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6/07/27 15:42
Filed Under 내 멋대로 살기

하늘이 뻥 뚫린 듯, 휴가철 내리쬐던 햇살이 수억년전 일인 것처럼 비만 주룩주룩 온다. 이 비 속에서 올여름 나는 또 하나의 죽음을 지켜봤고, 죽을 것 같은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을 봤고, 죽기를 각오하며 싸우는 동지들을 지켜보고 있다. 작년 여름에는 하이텍 농성장에서 지겨울 정도로 비를 맞았는데...

 

#1. 죽다

 

한 선배가 세상을 떠났다. 계곡에서 실종된 후 영정 사진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 형은 내가 '보건의료운동을 하고 싶어요'라며 학생회장이 되고 처음으로 경인의학협을 찾았을 때 집행국이었다. 그렇게 형을 만났고 보건의료운동을 배웠다. 술도 많이 먹고, 얘기도 많이 했던 학창시절이었다.

 

형을 보러 가던날 후배들은 매듭이라는 노동보건현장활동을 가는 날이었고, 나는 거기서 노동자건강권에 대한 교육을 하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교육을 하는 내내 그 형을 만났던 당시의 그리고 그 형과 함께 하던 그 때가 자꾸 겹친다. 몇년이 지난 2006년 나는 우리 후배들 앞에서 교육을 하고 그 선배는 이 세상을 떠났다.

 

작년 가을 그 선배의 짝궁이었던 내 후배가 스스로 삶을 포기했다. 그 때 보았던 그 형의 허망한 눈빛이 그리고 전문의 시험장에서 만났을 때의 모습이 자꾸 생각난다. 사후 세상이 있건 없건 그건 죽어봐야 안다지만... 그냥 그/녀가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2. 죽을것처럼 아픈

 

한 양말공장을 찾았다. 검진을 받은 인원과 대행 계약을 한 인원수가 10여명 이상 차이가 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조그마한 동그란 의자 하나 놓고 하루종일 양말을 포장하던 아주머니들은 얼마전부터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앉아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의자가 편안하면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난리를 치던 관리자는 나를 봐도 쉽게 반가운 척을 안한다.

 

하지만 의자는 여전히 불편했다. 등받이가 있고 높이 조절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의자 다리가 불안정해서 흔들흔들거린다. 에고... 이건 또 몇년이나 걸려 해결이 될른지. 별수 없다. 될때까지 계속 이야기하는 외에...

 

하여간 아주머니들과 상담을 하고 현장순회를 하다가 한 여성노동자를 만났다. 몽고에서 왔다는 그녀는 허리가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가려고 하다가 관리자들이 '의사'가 오니 만나고 가라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걸려 있었다. 이야기를 해보니 몇일전 양말상자를 들다가 허리를 삐끗했는데 참다보니 더 심해진 모양이었다. 한국말을 잘 해 불법체류가 아닐까 싶어 물어보니 그렇다고 한다. 말하기가 힘들 정도로 아파한다. 나를 보더니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관리자에게 얼릉 병원으로 데리고 가라고 했다.

 

사무실로 올라와 관리자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검진인원과 대행인원이 차이가 나는 것은 불법체류 이주노동자 때문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관리자가 난감한 기색이 역력하다. 매우 적기는 하지만 임금체불도 안하고 그나마 검진이라도 받게하고 아프다고 하면 병원이라도 데리고 하는 사업장인지라 그냥 원래 상태대로 계약을 유지하자고 했다.

 

그리고 눈물이 그렁그렁 할 정도로 아파하던 그녀의 이야기를 했다. 당장 병원에 보내시는게 좋을 거다. 만약에 디스크가 심해서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거나 하다면 산재처리를 해주는게 오히려 나을거다. 수술비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거다... 라는 둥의 이야기를 했다. 증상으로봐서는 디스크 손상과 같은 것이라기 보다는 근경련에 가까운 문제인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조만간 사업장에 다시 연락을 해서 상황을 확인해야 겟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오려는 찰나 사업장의 관리자가 양말을 건낸다. 불법체류이주노동자가 있음을 확인한 나한테 주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양말을 받아들고, 다시 그녀의 눈망울이 겹친다. 제발 큰 병이 아니었으면, 무사히 치료받고 조금 쉬고 나면 일을 할 수 있는 상태였으면, 그것때문에 그녀가 해고를 당하거나 강제출국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3. 죽을 각오로 싸우는

 

드디어 몇년전부터 준비하던 구조조정 싸움이 시작되었다. 파업이 길어질 것이 뻔해 휴가때 조합에서 늘 하던 휴양지준비도 하지 않았다. 오늘로 파업 10일차 교섭이 열리는 날이다.

 

신규 아이템 투자를 통해 현재 매출은 유지하겠다는 사측의 전향적인 안이 나왔다. 그 외의 임금과 단협은 동결하자고 한다. 현장의 조합원들은 구체적인게 없다며 결사투쟁을 강조하고 상집들은 휴가를 반납한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그저 원칙대로 조합원들 이야기를 들어가며 묵묵히 싸우고 있었다.

 

날씨가 습해 조합사무실이나 천막에서 자는게 쉽지도 않다. 한 동지는 90일째 안면신경 마비로 아파하고 있는 와이프가 걱정되고 한 동지는 장모님 병간호 때문에 집을 비운 와이프를 대신에 아버지 밥상을 챙겨야 한다. 하루 하루가 지날수록 얼굴도 초췌해진다. 잠도 잘 자지 못한다고 한다.

 

싸우지 않으면 어짜피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지만, 이렇게 고생할때까지 아이템을 주고 쥐락펴락하고 있는 자본놈들이 밉다. 아이템을 가지고 노동조합을 길들이겠다고 덤비는 그 놈들이 정말 밉다.

 

그 와중에서도 언제나 현명하게 조합원들과 호흡하며 파업을 꾸려가고 있는 동지들이 멋있다. 힘들겠지만 결국 한국노동운동역사상 최초로 (아니 어쩌면 세계 최초일지도 모른다) 구조조정 싸움에서 승리하는, '회사가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는 이데올로기를 깨는 순간을 함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함게시판에 붙어 있는 한마디, '함께 살고, 함께 죽는다'...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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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27 15:42 2006/07/27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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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eoScrum 2006/07/27 19: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휴........

  2. dakkwang 2006/07/27 2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글은,함께 살고 함께 죽는다, 는
    짠, 하네요... 저번에 하이텍 언니들 농성장에서는
    '잘 먹고 잘 자자, 잘 먹어야 오래, 잘 싸운다'는 식의 표어가 식단 옆에 붙어있었는데..
    모두들 함께 살기위해 건강챙기시면서 투쟁할 수 있어야 할테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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