)

 

 

작년에 읽었던 책 중에 가장 인상에 남은 책 중 하나. 보건학이나 의학 전공자가 아닌 전공자의 한계상 번역이 잘못된 부분이 많아 아쉽기는 하지만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심지어 대학원 수업에서 교재로 쓰고 싶을 정도다. 여기에서 언급된 논문들을 다 찾아 읽어보면서 소위 '중립적' 또는 '객관적'이라는 과학적 근거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와 연구자의 역할과 양심이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만한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계절 독감을 '신종플루'라는 이름을 붙여 엄청난 이익을 창출해낸 제약회사의 음모처럼 어떻게 과학이라는 영역을 제약자본과 산업자본이 통제하고 제어하는 지에 대한 통찰이 담겨있는 책이었다. 그 동안 논문들을 읽으면서 의심스럽게 생각되던 많은 것들이 여기서 언급되고 있었고 어느 정도의 해답을 주기도 했다. '확실한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인정되지 않는 많은 직업병과 죽음이 결국은 자본이 만들어 낸 '의심'의 산물이고 이러한 '의심'이 지배하는 한 자본은 손해볼게 하나도 없다는 근거들이 차근차근 정리되어 있었다. 과학과 증거를 또는 중립성과 객관성이라는 것을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2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느가? (장 지글러)

 

 

전 세계의 빈곤에 대한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자신의 아들의 질문에 응답하는 형식의 글은 읽기는 쉽지만 충분하지는 않았다. 빈곤을 둘러싼 정치와 산업 논리를 모두 건드리기는 하지만 이도 저도 아닌 밋밋한 느낌이었다. 저자의 아들과 같은 나이의 어린이들에게 다른 나라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삶의 기회를 박탈당한 친구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3.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오래간만의 박민규의 장편 소설. '삼미 수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이후 나는 그의 소설을 빼 놓지 않고 읽어왔다. 못 생긴 여자를 사랑하게 된 남자의 이야기를 비교적 담담하게 그려낸 소설은 기존의 장편소설의 기상천외한 상상력을 담보하지는 않지만 화자에 따라 달라지는 결말로 진부함을 탈피했다. 이전의 (좋은 의미의) 수다스러움은 좀 떨어진 듯 했다. 책을 읽는 동안 사실 더 진지하게 느껴졌던 것은 백화점 직원들의 일상이었다. 얼마전 한겨레21의 노동OTL에서 봤던 마트 노동자들의 일상이 겹치더라는.

 

올해 이상문학상을 드디어 박민규가 수상했던데 수상 작품집이 살짝 기대된다. 

 

#4. 경제학-철학 수고 (칼 마르크스)

 

 

10대 후반에 읽은 책인지라 잘 생각도 나지 않던 차에 갑자기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 이전에 읽었을 때와의 가장 극명한 차이점은 술술 읽히는 부분이 많아졌지만 철학과 관련한 부분처럼 여전히 안 읽히는 부분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맑스의 넓은 인식과 관심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리고 그가 역사에 남는 인물이 된건 꼼꼼함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정리력과 분석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고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지는 만큼 읽기와 공감하기가 달라지는 것이 새삼스럽기도 했고 맑스의 초고를 스케치북 형태로 맑스가 써 놓은 데로 공간 배치를 해서 보면 그의 생각을 따라가는데 훨씬 효과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언급된 몇 가지 고전들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 그러므로 노동자에게 아주 유리한 사회 상태라 해도 노동자의 필연적인 결과는 초과노동과 때 이른 죽음, 기계로 전락, 노동자에게 위협적으로 축적되는 자본의 노예화, 새로운 경쟁, 노동자 일부의 굶주림 또는 거지가 되는 것이다.

 

- 쇠퇴하는 사회 상태에서는 노동자의 누진적 궁핍, 진보하는 상태에서는 복합적 궁핍, 완성된 상태에서는 정체적 궁핍.

 

- 노동자가 더 많이 생산할수록 노동자는 더 적게 소비해야 한다는 것, 그가 더 많은 가치를 창조할수록 그는 더 무가치해지고 가치가 없어진다는 것, 그의 생산물이 더 정형화될수록 그는 더욱 기형화 된다는 것, 그의 대상이 문명화될수록 그는 더욱 야만화된다는 것, 노동이 더 강력해질수록 노동자는 더욱 무력해진다는 것, 노동이 더 지능적으로 될수록 노동자는 더둑 어리석어지고 자연의 노예가 된다는 것이다.

 

- 소외된 노동은 인간에게서 1. 자연을 소외시키고, 2. 자기 자신, 인간 고유의 활동적 기능, 인간의 생명활동을 소외시킴으로써, 그것은 인간에게서 유를 소외시킨다. 소외된 노동은 인간에게 유적생활을 개인생활의 수단으로 만든다.

 

- 사회주의로서 사회주의는 본질로서의 인간과 자연의 이론적, 실천적, 감각적인 의식에서 출발한다. 현실적 생활이 적극적인, 더는 사유재산의 지양, 공산주의에 의해 매개되지 않는, 인간의 현실인 것처럼 사회주의로서 사회주의는 적극적인, 더는 종교의 지양에 의해 매개되지 않는, 인간의 자기의식이다. 공산주의는 부정의 부정이으로서 긍정이며, 그에 따라 인간 해방과 회복의 현실적인, 임박한 역사 발전을 위한 필수적인 계기이다. 공산주의는 임박한 미래의 필연적인 형태이며 에너지로 충만한 원리이지만, 공산주의는 그 자체로 인간발전의 목표-인간적 사회의 형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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