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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불탄 농장의 소 울음과 눈물 삼키는 주인 “울면 뭐해”

대형 산불 피해 본 강원도 고성군, 불길은 잡혔지만..막막한 주민들

이승훈 기자 lsh@vop.co.kr
발행 2019-04-06 07:43:31
수정 2019-04-06 07: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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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때문에 불타버린 강원도 고성군 용촌1리
산불 때문에 불타버린 강원도 고성군 용촌1리ⓒ민중의소리
 
 

“여기서 죽겠구나 싶었어. 앞에 차에 불이 붙고, 불붙은 트럭이 나뒹굴고, 버스 바퀴에도 불붙어서 수학여행 온 학생들 대피하고 난리가 아니었어.”

강원도 속초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난 택시기사 조성근(63) 씨의 말이다. 속초시에 산불이 완전히 진압되고 난 뒤인 5일 오후 5시30분경, 조 씨는 기자를 태우고 산불 피해가 가장 심했던 곳으로 이동하면서 전날 자신이 겪은 일을 생생하게 쏟아냈다. 속초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았다는 그는, 격양된 어조로 “평생 이런 산불은 처음”이라고 혀를 찼다. 

산불로 불타버린 강원도 고성군 용촌1리
산불로 불타버린 강원도 고성군 용촌1리ⓒ민중의소리

비명에 가까운 소 울음소리 
새까맣게 그을려 힘없이 앉아있는 백구 
폐허가 되어버린 용촌 1리 마을
 

택시기사 조 씨는 전날 밤 8시10분경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군인을 태우고, ‘공현진항’ 근처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산불과 마주쳤다. 산불이 발생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빨리 해안가 쪽으로 내려올 줄 몰랐다고 말했다. 

“공현진까지 왕복 해봐야 20분밖에 안 걸리거든. 그런데 갔다 오니까, 이미 불이 도로변까지 넘어 온 거야. 거기 도로에 갇혀서 죽는 줄만 알았어. 앞은 연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 보이지. 차는 막혀서 도무지 앞으로 안 가지. 앞차는 불이 붙었지…그나마 매일 다녀본 길이라서 겨우겨우 빠져나왔어. 산불이 그렇게 무서운 줄 처음 알았다니까.” 

실제로 그가 전날 공포를 느꼈던 강원 고성군 용촌1리 근처 도로변에 다다르자, 전소된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로변에 위치한 4층짜리 ‘영동극동방송’ 건물은 새까맣게 불타 있었고, 용촌1리에 다다르자 탄 냄새가 코를 찔렀다. 도로변 주택들은 대부분 시멘트로 된 기둥과 벽만 남기고 폐허가 돼 있었다. 곳곳에, 불타 앙상한 뼈대만 남은 차량들이 보였다. 불탄 차량의 배터리가 녹았는지 수은처럼 보이는 물질이 피처럼 흘러나와 굳어 있기도 했다.

완전히 전소된 영동극동방송 건물
완전히 전소된 영동극동방송 건물ⓒ민중의소리
산불로 불타버린 강원도 고성군 용촌1리
산불로 불타버린 강원도 고성군 용촌1리ⓒ민중의소리

마을 안쪽은 더욱 심각했다. 산불은 산등성이를 타고 마을을 덮쳤다. 마을사람들에 따르면, 전날 바람은 가만히 서 있는 차량을 좌우로 흔들 정도였다고 한다. 산불은 천천히 옮겨 붙은 게 아니라, 커다란 불똥이 날아와 마을을 덮쳤다고 한다. 그렇게 태워버린 집이 30여 채가 넘는다고 용촌1리 마을사람들은 말했다. 

산등성이 바로 밑에 위치한 교회는 불길이 할퀴고 지나간 듯 한쪽만 까맣게 그을린 채 였다. 그렇지만 교회 다음부터 위치한 주택들은 완전히 전소돼 벽돌까지 무너져 있었다. 불타버린 집 앞엔, 온 몸에 그을음을 뒤집어 써 흰 털이 회색털이 되어버린 백구가 힘없이 앉아 있었다. 다리를 다쳤는지,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를 고수했다. 

또 어디선가 비명소리에 가까운 소 울음소리가 여러 차례 들리기도 했다.

그을음을 온 몸에 뒤집어 쓴 강아지
그을음을 온 몸에 뒤집어 쓴 강아지ⓒ민중의소리
산불로 불타버린 강원도 고성군 용촌1리
산불로 불타버린 강원도 고성군 용촌1리ⓒ민중의소리

농장을 잃은 60대 농장주의 허탈한 웃음 
“울면 뭐해. 웃어야지. 먹어야지. 살아야지”
 

완전히 불타버린 농장 앞에서 60대 농장주를 만났다. 그나마 그에게 다행인 것은 그의 붉은 벽돌집은 불타지 않았다는 것이다. 집 앞 농장과 주변 주택들은 모두 불타 무너졌지만, 용케 그의 집은 멀쩡했다. 

“마을회관에서 피신하라고 방송하고 난리였어. 어제 마을사람들 모두 피신했었어. 그러고 돌아왔는데, 우리 집은 타지 않았더라고.” 

하지만 그가 키우던 6마리의 소 중 2마리가 죽었다고 했다. 살아남은 소조차 온전하지 못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남아있는 소들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고, 등이 모두 까지고 그을렸다고 했다. “살아 있는 게 살아있는 게 아니”라고 그는 말했다. “살아남은 소에게 줄 먹이도 모두 불타버렸다”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통스러워 했다. 

기자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안부를 묻는 지인의 전화였다. 그는 지인의 걱정에 ‘허허’ 웃으며 “살아있는 게 다행이지”라고 애써 밝게 답했다.

“울어서 소용 있어? 웃어야지. (밥) 다 먹었지, 먹어야 살지. 안 먹으면 죽는데. 에이 전화만 해줘도 얼마나 고마운데. 고마워. 고마워.” 

그렇게 그가 통화를 하는 동안에도, 소의 울음소리가 몇 차례 더 들려왔다. 고통에 겨워 내는 소리 같았다. 차마 소의 상태를 확인하러 갈 순 없었다. 지인과 통화하며 웃었지만, 그의 눈은 퉁퉁 부어 있었고, 언제라도 눈물을 흘릴 것처럼 가득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그에게 조심스럽게 성(姓)을 물었다. 하지만 그는 하루 종일 기자들에게 시달렸다며 “알려주지 않겠다”고 했다. 

“아까도 ○○일보 기자가 와서, 이름하고 나이를 계속 알려달라고 하더라고. 그게 왜 필요해. 피해 받은 사람들의 마음이 이런데, 이렇게 얘기를 해주면 됐지, 왜 이름과 나이까지 밝히라는 거야. 기자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지들 편리하려고 하는 거잖아. 신문이고 방송이고 뭐고 내 이름 나오기만 해 봐, 가만 안 둔다고 했어.” 

산불로 불타버린 강원도 고성군 건물들
산불로 불타버린 강원도 고성군 건물들ⓒ민중의소리
산불로 불타버린 강원도 고성군
산불로 불타버린 강원도 고성군ⓒ민중의소리
산불로 불타버린 강원도 고성군
산불로 불타버린 강원도 고성군ⓒ민중의소리

펜션, 공장, 연구소, 대조영 촬영지 모두 탔다 

최초 산불발생지로 추정되는 장소로 향했다. 용촌천을 따라 고성군 토성면 일성설악콘도가 있는 곳까지 올라갔다. 콘도가 있는 곳까지 올라가는 길에도 전소된 펜션, 공장, 연구소, 폐차장, 택배회사 등이 눈에 들어왔다. 

드라마 ‘대조영’ 촬영지도 폐허가 돼 있었다. 촬영지 앞 체험관과 사람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쉼터까지도 새하얗게 불타 재만 흩날렸다. 드라마 촬영 시 사용했던 공성전 투석기, 주변 잔디와 나무 등도 모두 불에 타서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멀쩡한 것은 커다란 비석인 ‘설악씨네라마광개토대왕비’뿐이었다 

한 방송국 기자가 최초 산불이 발생됐다고 추정되는 지점에서 방송을 찍고 있다.
한 방송국 기자가 최초 산불이 발생됐다고 추정되는 지점에서 방송을 찍고 있다.ⓒ민중의소리

산불 최초 발생지는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의 한 주유소인 것으로 추정된다. CCTV에서 불꽃이 튀는 모습이 잡힌 것이다. 한전 관계자 또한 “개폐기와 연결된 전선에 이물질이 날라와 스파크가 발생한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정확한 감식 결과는 10일 뒤에나 나올 예정이다.

주유소가 불타진 않았지만, 주유소 담장 옆 ‘광케이블 매설지역’ 푯말이 세워진 들판과 숲이 모두 검게 그을려 있었다. 현장에 도착했을 무렵, 한 방송국 기자가 불탄 흔적을 가리키며 ‘산불 최초 발생지로 추정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산불 최초 발생지서 용촌1리까지 직선거리는 약 7km다. 중간엔 도로가 있었고, 용촌천이 흐르고 있었지만 소용없었다. 불길은 바다 방향으로 마을을 향해 거의 일직선 형태로 내려왔다. 강한 바람이 불길을 바다 쪽으로, 마을 방향으로 옮겨붙인 모습이었다.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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