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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빈소에 놓인 30대 철거민의 ‘주민등록증 영정’…통곡한 어머니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8/12/08 10:55
  • 수정일
    2018/12/08 10:55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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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아현 2구역 철거민들, 그리고 다가오는 겨울

이승훈 기자 lsh@vop.co.kr
발행 2018-12-07 12:26:10
수정 2018-12-07 1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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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고 박준경 씨의 빈소를 채우고 있는 화환들.
6일 고 박준경 씨의 빈소를 채우고 있는 화환들.ⓒ민중의소리
 
 

“영정 사진 구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강제집행 때 사진을 들고 나오지 못해서…” (전국철거민연합 관계자, 故 박준경 씨 빈소에서)

6일 오후, 故 박준경(37) 씨의 빈소를 찾았다. 고인의 명복을 빌기 위해 분향소 앞에 섰는데, 그의 얼굴이 그려진 영정사진이 어딘가 낯설어 보였다. 장례식장을 찾으면 볼 수 있었던 고인의 활짝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무덤덤한 얼굴의 영정사진은 어딘가 오래된 사진처럼 빛이 바래 있었다. 

사연은 이랬다. 

빈소는 전날 밤늦게 서울 서대문구 동신병원 지하에 차려졌다. 유가족이 경찰로부터 시신을 인도받고 난 뒤 빈소가 차려졌다. 빈민해방실천연대와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등으로 대책위도 급하게 꾸려졌다. 

그런데 빈소 분향소에 놓을 사진이 없었다. 남은 사람들이 구할 수 있었던 박 씨의 사진이라고는, 주민등록증에 프린트 된 증명사진뿐이었다. 동절기를 앞둔 지난 11월30일 강제집행이 들어올 때, 박준경 씨가 자신이 살던 집에서 갖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빨간 점퍼와 지갑, 노트, 휴대폰이 전부였다. 이 주민등록증은 박준경 씨가 한강에서 발견됐을 때 소지하고 있던 지갑에서 발견됐다.

“주민등록증에 있는 사진을 핸드폰으로 찍었어요. 그런데 빛 반사 때문에 얼굴이 제대로 찍히질 않는 거예요. 지금 영정 사진은 사진관 아저씨가 다시 그리다시피 여기저기 만져서 완성해준 겁니다.” 

유족과 대책위는 이 사진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물에 빠지고 오래되기까지 한 주민등록증을 다시 핸드폰으로 찍어 영정사진으로 만들었으니, 빛바랜 사진처럼 보이는 게 당연했다. ‘주민등록증 영정’은 그렇게 낯설게 분향소 액자를 채우고 있었다. 

고 박준경 씨가 10년 가까이 살았던 집.
고 박준경 씨가 10년 가까이 살았던 집.ⓒ민중의소리

“엄마 가슴은 이렇게 아픈데, 네 얼굴은 왜 이리도 편하니” 

고인은 10년 넘게 서울 마포구 아현동에서 살아온 ‘아현동 주민’이다. 그런데 재건축 사업이 진행되면서 살던 집에서 쫓겨났다. 세입자였던 그에게 조합은 나가라는 말 뿐이었다.

서울특별시 마포구 아현동 572-55번지. 그가 어머니(60)와 10년 넘게 살았던 반지하 집이다. 지금은 감옥처럼, 모든 창문과 입구엔 쇠창살이 쳐져 있다. 살던 주민들이 다시는 들어갈 수 없도록 막아놓은 쇠창살이다. 6일 이곳을 찾았을 때, 준경 씨가 살던 집안은 밝은 대낮인에도 어두워 잘 보이질 않았다. 집 주변엔 그의 죽음을 애도라도 하듯 노랗고 파란 연꽃등이 달려 있었다.

올해 8월 말, 처음 강제집행이 들어왔다. 철거민들이 힘을 합쳐 집행을 막아냈다. 9월 초에 진행된 두 번째 집행은 기습적이었다. 어떤 대비도 못하고 있던 준경 씨와 어머니는 그날로 10년 가량 살아왔던 집에서 쫓겨났다.  

그때부터 모자는 임시방편으로 건너편 집 방을 빌려 지냈다. 그러다 너무 협소해 어머니는 다른 철거민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11월 30일, 준경 씨가 혼자 머무르고 있던 방마저 강제집행을 당했다. 

집에서 쫓겨난 그는 2~3일 간 거리를 전전했다. 그러다 한강 다리 근처에 2G 휴대폰과 가방, 유서만 남긴 채 홀연히 사라졌다. 

항상 어머니의 안위를 걱정했던 그였다. 매일 연락을 했던 그가 어머니에게 하루 동안 연락이 없었다. 어머니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때쯤인 3일, 마포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한강변에서 박 씨의 유서와 유품을 발견했다는 전화였다.  

다음 날 한강에서 시신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아들임을 확인하곤 통곡했다.

함께 있었던 대책위 관계자는 말했다. “얼굴이 너무나 편안해 보였어요. 아들을 본 어머니도 그 말을 했어요. ‘엄마는 가슴이 이렇게 아픈데, 너는 얼굴이 왜 이리도 편하니…’ 그러면서 많이 우셨어요.” 

평소 사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숨을 멈춘 그의 얼굴이 편안해 보였던 걸까.

그는 마지막까지 어머니를 걱정했다. 그의 유서는,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세상에 보내는 ‘마지막 탄원서’였다. 남겨진 어머니와 철거민들이 자신과 같은 선택을 하지 않도록 도와달라는 탄원이었다.

남겨진 어머니의 통곡 “무슨 소용이냐, 나가라” 

“저는 이렇게 가더라도 저희 어머니께는 임대아파트를 드려서 저와 같이 되지 않게 해주세요. 어머니께 힘이 되어 드려야 했는데, 항상 짐이 되어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그가 남긴 마지막 편지의 한 대목이다. 

준경 씨의 유서를 봤는지, 5일 밤늦게 빈소를 찾아온 구청장은 그의 어머니에게 “임대아파트를 마련해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어머니는 분통을 터뜨리며 이같이 말했다고 한다.

“내가 임대아파트를 원한 건, ‘아들과 함께’ 맘 편히 누울 수 있는 집에 살고 싶어서였다. 이젠 아들이 없는데, 임대아파트가 무슨 소용이냐. 다 필요 없다. 나가라.”

이 상황을 전해준 대책위 관계자는 “내 몸 하나 누울 곳이 없다는 게 얼마나 큰 자괴감이 드는 일인지 아느냐”고 기자에게 물었다. 이어 그는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세입자라는 이유로, 아무런 보상도 없이 수년 간 살았던 곳에서 나가라면 나가야 한다. 들어와서 살 때보다 4배 가량 높아진 전월세를 낼 돈이 없으니 재정착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나가지 못하고 있으면, 그 자체가 불법이라고, 용역을 동원해서 내쫓는다. 이게 한국이란 나라다.”

시장이, 정권이, 정책이 바뀌어도 여전히 민간 주도의 재개발은 추진되고 있었다.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 그곳에선 철거용역들과 원주민들이 밤낮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갈 곳 없다”는 원주민을 끌어내기 위해 온갖 방법이 동원되는 그런 ‘지옥’이었다.  

이광남 씨가 거주하고 있는 재개발 구역.
이광남 씨가 거주하고 있는 재개발 구역.ⓒ민중의소리
강제집행의 흔적
강제집행의 흔적ⓒ민중의소리

“밤마다 옥상에선 ‘쿵쿵’ 소리가 나요” 

이날 마포구 아현 2구역에서 준경 씨와 함께 투쟁해온 이광남(50) 씨를 만났다. 이 씨의 집은 준경 씨가 살던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었다. 

이 씨의 집은 이곳 재개발 구역에서 몇 채 안 남은 집 중 하나다. 재개발조합 측은 12월 동절기를 앞두고 11월1일, 11월28일 강제집행을 몰아쳤다. 올해 7월 개정된 ‘서울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조례’에 따라, 12월 1일부터 2월말까지 동절기엔 ‘철거 및 퇴거행위’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절기 전에 어떻게든 원주민들을 끄집어내기 위한 작전이 진행된 것이다.

당시 원주민과 철거용역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는, 곳곳에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창문은 남아난 게 없어 포장용 에어캡 등으로 막아놨고, 방 안 곳곳엔 뜯어진 문짝과 소화기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골목엔 온갖 생필품들이 나뒹굴고 있어 발 디딜 곳이 없었다. 집으로 들어가는 곳만 그가 쓸었는지 새로운 길이 나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거동이 불편한 80세 노모와 살고 있었다. 그의 집 옥상엔 철거 용역들이 항시 대기하며 살다시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밤마다 천장에선 ‘쿵쿵’ 소리가 들려 쉽사리 잠을 이룰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구청 측에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청했다. 

살던 집에서 나가지 못하고 버틸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이 씨는 “저희가 바라는 건, 최소한 제가 살고 있는 조건을 유지시켜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여전히 자행되는 비인간적 강제집행에 대해 토로했다. 그는 “조합 측에선 차라리 (강제집행 규제)조례를 어겨서라도 강제집행을 하고 벌금을 물겠다는 식”이라며, “11월 강제집행 당시 조합 측은 구청·시청 관계자와 인권지킴이도 오기 전에 강제집행을 밀어붙였다”고 전했다.

그는 다시 준경 씨의 빈소에 가봐야겠다며 집을 나서며 말했다.

“재개발은 주거환경과 도시경관을 재정비하는 공공사업입니다. 그런데 민간주도로 추진돼요. 철거용역들이 동원되고, 온갖 비인간적인 일들이 벌어집니다. 요즘도 사람을 쫓아내기 위해 똥물을 뿌리고, 소화기를 뿌리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어요.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시청과 구청은 사실상 묵인·방조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제발 대책이 마련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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