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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새로운 길, 대화 넓히는 길이기를

[기고] 트럼프만 바라보는 길, 그리고 새로운 길
2019.01.04 12:00:40
 

 

 

 

2018년 한 해 동안 북한을 둘러싸고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 변화를 통해 1945년 이래의 남북 간 긴장을 벗어나 '한반도 평화'를 이룰 희망이 크게 일어났다. 이 방향의 변화는 2019년에도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가 어떤 방식으로 일어날지는 지금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2018년의 변화가 북한의 주동으로 일어난 것이고 남한, 미국, 중국 등 어느 다른 주체도 향후의 변화에 더 주동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음을 생각하면, 2019년의 변화도 일단 북한의 선택에 따라 기본방향이 잡힐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그래서 김정은의 신년사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비핵화와 대화 의지를 적극 확인했다. 작년 신년사 이래의 자세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작지만 눈길을 끄는 표현 하나가 새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미국이 제재와 압박의 자세를 버리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이 부득불" 새로운 길을 찾겠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부득불 찾아야 하는 길이라면 원래 가려던 길보다는 덜 좋은 길이라는 뜻이다. 이득을 추구하는 길이라면 갑에게 덜 좋은 길이 을에게 더 좋은 길일 수도 있는 것이지만 평화를 추구하는 일에서 덜 좋은 길이라면 관계자 누구에게도 좋지 못한 길이 되기 쉽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 끼어 있는 한국에게는 덜 좋은 길 될 것이 확실하다. 미국도 더 성의를 보이고 북한도 그에 만족해서 "새로운 길" 찾을 필요가 없게 되기 바라지만, 그 길이 어떤 길일지 살펴서 대비할 필요도 있다. 
 
얼마 전 홍석현의 <한반도 평화 오디세이> 독후감에서 북한이 먼저 양보하라는 "프런트 로딩" 제안에 이견을 제시했다. 그 제안은 미국이 한반도 평화를 원하는 '선의'를 가졌다는 전제 위에 세워진 것이다. 그 전제가 너무 순진한 것이라고 내가 생각하는 까닭은 1945년 9월의 한반도 분단점령 이래 미국의 국가정책이 한반도 평화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설정된 적이 없었고, 지금도 한반도 평화 증진이 미국의 국익에 저촉되는 측면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 정책이 한반도의 분단건국을 유도한 경위는 <해방일기>(10권, 너머북스)에서 중시한 줄거리였고, 1990년대 공산권 붕괴 후에도 북한의 개방을 미국이 봉쇄한 경위는 <냉전 이후>(서해문집)에서 다룬 바 있다. 2차 대전 후 세계 패권을 구가한 미국에게 지속적으로 적극적 관리가 필요한 지역이 세 곳이었다. 근대산업의 본거지 유럽, 석유가 걸려있는 중동, 그리고 가장 큰 발전의 잠재력을 가진 동아시아였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의 발전이 1980년대 이래 크게 실현되면서 중요성이 커졌고, 북한의 고립과 그에 따른 긴장의 유지가 미국의 국익에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 
 
미국의 국력과 영향력이 쇠퇴해 가는 지금 상황에서 '북핵 위협'은 경제적-군사적-외교적으로 미국의 위상 유지에 요긴한 역할을 맡고 있다. 한반도 평화가 이뤄져 북한의 장벽이 해소된다면 동아시아 지역경제의 한 단계 큰 발전이 가능하게 되고 상대적으로 얻을 이득이 적은 미국은 더 초라한 입장으로 몰릴 것이다. 일본 등 동맹국에 대한 영향력도 줄어든다. '대서양 시대'를 이은 '태평양 시대'가 이제부터 '유라시아 시대'로 바뀔 수 있다.
 
북한이 미국과 대화를 원하는 까닭은 북한 개방과 한반도 평화를 가로막는 긴장의 열쇠를 미국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열쇠를 풀어줄 생각이 없는 미국에게 대화를 강요하기 위해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 것이다. 1990년대의 제네바협정 파기 이래 북한을 무시해 온 미국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앞에서는 대화에 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믿기 때문에 핵무기 완성을 선언하고 이제부터 경제에 집중하겠다는 장담을 하는 것이다.
 
200여 년간 본토 침공을 당해본 적 없는 미국이 이제 ICBM을 갖춘 자기네를 더 이상 무시하고 적대하기만 할 수는 없으리라는 북한의 판단에는 합리적 타당성이 있다. 미국의 정책 결정이 합리적 방식으로 이뤄지기만 한다면 미국의 봉쇄를 풀려는 북한의 의도가 이뤄질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은 '미치광이 이론(mad man's theory)' 같은 자해적 정책도 취할 수 있는 나라다. 게다가 트럼프 정권의 불안정성 때문에 대화의 성과가 실현될 것을 마음 놓고 기대할 수도 없는 형편이다. 
 
그래서 "새로운 길"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플랜-B다. 미국과 선의에 입각한 대화를 통해 봉쇄와 제재를 푸는 길이 열리지 않는다면 미국이 원하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자기네 목표를 이룰 길을 찾겠다는 것이다. 어떤 길이 가능할까? 
 
두 가지 길을 상정할 수 있다. 하나는 무력시위를 강화하는 강경책이다.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2017년에 북한은 괌도의 동서남북에 미사일을 쏘아 보내겠다는 위협을 한 일이 있고, 실제 발사 실험은 그 수준을 넘어섰다. 그 위협이 없었다면 2018년 북한의 대화 요구를 미국이 계속 무시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제 그 수준 이상의 시위를 강행해서 미국 국민이 위험을 더 확실히 느끼게 함으로써 미국 정부의 태도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은 미국 정부의 태도를 바꾼다는 작은 목표를 얻는 데 도움이 되더라도 한반도 평화를 이루고 국제사회에 진입한다는 큰 목표에 저촉되는 문제가 있다. 대화 노력을 쉽게 포기하고 무력시위로 돌아간다면 미국이 북한을 고립시키기 위해 씌워온 호전적 프레임에 스스로 맞추는 결과가 된다. 그보다는 유화책을 강화하는 편이 더 매력적인 선택으로 보인다.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는데, 미국이 움직이지 않으면 어디에다 유화책을 쓸 수 있는가?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은 미국의 헤게모니가 굳건하던 시절의 습관 때문이다. 세계정세도 달라지고 미국 사정도 달라졌다. 
 
미국 사정부터 보자. 미국 정치에는 안보와 외교, 특히 안보 문제에 대한 대통령의 결정권을 존중하는 전통이 있다. 클린턴이 섹스스캔들로 탄핵 위기에 처했을 때 유고슬라비아 폭격을 명령하자 공화당 의회 지도자들은 분통을 터뜨리면서도 탄핵 절차를 보류한 일이 있다. 그런데 트럼프의 막가파 스타일로 인해 이 전통이 뒤집히고 있다. 북한과의 대화에 설령 트럼프가 성의를 보인다 해도 의회를 설득하는 일은 별도로 남는다. 오히려 ABT(Anything But Trump) 역풍의 위험도 있다. 
 
세계정세는 어떠한가. 북한 제재의 주축인 유엔의 분위기가 많이 변했다. 미국 땅에 본부를 두고 만들어질 때부터 유엔은 미국의 노리개 노릇, 무기 노릇을 많이 해왔다. 1960년대 제3세계의 진출로 형편이 조금 달라지기는 했어도 유엔이 미국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소련에게 책임을 미룰 수 없게 된 공산권 붕괴 이후에는 미국이 일으키는 문제들이 그대로 드러나게 되었고, 특히 기후협약 탈퇴 등 트럼프의 "America First!" 정책이 많은 회원국들의 불만과 불신을 키워왔다. 
 
2018년에 김정은의 대화 상대는 누구누구였나? 한국과 중국, 러시아는 한반도 평화와 북한 개방을 애초부터 지지하는 입장이다. 서로 다른 입장을 조율하기 위한 진짜 대화의 상대는 미국 하나였다. 미국에서도 행정부 수반인 트럼프 한 사람이었다.
 
이제 미국을 상대하더라도 트럼프 하나에 매달릴 때가 아니다. 연방정부 셧다운 사태가 보여주는 것처럼 트럼프는 이제 행정부조차 이끌어가기 어려운 단계에 와있다. 미국 언론과 정계를 상대로 대화의 폭을 넓힐 때가 되었다. 2018년이 지나가는 동안 김정은 외에도 밖에 얼굴을 알린 사람이 여럿 나타났다. 외부와의 접촉면을 늘리는 데 쓰일 수 있는 자원이다.
 
미국 외의 대화 상대도 찾아 나설 수 있다. "세계평화를 위한 비핵화"를 주제로 북한이 진지한 대화에 나선다면 흔쾌히 호응할 상대들이 있다. 교황의 북한 방문 이야기가 나와 있는데, 이 방문이 이뤄진다면 북한 비핵화 논의가 세계평화의 보편적 기준에 접근할 계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유럽연합이 요즘 어수선한 형편이기는 하지만 유럽국들은 역시 평화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투철한 편이다. 독일을 비롯해 정치 상황이 안정되어 있는 국가의 지도자들은 북한과 대화를 통해 비핵화에 공헌할 기회가 있다면 반갑게 받아들일 것이다.
 
북한이 국제사회로 나오는 길목에서 또 하나 중시할 상대는 아세안(ASEAN)이다. 비동맹 전통을 가진 아세안 국가들은 북한의 비핵화에 따른 새로운 국제질서에 적합한 외교노선을 갖추고 있으며 개방 후 북한의 중요한 경쟁과 협력 상대가 될 경제적 조건을 가진 나라들이다. 그중에는 북한과 접촉을 많이 가졌던 나라들도 있다. 
 
20년 전 미국의 제네바협정 파기로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추방될 때와는 세계정세도 달라지고 미국 사정도 달라졌다. 정치가의 자격이 없는 트럼프 같은 인물에게 백악관을 맡기게 된 것은 미국민이 만족할 만한 국가 전망을 주류 정치계가 더 이상 보여줄 수 없게 된 막장 현상이라고 나는 본다. 스스로 빚어놓은 한반도 문제를 결자해지할 능력이 없는 나라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 
 
국제사회는 미국의 지도력-지배력-영향력이 줄어드는 상황에 적응해 가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이 변화에 앞장서서 다자간 구조의 새로운 질서를 빚어가고 있다. 20년 전에는 미국이 지목하는 대로 "불량국가(rogue state)"도 되고 "악의 축(axis of evil)"도 되었지만 지금은 미국 자신이 그런 호칭을 모면하기 바쁘다. 미국의 동의 없이라도 유엔 제재 해제를 바라보는 것이 북한의 "새로운 길"이 되기 바란다. 북한 개방을 위한 열쇠를 이제 미국만이 쥐고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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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40세 나이에 교수직을 그만둔 후 20여 년간 독학으로 문명교섭사를 공부해 온 역사학자. 서울대학교 이공계 수석 입학 뒤 사학과로 전과한 독특한 이력이 있다. 프레시안 장기 연재를 바탕으로 <해방일기>, <뉴라이트 비판>, <페리스코프>,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등의 책을 썼다. 프레시안 창간 때부터 거시적 관점에서 역사와 한국 사회를 조망하는 글을 꾸준히 쓰고 있다. <역사 앞에서>의 저자 김성칠 교수가 부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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