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10/08/02 21:38
Filed Under 이미지적 인간

최근 몇 편의 흥미로운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것은 난 역시 아트같은 영화보다는 플롯이 탄탄하고 연기가 멋진 영화들을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그때 그때 적어놓지 않아서 기억나는 데로 최근 본 영화 몇 편만.

 

#1. 하녀 (감독 :  김기영, 1960년)

 

임상수가 만든 하녀의 마지막 목매달고 분신하기 장면을 보고나니 60년의 김기영 감독 영화가 보고 싶었다.  21세기의 하녀가 극복 불가능한 신분(?)의 차이에 꿈틀대는 영화라면 1960년의 하녀는 혼자 꿈틀대는 것이 아니라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이다. 후시녹음 된 변사풍의 대사가 어색하고 연기의 디테일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스토리를 끌고가는 힘은 최근의 왠만한 스릴러보다 낫다는 생각이다. 드라마 세트같은 좁은 공간에서 몇 명 되지도 않는 인물이 팔딱 팔딱 살아 숨쉬게 만드는 편집과 음향, 미술의 힘도 멋지더라.

 

 

#2. 밀크 (2008년)

 

역시 숀펜. 그 연기가 모든 걸 말해주는 영화다. 아무리 메소드 연기의 달인이라고 해도 실재했던 사람을 그대로 묘사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아무리 그대로 묘사를 한다고 해도 부족한 부분이 있게 마련이고 영화속의 인물은 또 어쩔 수 없이 현실의 인물과는 다를 수 밖에 없으니 그만큼 연기의 톤을 맞추기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숀펜은 - 내가 하비 밀크라는 실존 인물은 전혀 모름에도 불구하고 - 그를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워낙에 인생사가 영화같았던 사람인지라 자칫 뻔 해질 수 있는 스토리를 연기가 살린 듯.

 

#3. 내 깡패같은 애인 (2010년)

 

난 정유미의 선택을 신뢰하는 편이다. 이 영화 역시 흥행에 망한게 안타까울 정도로 썩 괜찮은 영화였다. 로맨틱 코미디처럼 홍보가 되기는 했는데 비교적 현실의 상황에 대한 디테일이 살아있고 캐릭터도 괜찮고 간혹 웃기기도 하는 영화다. 물론 현실에 대한 디테일이 살아 있다는 것은 흔하디 흔한 88만원 세대의 세상 타령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는 이야기의 뻔함을 한계로 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약간 뻔하고 지루할 수 있는 스토리를 생동감 있게 만든 건 순전히 정유미와 박중훈의 힘이다. 툭툭 내 뱉거나 입 안에서 삼키는 대사의 달인 정유미 덕에 캐릭터가 두 배는 산 것 같았다.

 

#4. 바더마인호프 (2009년)

 

독일 적군파의 바더와 마인호프 그룹을 둘러싼 당시의 활약상을 그대로 담은 영화다. 아나키적이고 자유스러운 그들의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그 시기 그들이 택했던 전술이 보여준 테러의 양상은 너무 폭력적이라 거북했고 다른 문화에 대해 몰이해는 기분이 나빴다. 물론, 그 상황에서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고는 하지만 목적이 옳았다고 방법을 모두 합리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영화속에서 울리케는 ' 하나의 돌을 던지면 범죄지만, 1000개의 돌을 던지면 정치적 행위이다.'라고 이야기했다. 1000개의 돌을 같이 던지기 위해서는 1000명의 사람이 함께 해야 하고 1000개의 돌을 만들어야 하고 왜 돌을 던져야 하는지와 돌을 던지는게 맞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충분히 나눠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가 너무 낭만적인걸까? 영화를 보고 나니 생각이 많아졌다.

 

#5. 이끼 (2010년)

 

배우들의 연기말고는 볼게 없다. 특히 원작의 긴장감이 강우석 특유의 유머코드를 만나면서 많이 희석되었다. 원작의 긴장감을 공고하게 만들어 주던 차곡차곡 쌓아올려진 뒷 이야기들의 플롯이 모두 뭉개지고 쫙 펴지기만 하다보니 원작을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렇지만 유해진의 연기는 두고두고 남을 것 같고, 유선은 연기 인생에서 새로운 국면을 만난 것 같다.

 

#6. 인셉션

 

그렇게 해야만 하는 필연성은 부족하지만 처음의 전제만 별로 따지지 않고 받아들이고 나면 그 다음의 전개는 정말 흥미진진하다. 켜켜이 쌓여진 꿈과 시간의 차이, 그 속의 움직임과 현란한 편집까지. 켜켜이 쌓여진 파이를 바라 보는 것처럼 사람의 머리 속을 층층히 헤집고 다니는 그 구성이 정말 감탄할 만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도대체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와 '정말 재미있다'로 나뉘는 것 같았다. 아마도 플롯의 구조안에 얼마나 빠져들었나가 평가의 관건이 아닌가 한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플롯을 구성하는데는 아무래도 특출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최근에 본 영화중에 몰입도가 가장 높았던 영화였다.

 

#7. 드래곤 길들이기

 

네덜란드 출장이 끝나고 한국으로 들어오는 길에 비행기에서 봤다. 유쾌하고 흥미진진한 애니메이션이었다. 인간이 아닌 생명체와 인간 사이의 편견을 뛰어넘는 교류와 우정은 이미 아바타에서 최고조를 이룬 듯 하지만 아바타보다 밝고 유쾌하니 좋더라. 기내 영화라서 화면이 작았던게 아쉬웠다. 3D에 적응이 안 된 나로서는 3D로 봤으면 어지럽고 정신이 없었겠지만 큰 화면으로 용을 타고 하늘을 나는 장면을 보고 싶다는 바램이 들었다.

 

#8. 하모니

 

뻔하지만 시간 보내기는 좋은 영화. 이것도 기내 영화였는데 스케일이 큰 것도 아니고 소소한 이야기들이 흐르는게 시간도 잘 가니 기내 영화로는 딱이다. 따로 시간 내서 보긴 쫌 아까울 듯. 한국의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 일상적인 폭력에 시달리며 사는지 알게 해주는 그녀들이 사연이 뻔하면서도 불편했다.

 

#9. 방자전

 

아이디어는 참신했는데 플롯은 엉성하고 이야기의 흐름도 별로다. 그냥 춘향전이 훨 나은 듯. 영화의 색감은 약간 정신이 없긴 하지만 제법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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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2 21:38 2010/08/02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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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주일 2010/08/02 2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0(예고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2. 감비 2010/08/03 0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은 주로 어디서 지내시는지? 한번 만나고 싶어서요...ㅎㅎ

    • 해미 2010/08/03 1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찮아도 저도 감비 소식 궁금해 하던중이랍니다. 요즘은 병원일 때문에 대부분 대전에 있어요. 물론 목요일부터는 심심치 않게 서울행이나 다른 지방행이 있기도 하지만요. 보통 월-수 저녁에는 시간이 있으니 미리 연락만 주시면 얼굴 뵐 수 있을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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