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4/11/03 19:02
Filed Under 내 멋대로 살기

어처구니가 없다. '생명을 하늘처럼'여긴다는 풀무원 자본의 행태가 어처구니가 없다. 오늘이 풀무원 파업 120일차다. 어제는 지난 주에 있었던 수서 천막 철거에 대한 집회가 있었다. (역쉬 나는 가지 못했다. 덴장...죄송하당. ㅠㅠ) 풀무원은 내게 매우 의미가 있는 사업장이다. 활동을 재개하고 나서 처음으로 '주무'를 담당하게 되었던 사업장이기 때문이다. 그냥 '조사/연구'나 하고 '검진'이나 하던 내가 집단요양 투쟁의 전술을 짜고 지역 활동가들을 만나고 협상안을 검토하는 등등의 '활동'을 해야 하는 첫 사업장이었다. 산 좋고 물 좋은 가평의 조용한 한 구석을 차지 하고 있는 공장을 찾아갔을 때의 놀람이 여전하다. 동네에서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아주머니들의 선한 눈빛이 안 쓰러울 정도로 그들의 손가락은 휘어 있고, 아픔은 심각했다. 100명도 안되는 조그마한 조합에서 힘들게 일하시던 그 분들은 골병이 들어있었다. 여성 노동자 전원이 근골격계 증상을 호소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 전원이 비정규직이던 사업장이 조합이 생기고, 전부 정규직화되서...그래서 요즈음은 살 만하다는 그네들의 해맑은 미소가 내게는 아픔이 되었다. 쉽지 않은 근골격계 투쟁을 하면서 조합원의 일부가 조합을 탈퇴하고, 공장을 분사하고, 임단협도 진행이 안되고, 수술을 하고도 낫지 않아 다시는 일터에 돌아오지 못했어도 그네들의 미소는 맑았다. 올해 임단협이 진행이 안되고, 직장폐쇄가 되고, 천막이 뜯겨나가고, 파업이 120일이 되어도 여전히 그네들의 미소는 맑다. 경총의 사주를 받은 근로복지공단과 노동부의 횡포에 천막농성투쟁이라두 해야 될거 같다는 얘기에 '당장 달려갈께요. 말씀만하세요'라는 분들이다. 그나마 춘천은 민주노조라도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다. 10개의 풀무원 공장의 미조직 노동자들은 조합이 생기기 이전의 자신들의 '죽을 것 같은' 노동을 여전히 하고 있을 것이라며 걱정이시다. 자본이 노조를 깨겠다고 덤비는 장투 사업장이다. 불매도 연맹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안되고 투쟁기금은 바닥이 났다. 믿는 것은 어깨 걸고 같이 가는 현장의 동지들 뿐이다. 잔업/특근 다해도 100만원 조금 넘을동 말동한 임금을 올려 달라는 것이, 아픈 몸 치료 받을 수 있는 의료비와 자녀 교육을 위한 교육비를 보태 달라는 것이 그리도 어려운 요구인가? 잘 나간다는 '생명을 하늘처럼'여긴다는 풀무원 아닌가? 풀무원...이름 들어간 물건만 보면 울화가 치민다. 그 속에 담겨있는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을 2년간 보아왔다. 그 땀과 눈물이 정말 값진 것이 되기를 바란다. 난...뭘 할 수 있을까?


풀무원 춘천공장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주변의 산들에 둘러싸여 소복이 담겨 있었다. '생명을 하늘처럼'이라는 그들의 광고 문구처럼 그렇게 '자연'에 안겨 있었다. 검진을 하러 간 날 새벽공기는 잠에 지친 내 머리를 깨우기에 충분할 정도로 상쾌하고 깨끗했다. 주변을 정리하고 검진을 준비하는 동안 그 맑은 공기와 밝은 아침 햇살에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그날 검진을 해야 되는 사람은 전체 조합원 100여명 중 절반 가까운 48명이었다. 대부분 여성노동자들이고 그들의 노동이 집안에서 유일한 생계수단의 전부인 사람들이 많았다. 위원장님으로부터 현장의 노동자들이 많이 아파하고 힘들어한다는 걸 들었지만 주변환경과 조용한 분위기는 나에게 긴장감보다는 편안함을 주었다. 아침작업을 시작하기 전 몇 명의 여성동지들이 검진장소를 찾았다. 마치 오래 알고 지낸 동네아줌마들처럼 그녀들과의 수다가 즐겁기까지 했다. 사는 얘기, 노조가 생기고 좋아진 얘기 그리고 어린 의사의 말을 진지하게 듣는 그들의 눈망울이 그 아침의 햇살처럼 맑기만 했다. 하지만, 그들의 상태는 장난이 아니었다. 장시간의 노동과 그런 장시간의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저임금 구조. 그리고 다른 공장을 찾기 힘든 강원에서 그들의 유일한 생계수단일 수밖에 없는 그들의 노동. 그 속에서 그녀들은 골병이 들어 있었다. 생명을 담는 그릇을 표현한다는 풀무원의 로고 속에 면을 담고 두부를 담으면서 손가락은 휘어있었고 손목과 어깨는 아픔을 느끼고 있었다. 어깨가 너무 아파 숟가락을 들지도 못할 지경이고 일을 하고 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지친 몸을 이불 속에 던질 수밖에 없다고들 하였다. 또 다시 아침이 오면 고통에 지친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 다시 노동현장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픔을 인식할 여유조차 주지 않는 그들의 노동과정은 하루의 고된 일과가 끝난 후 다시 다음날 시작되었다. 멈추지 않는 쳇바퀴를 돌다가 다리가 망가져 쓰러져버린 다람쥐가 생각났다. 그들은 더 이상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다. 돈을 벌기 위해서 그 쥐꼬리만한 월급이라도 받기 위해서 기계의 부속품처럼 끊임없이 자신의 팔과 손목과 어깨를 돌리고 허리를 굽혔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이제 병든 몸뚱이 하나 뿐이다. 노동자가 노동할 수 있는 건강한 몸을 잃었다는 것…. 어쩌면 그들에게는 더 이상의 희망이 없을지도 모른다. 쥐꼬리만한 월급이라도 받을 수 있는 노동현장에서 퇴출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희망이 있다. 자신의 몸을 기계처럼 굴려 알음알음 번 돈으로 성장한 자식들. 그리고 그들의 노동조건을 바꿀 수 있는 투쟁을 할 수 있다는 것, 또 함께 할 동지들이 있고 연대하는 동지들이 있다는 것. 그들에게 희망은 그런 것이었다. 수술받은 팔을 목에 매달고도 "계속 투쟁해야지요. 우리에겐 그것 밖에 없어요."라고 얘기하며 해맑은 웃음을 짓던 한 동지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들에게 희망은 그렇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동지들과 현장에서 골병드는 지금의 상황을 바꾸어 내고자 하는 소박한 소망들, 자신 뿐만이 아니라 자기와 친한 친구도 병들어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것이 기계 부속품이 되어 끊임없이 돌아가는 작업라인에 자신의 몸을 맞추고 결국 골병이 들어버린 그들의 희망이다. 그 동지들의 해맑은 웃음과 눈빛이 계속 이어지고 확산되길 바란다. 그들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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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피플 2004/11/04 1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풀무원 자본의 노조에 대한 행태를 바라보면.. 참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듭니다.. 사측의 내부적인 입장 자체가 노조 와해를 위한 파업 장기화전략이라고 하는데... 지치실때도 되었는데..조합원분들의 미소를 보면.. 풀무원 투쟁의
    확고한 결의와 투쟁의 승리가 보일듯 하네요 ^^

  2. 해미 2004/11/04 17: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발...제발...승리할 수 있었음 좋겠습니다. 승리하신다면 개를 잡으시겠다고 하시는디...제가 못 먹지만 기꺼이 먹도록 하겠습니다. 승리하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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