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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넷플릭스, 한 지붕 두 가족의 윈윈?

지상파, 제작비 확보-SKT, 콘텐츠 무기로 해외진출…방송통신 연합의 첫 사례송창한 기자 | 승인 2019.01.08 08:49
 

[미디어스 송창한 기자] '우물 안 개구리', 국내 지상파 방송3사·이동통신3사와 무관하지 않은 이야기다. 지상파는 다매체 시대의 도래와 글로벌 콘텐츠 기업의 등장으로 국내 위상이 꺾였으며 이통사는 국내 가입자를 놓고 벌이는 경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대안으로 MVNO 해외진출이 추진됐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최근 지상파 방송3사와 SK텔레콤이 '푹(POOQ)'과 '옥수수'를 합쳐 통합법인을 만들기로 하면서 이전에 없었던 '토종'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연합이 구축됐다. 사실상 경쟁관계였던 두 사업주체가 연합을 통해 '우물 안'을 탈피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방송통신 융합이라는 흐름에서 두 사업주체가 한 살림을 차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3일 오후 한국방송회관에서는 KBS·MBC·SBS 등 지상파 방송 3사와 SK텔레콤 간 플랫폼 공동사업 양해각서(MOU) 체결식이 열렸다. (왼쪽부터) 최승호 MBC 사장, 양승동 KBS 사장,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박정훈 SBS 사장. (사진=MBC)

KBS·MBC·SBS와 SK텔레콤은 지난 3일 OTT 공동사업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세계 최대 OTT 넷플릭스가 한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가운데 이른바 'K콘텐츠'를 무기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해외 시장에서 경쟁을 펼쳐보겠다는 것이다. 

조만간 출범하게 될 통합 OTT는 방송사의 콘텐츠 제작능력과 통신사의 콘텐츠 유통 기술 융합으로, 국내에서는 전례가 없었다. 이들은 국내외 자본유치를 통해 자금을 콘텐츠 제작비에 우선 투입하겠다는 계획이다. 

당장 지상파는 큰 규모의 콘텐츠 제작비를 수급 받을 것으로 보여 광고매출 하락-제작비 감소-콘텐츠 질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지 관심이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은 통합 법인이 출범하면 초기비용으로 약 2000억 원의 자금이 콘텐츠 제작비로 투입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상파의 한 해 제작비가 1조 수준(2017년 기준)인 걸 감안하면 전체 제작비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OTT의 경쟁력은 콘텐츠에서 나온다. 넷플릭스의 경우 전체 매출의 70~80%를 제작비로 지출해 가입자 수를 늘려가는 공격적 투자 전략을 펼치고 있다. 당연하게도 제작비는 콘텐츠 수주 과정에서부터 영향을 미친다. 일례로 지난해 방송된 '미스터 션샤인'의 경우 기획 초기 단계부터 SBS가 편성을 강력하게 희망했으나 제작비 문제로 결국 tvN으로 넘어갔다. 당시 예상되던 제작비는 300억 원, 실제 '미스터 션샤인'의 제작비는 400억 원을 넘었다. 스타작가와 톱스타가 참여했지만 제작비 회수를 장담할 수 없다는 판단 하에 SBS가 손을 뗀 것이다. 

반면 CJ ENM은 '미스터 션샤인'의 해외 판권을 넷플릭스에 판매하면서 제작비의 상당부분(약 300억 원 추정)을 회수했다. 국내 콘텐츠 시장이 넷플릭스에 종속될 수 있다는 우려로 넷플릭스에 프로그램을 공급하지 않기로 한 지상파 입장에서는 고려될 수 없는 선택지였다. 콘텐츠사업자이자 플랫폼사업자인 지상파의 입장에서는 글로벌 기업의 종속을 피하고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제작비 경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로 판단된다. 

SK텔레콤 OTT '옥수수'와 지상파 3사 OTT '푹(POOQ)' 로고

이통사인 SK텔레콤은 '콘텐츠'를 무기로 해외진출을 시도해 볼 수 있게 됐다. 이통3사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국내 통신 산업은 먹고 먹히는 '치킨게임'이 된 지 오래다. 새로운 시장을 찾아 해외진출을 시도해왔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SK텔레콤은 통합 OTT 이전부터 SK브로드밴드 자체 OTT '옥수수'를 통해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해외진출을 꾀해왔다. 특히 지난해에는 자체 콘텐츠 투자를 늘려 '오리지널 콘텐츠'를 통해 해외에 진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통신사로서 OTT가, 방송사들이 만든 '푹'이 더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걸 봤다"는 박정호 사장의 말처럼 국내외 성장을 담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박정호 사장은 이번 MOU를 체결하며 "한국이 반도체만 잘 만들겠냐"라고 언급했다. 또한 그는 "(SK하이닉스를) 다운사이클에 투자해 업사이클에서 돈을 벌고, 우리나라 먹거리 산업으로 되는 것을 직접 실천한 경험이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반도체만이 아니라 콘텐츠 역량도 강하다"고 말했다. 

현재 통합 OTT의 지분 구도는 지상파 70%, SK텔레콤 30%로 알려졌다. SK텔레콤이 향후 가입자 수 확대에 따른 추가 지분을 확보할 가능성 역시 열려있다. SK텔레콤이 통합 OTT에 대한 지배력을 공고히 하지 못한다면 향후 SK그룹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불투명해질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OTT에 대한 국내 규제 논의는 걸음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또한 국외 사업자인 넷플릭스 규제 여부로 역차별 문제가 핵심이다. 현재 OTT는 방송법이 아닌 전기통신사업법의 적용을 받아 '부가통신사업자'로서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시장 진입, 방송 내용, 광고 등의 규제에서 자유롭다. 방송사업자는 공공성, 공정성 등의 규제를 받는 반면 OTT는 이용자 신고가 있는 경우에만 심의를 받는 실정으로 사실상 규제가 없다.

송창한 기자  sch696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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