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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꽁꽁 얼어붙은 ‘염천교 수제화 거리’ 장인들의 ‘한숨’

양아라 기자 yar@vop.co.kr
발행 2017-12-18 10:02:44
수정 2017-12-18 10: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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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천교 수제화 거리 모습
염천교 수제화 거리 모습ⓒ민중의소리
 

옛 서울 고가도로인 '서울로 7017' 인근에 있는 염천교 수제화 거리가 꽁꽁 얼어붙었다. 겨울바람에 옷 매무새를 만지는 시민들의 발걸음은 분주했고, 바로 옆 가지런히 놓인 수제화에 눈길을 주는 손님들은 보기 드물었다. 하지만 장인들은 가게를 지키며 따뜻한 봄을 기다리고 있다.

'모던보이의 고향'이라고 불리는 염천교 수제화 거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렇다. 이곳은 1925년 일제시대 때 서울역 인근에 피혁창고가 만들어지면서 구두상인들이 모여들며 형성된 공간이다. 광복 후에는 미군들의 군화를 수선해 팔기 시작하면서 자리를 잡았다.

호황기 시절인 1970~1980년대 염천교 수제화가 국내 구두 시장을 주름잡았다. 주로 멋쟁이라면 하나쯤 가지고 있을 법한 번쩍이는 신사화, 숙녀화 등 이른바 '살롱화'가 불티나게 팔렸다. 염천교 수제화 거리는 지역의 명물이 됐다.

어디에나 흥망성쇠의 역사는 있는 법, 1990년대 후반부터 대형 제화업체와 값싼 중국산 제품의 등장, 온라인 쇼핑 등으로 수제화를 찾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염천교 수제화 거리의 명맥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 거리에는 약 50개의 구두 가게와 공장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사람 구경하기 힘들죠" 구두 가게 주인의 한숨

염천교 수제화 거리 가게에 댄스화가 진열된 모습
염천교 수제화 거리 가게에 댄스화가 진열된 모습ⓒ민중의소리

15일 오전 염천교 수제화 거리를 걸어 다니다 형형색색의 '댄스화'가 눈에 들어왔다. ㅂO 제화 사장인 전모(45)씨는 "매일 적자죠. 어쩔 수 없이 버티고 있어요"라고 말하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전 사장은 뜨개질을 하며 손님을 기다리는 무료한 시간을 달래고 있었다.

고가공원 공사로 침체됐던 수제화 거리의 경기는 서울로의 개방 후에도 꽁꽁 얼어붙었다. 그는 가게 안에서 보이는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를 가리키며 "사람보다 자동차를 더 많이 봐요. 여기가 사람이 다니는 길은 아니잖아요"라고 말했다.

고가도로 공사 이후에도 가게 앞 도로인 칠패로가 온종일 정체를 빚으면서 주차를 할 수 없는 곳이 됐다. 상인들은 이전에는 차를 대 놓고 신발을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물건의 하역작업이나 택배를 받기에도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차가 없는 이른 새벽에야 간신히 차를 댈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이제 거의 마지막이지" 장인들의 한숨

수제화를 만드는 공장의 모습
수제화를 만드는 공장의 모습ⓒ민중의소리
수제화 공장에서 장인들이 구두를 만드는 모습
수제화 공장에서 장인들이 구두를 만드는 모습ⓒ민중의소리

상인들의 한숨 섞인 사정을 들은 후 상점들 사이에 있는 지하에 으슥한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그곳으로 들어가 문을 열어보니 가죽 냄새와 본드냄새가 섞인 냄새가 올라왔다. 이후 '탕 탕 탕' 일정한 박자에 맞춰 망치질 소리가 들려왔다. 도매를 전문으로 하는 ㄷO제화의 구두 공장이었다.

"여기 있는 분들이 다 구두 장인이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쑥스러운 듯한 구두 장인은 "다들 기술자지. 여기 30년 넘은 사람들이야"라고 소개했다. 5명의 구두 장인들은 점심 식사를 마치자 마자 작업대로 돌아가 구두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신발 본을 내주는 사람인 패턴사, 재단사, 거기에 맞게 신발 앞 가죽을(가피)를 붙여주는 사람과, 발모양에 맞춰 바닥(저부) 작업으로 나뉘어 일한다.

바쁜 손놀림으로 구두를 만들던 장인들은 "요즘 누가 수제화를 만들려고 하겠어... 구두 만드는 거 배우는 사람은 없지"라고 말하며 못내 아쉬워 했다.

공장에서 일하는 장인들도 일거리가 줄어드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일 자체가 도급제야. 하는 대로 먹는거지. 한 켤레 하면 얼마 먹고. 한달 월급제가 아니고. 요즘에는 일이 없으니까 오후 2~3시에 끝나. 하루 평균 20~30켤레씩 만들어."

"지금은 가면 갈수록 제조업들이 자꾸 죽는 거야. 젊은 사람들은 핸드폰 하나로면 온라인 쇼핑 다 하고 결제도 다 하고. 길거리 매장에 있는 사람들이 점점 죽지. 공장 같은 경우 거래처가 길거리 매장 쪽에 있다보니까 이 사람들이 장사가 안 되니까. 자동적으로 일의 양이 줄 수밖에 없지..."

작업하는 손 사진을 찍어도 되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장인이 "손이 못 생겨서"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다른 장인은 "왜? 금손이지"라고 받아쳤다. 장인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동료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화기애애하게 작업을 이어나갔다.

"수제화를 안 신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신은 사람은 없다"

수제화 만드는 장인이 구두의 하부 작업을 하는 모습.
수제화 만드는 장인이 구두의 하부 작업을 하는 모습.ⓒ민중의소리
온라인 쇼핑을 통해 판매가 되는 수제화의 모습
온라인 쇼핑을 통해 판매가 되는 수제화의 모습ⓒ민중의소리

수제화 거리의 한쪽에서는 변화가 꿈틀거리고 있다. 허름한 간판들 사이로 갓 들어온 새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OO슈즈 김모(35)사장은 15년 동안 수제화 거리에서 장사해온 부모님을 이어받아 같은 장소에서 다른 이름으로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가게를 꾸몄다. 가게의 사정도 전보다는 나아졌다. 기존의 도소매 거래가 아닌 인터넷 블로그에 구두 사진을 올리고, 고객들에게 인터넷 주문을 받고 있다.

그는 "수제화를 안 신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신은 사람은 없다"며 "한 번 사면 계속 주문하는 손님들이 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내피에서부터 외피까지 이태리산 가죽으로 만들어서 가격은 좀 나가지만, 메이커보다는 가격이 덜 나가고, 기성화보다는 발이 편안하다"라고 말했다. 그에겐 수제화에 대해 자부심이 있었고, 그 밑천을 바탕으로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손님들이 차 어디다 댈 때 있습니까?" 상인들의 고충

염천교 수제화 거리 옆 칠패로 도로
염천교 수제화 거리 옆 칠패로 도로ⓒ민중의소리

하지만 수제화 거리 상인들에게는 고충이 있다. 바로 주차장 문제다. 서울역 염천교 상우회 회장인 권기호 ㅁO제화 대표는 "손님들이 차 어디다 댈 때 있습니까?라고 물어보면 얘기를 못 한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여기엔 식당에도 있는 주차공간이 없다, 전체적인 경기도 어려운데, 차까지 못 세우니까 더 어렵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저기 서부역 주차장이 있는데 저기다 박아놓고 여기까지 올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냐"며 "가까운 곳도 올까 말까 한데 저 밑에까지 누가 주차해놓고 오겠냐"라고 하소연했다.

고가공원 개방 후 보행관광객이 늘어날 것이라 기대는 예상을 빗나갔다. 권 대표는 "고가를 막아놓아서 차들이 앞으로 다니는 통에 차량 통행이 많아지다 보니까 손님들이 와서 신발 사가는 손님도 줄어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고가도로로 가던 교통량까지 염천교 옆에 있는 칠패로로 다니다 보니 가게 앞에 잠시라도 차를 댈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고가도로가 없어진 후, 수제화 거리 상인들은 매출 감소라는 직접적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고 말했다.

수제화 거리 바로 길 건너에 있던 서소문공원도 공사가 한창이다. 상인들은 서소문 공원에 있던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세워두고 오던 손님들이 있었다고도 말했다. 상인들은 공사가 끝나면 주차장 문제가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하는 눈치였다.

염천교 수제화 거리는 서울 미래유산에 선정됐다. 권 대표는 "올해 초 서울시가 미래유산으로 선정했지만, 정작 지원해주는 것은 없다. 서울시가 주차장 문제를 해결하고, 수제화의 가치를 지키고 있는 장인들을 위해 수제화 거리를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곳에서 60년 가까이 가게를 했어요" 가게를 지키는 상인들

수제화 거리는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일터이자, 삶의 터전이다. 이곳을 지키며 자신의 '업'이자 '일생'을 바친 사람들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

"아버지 때부터 가게를 시작해서 저까지 이어받고 있어요. 이곳에서 60년 가까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어요" 수제화 가게를 2대째 가업으로 이어오고 있다고 말하는 ㅅO제화 송모씨(45).

"여기 계신 분들은 내년 봄 되면 잘되겠지 생각하면서 버티고 계신 거예요. 제 생각에는 이 정도로 가면 올여름만 되면 가게들이 많이 빠져나갈 거 같아요" 점심을 먹지 않고 난로 곁에 앉아서 손님들 기다리는 송 사장. 먼지 하나 없이 반질반질한 신사화들도 주인을 애타게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결과적으로 도태되는 것 보면 집집마다 특성이 없는 거예요"라고 자조적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를 지키고 계신 분들은 이곳을 잃고 싶지 않은 거예요. 한평생 이곳에서 일한 사람들에겐 소중한 일터니까..."라고 수제화 거리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그러면서 "여기 국민대 학생들도 콜라보(협업)를 하려고 하는데 초기 과정이지만 진행되고 있는 상태라 나아지려고 하는 상황"이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수제화 거리의 사람들은 추운 겨울을 지나 따뜻한 봄을 기대하며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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