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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의 WTO 가입을 상상한다...'우리민족끼리'를 넘어

[인터뷰] 송기호 변호사 "홍준표가 집권해도 끄떡없는 남북관계를 위해"
2018.05.03 13:28:18
 

 

 

 

"국민의 행복은 법치주의에 달려 있다."


프랑스 사상가 몽테스키외가 쓴 <법의 정신> 속 문장이다. 권력자가 자기 내키는 대로 힘을 쓰는 걸 막는 게 법이다. 따돌림 당하는 소수자가 제 권리를 주장하는 근거 역시 합리성에 바탕을 둔 법이다. 따라서 법을 민주적으로 정하고, 공정하게 집행한다면, 시민이 불행할 일은 확 줄어든다.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겪는 다양한 불행 가운데 일부는 분단과 적대 탓이었다. 최근 들어 이 문제가 풀리고 있다. 남과 북의 적대가 완화 조짐이다. 

총을 내려놓고, 욕설을 멈춘 뒤엔 교류가 이뤄진다. 그리고 불거질 문제가 '법치'다. 

 

지난 2004년 12월 개성공단이 처음 가동됐을 때, 겪은 문제가 보여준다. 당시 개성에는 '지적도'가 없었다. 땅의 소유 관계를 기록하는 등기 제도도 없었다.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지적도와 등기부는, 북한 사회주의 체제가 들어서면서 폐기됐다. 한국에선 아주 당연한 토지 소유 개념에 북한에선 없었다. 땅의 크기와 위치, 권리 관계 등을 기록할 필요 자체가 없었던 것.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들은, 그래서 황당한 일을 겪곤 했다. A공장과 B공장의 경계가 어디인지, 건물과 시설에 대한 권리 관계가 어떤지 등을 알 수 없었던 탓이다. 갈등과 충돌이 필연이다. 결국 개성 지역 토지에 대한 '측량'이 이뤄지고, 지적도와 등기부가 작성됐다. 

남과 북 모두에게 낯선 경험이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잦아질 게다. 북한에서도 '장마당' 경제가 깊이 뿌리내렸다. 시장 경제가 싹 텄다는 뜻이다. 경제 제재 속에서도 북한 경제가 살아남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에 남북교류까지 활발해지면, 북한 경제의 시장화는 가속화된다. 

시장에서는 거래가 이뤄진다. 거래란 '내 것'과 '네 것'을 바꾼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소유 관계부터 정리해야 한다. '내 것'과 '네 것'의 경계를 정해야 한다. 또 힘 있는 자가 횡포를 부리는 거래 역시 막아야 한다. 상대를 속이는 거래 역시 막아야 한다. 이런 일들을 가능하게 하는 게 '법치'다.  

게다가 남과 북을 아우르는 한반도 경제가 고립되지 않으려면, 국제 무역 질서도 고려해야 한다. 제도와 문화가 다른 나라를 넘나드는 거래가 가능한 건, 합의된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다른 나라들과 무역을 하려면, 이런 기준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기준을 정하는 게 WTO(세계무역기구)다.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넘어간 나라들이 한결같이 밟았던 길이다. 내부적으론 법치를 강화한다. 공산당(노동당)이 지배하던 나라가 법이 지배하는 나라로 변화한다. 외부적으론 WTO 체제에 편입했다. 중국, 베트남 등이 그랬다. 중국은 2001년에, 베트남은 2007년에 WTO 가입을 했다. 아울러 중국은 내부적으로 의법치국(依法治國. 법에 의거해 나라를 다스림)을 강조한다.  

통상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북한의 WTO 가입 10년 대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박근혜 정부가 갑작스레 중단시킨 개성공단 문제에도 관심이 깊다. <프레시안>에 '송기호의 인권경제'를 연재하며, 법치와 통상의 관계에 대해 다뤘다. 북한, 중국의 법치 시도도 칼럼에서 소개했다. 송 변호사는 서울 송파을 보궐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후보 경선에 참가했으나 탈락했었다. 이후 계획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다. 지난 1일 송 변호사와 나눈 대화를 간추렸다. 

 

 

▲ 송기호 변호사. ⓒ프레시안(최형락)

 

 

북한의 WTO 가입 필요, 네 가지 의미"'우리 민족끼리' 아닌 국제적 보장"

 

프레시안 : 북한의 WTO 가입을 위한 계획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되면, 남북한이 UN에 동시가입한 데 이어, WTO에도 함께 가입하게 된다. 

송기호 : 베트남이 1995년에 WTO 가입을 신청했다. 그리고 2007년에 가입됐다. 12년이 걸렸다. 북한이 WTO에 가입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아주 긴 시간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다. 10년 대계를 세워서 준비하면 된다.  

 

UN 가입이 정치적 인정이라면, WTO 가입은 경제적 인정이다. 북한의 WTO 가입은 단지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다. 북한에 대한 인식이 통합돼 가는 과정이다. 한국 안에서 북한을 보는 다양한 시각, 외국이 북한을 시각이 합쳐지는 것이다.  

아울러 남한과 북한의 무관세 교역이 국제법적으로 승인된다는 뜻이다. 이는 한국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건, 안정적인 남북관계가 유지된다는 이야기다. '우리 민족끼리'가 아닌, 국제적 보장이 이뤄지게 된다.  

북한이 WTO에 가입한다는 건, 북한의 조세 주권을 국제적으로 인정하는 의미가 있다. 무역 관세에 대해 국제 사회에서 논의할 자격을 얻게 된다. 북한이 하나의 주권체라는 걸 인정받는다. 이게 첫 번째 의미다.  

두 번째로는 한국 내부의 낡은 제도를 청산하는 계기라는 의미가 있다. 북한을 주권체로 인정하면, 그래서 교류가 활성화되면, 자연스레 국가보안법은 설 자리를 잃는다. 현실과 맞지 않는, 헌법의 영토 조항도 바뀌게 될 게다.  

세 번째 의미는 북한과 미국 관계의 안정화다. 한국에서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대북 정책이 크게 바뀌었다. 그처럼 미국에서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북 정책이 달라졌다. 북한이 WTO 체제 안에 들어오면, 미국에서 어떤 정권이 들어서건, 기본적인 틀은 유지된다. 하루아침에 북미관계가 달라지는 일은 안 생긴다.  

네 번째 의미는 북한 변화의 계기라는 점이다. 북한이 세계 무역 질서에 제도적으로 들어오면, 내부적으로도 시장화가 가속화된다. 아울러 법치도 강화된다. 이는 인권 개선으로 이어진다. 예컨대 시장경제가 강화되면, 거주이전의 자유를 보장할 수밖에 없다. 자유롭게 돌아다녀야 장사를 할 수 있다.  

실제로 지금 북한은 배급 경제가 아닌 장마당 경제로 운영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핵과 경제 병진 노선을 내세웠다. 그러자면 장마당 경제를 존중해야 한다. 여기에 맞춰서 법치를 강화하는 흐름이 있다. 북한에도 기업소법이 생겼다. 개별 기업이 상품의 가격을 정할 권리가 보장됐다.  

법제정법도 생겼다. 입법 절차를 정한 법이다. 이젠 북한 노동당이 제멋대로 법을 정할 수 없다. 절차에 따라 법이 만들어지게 됐다. '법에 의한 지배'가 이뤄지는 신호다. 

개성공단이 남긴 교훈과 변화 

프레시안 : 2004년 말에 가동된 개성공단은 지난 정부 시절인 2016년 2월에 전면 중단됐다. 2013년에 잠시 중단됐지만, 꾸준히 가동됐다. 개성공단 가동과 중단이 남긴 교훈이 커보인다.  

송기호 : 너무 쉽게 문을 닫을 수 있는 구조였다. 만약 개성이 국제법적으로 규율되는 도시였다면 어땠을까. 설령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함부로 가동을 중단할 수 없었을 게다.  

앞서 북한의 WTO 가입이 필요하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한국이나 미국에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퇴보하지 않는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돌이킬 수 없는 질서, 그건 결국 법치가 보장한다.  

실제로 개성공단 운영 경험을 통해 북한이 많이 변했다.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은 지적도와 등기 제도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북한은 부동산관리법을 제정했고, 그 안에 지적도, 등기 등의 개념이 담겼다. 시장경제를 도입하려면, 소유 관계 개념을 정리해야 한다는 걸 인정한 셈이다.  

이런 경험은 북한 나선시(러시아와 인접한 경제특구. 옛 나진시와 선봉군)로 이어졌다. 

한국의 법제가 그대로 북한에 이식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예컨대 개성공단에서 적용되는 노동법은 한국과 다르다. 남과 북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개성공단을 운영했다. 

"개성공단 재가동, 가능하다" 

프레시안 : 남북관계가 풀리면서 개성공단 재가동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송기호 : 개성공단 재가동, 가능하다고 본다. 현재 UN의 제재가 있지만, 그래도 가능하다. UN이 제재하는 건, 조인트 벤처와 협동조합 형태다. 일종의 합작회사를 막고 있다. 북한이 자본을 대고, 영향력을 행사하면, 기업 활동의 결과가 군사 용도로 쓰일까봐 막는 것이다. 그런데 개성공단에 있는 공장들은 모두 한국 기업들이 독자적으로 투자했다. 금지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개성공단 재가동을 막을 근거가 없다.  

개성공단이 재가동 되면, 종전과 달라져야 할 부분도 많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은 임금을 직접 전달받지 못했었다. 남한 기업이 임금 총액이 북한 중앙 특구 총국을 거쳐서 전달되는 방식이었다. 임금이 노동자에게 직접 전달되는 방식이 옳다. 대신 이 경우, 북한 노동자가 임금으로 생활할 수 있는 규모의 금액이어야 한다. 

"시장과 법치를 통한 인권 개선" 

프레시안 : 시장화에 따라 북한에서 법치가 강화되면, 인권도 개선될 게다. 그렇다면, 북한 인권을 강조했던 보수 진영 역시 남북교류와 북한의 WTO 가입을 지지하는 게 자연스럽다. 

송기호 : 북한에선 '나라가 없으면 개인 인권도 없다'라는 인권관이 여전하다. 집단주의적 인권관이다. 일제 강점기 경험이 이어진 탓이다. 그러니까 개인의 권리에 눈 뜨기 어려웠다. 고위층이던 장성택조차 형사소송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장마당 경제와 법치의 흐름이 이어진다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중국 사례를 보더라도, 시장을 통한 인권 개선 효과가 있으리라고 본다.  

프레시안 : 최근 서울 송파을 보궐선거 더불어민주당 후보 경선에 참가했는데, 탈락했었다. 앞으로 계획이 궁금하다.  

송기호 : 앞서 이야기했듯, 한국에서 어떤 정치적 변화가 있더라도 남북관계는 함부로 돌이킬 수 없도록 유지돼야 한다. 그러자면, 남과 북만의 교류가 아니라 국제법적인 보장이 필요하다. 아울러 한국 안에서도 북한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가로막혀 있었다. 북한 관련 정보와 지식이 지나치게 차단돼 있었다. 학문 사상의 자유 시장에 맡겨야 한다. 이런 주장을 보다 힘 있게 실현하려고, 정치에 도전했다. 지지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계속 송파에 남아서 함께할 것이다. 

 

성현석 기자 mendrami@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교육과 복지, 재벌 문제를 주로 취재했습니다. 복지국가에 관심이 많습니다. <삼성을 생각한다>를 내려고 김용철 변호사의 원고를 정리했습니다. 과학자, 아니면 역사가가 되고 싶었는데, 기자가 됐습니다. 과학자와 역사가의 자세로 기사를 쓰고 싶은데, 갈 길이 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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