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를 사기 위해 무리한 대출을 받는다면 우리의 '현재'를 담보로 잡아야 한다. 평소 부동산에 대해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던 우리는 지금 사는 아파트를 떠나기로 했다. 그러나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아내는 신혼 초만 해도 아파트 생활에 몹시 만족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아파트에 대한 환상이 깨졌고, 아파트 못지않게 시설이 좋은 주변 신축 빌라들을 보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우리는 빌라를 알아보기로 했다.
빌라의 주인이 되다
주말마다 아내와 고양시 인근 빌라들을 보러 다녔다. 우리는 주거의 개념만으로 보면 빌라도 손색이 없다는 확신을 가졌다. 더군다나 가격도 아파트보다 싸다.
처음 우리는 은행 대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세만을 생각했었다. 그런데 신축 빌라들은 전세가나 매매가나 큰 차이가 없었다. 우리의 마음은 빌라 매매로 기울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주변에 알리자 엄청난 반대가 밀려왔다.
"빌라는 사는 게 아니라니까! 투자 가치가 전혀 없어요. 빌라를 살 돈으로 경기 남부에 20년 된 21평짜리 아파트를 사! 가격 오를 확률이 훨씬 높아."
지금 집보다 더 작고 오래된 집으로 이사를 하라고? 무엇을 위해서?
"자연인도 아닌데 집 주변에 둘레길이나 숲이 있는지 왜 고려해? 지하철역과 얼마나 가까운지, 편의시설은 있는지, 학군은 좋은지, 같은 걸 따져야지. 그래야 빌라라도 집값이 오른다니까!"
나와 아내는 산을 좋아한다. 서울 한복판에서 회사 생활을 하는 나는 집에 있을 때만이라도 자연과 가까운 환경에서 지내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우리와 다른 가치관과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잠시 흔들렸지만, 우리만의 생각을 지키기로 했다. 그래서 아파트도 아니고, 역세권도 아닌, 한적한 곳에 지어진 신축 빌라를 매매하기로 했다.
이삿날 저녁, 짐정리를 하다 창문을 열었다. 도심과는 완전히 다른 맑은 공기를 느낄 수 있었다. 4차선 도로와 인접했던 이전 집에서는 느낄 수 없던 청량함이었다.
내일부터 출퇴근 시간이 더 걸릴 것이고, 아파트에서 느끼지 못했던 불편함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슷한 평수인 아파트의 절반 가격으로 깔끔하고 쾌적한 집을 (은행과 함께) 장만했다고 생각하니 꽤 만족스러웠다.
잠시 창 밖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환기를 위해 열어놓은 안방 문이 굉음과 함께 닫히면서 잠겨 버렸다. 아파트에 살 때는 관리사무소에서 마스터키를 빌려줘서 이런 사태를 쉽게 해결할 수 있었지만, 빌라에서는 내 힘으로 해결해야만 한다. 평균 이하의 손재주를 가진 나는 몹시 당황했다.
아파트보다 조금 불편하지만 아주 따뜻한 곳
▲ 만약 누가 빌라 생활 1일 차의 소회는 묻는다면 "아파트보다 조금 불편하고 아주 따뜻하다"라고 말하고 싶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 |
ⓒ 이주영 |
밤 9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오늘 밤은 소파에서 자야 하나? 옆집 벨을 누르기에는 너무 늦은 시각이다. 나는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4층 아저씨와 1층 아주머니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둘의 대화에 잠시 공백이 생긴 틈을 파고들었다. 오늘 이사를 왔노라고 인사를 드린 후, 내가 처한 위기 상황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아이고 저걸 어째. 잠긴 문을 여는 열쇠가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집에 관련된 일은 우리 딸이 알고 있어서. 곧 퇴근할 때가 되긴 했는데…"
"혹시 핀이나 작은 쇠꼬챙이 같은 거로 열리지 않을까요? 우리 집 애들이 알려나?"
망연자실한 나는 집으로 다시 들어가 손재주 좋은 친구에게 전화했다. 예상대로 친구는 해결방법을 알고 있었고, 기우대로 잔소리가 이어졌다.
"이런 답답한 양반을 봤나. 아무리 기계치라고 해도 그런 것도 몰라? 방에 특별한 안전장치가 있는 게 아니라면, 젓가락을 끼워봐. 바로 열려."
나와 아내는 채 풀지 못한 이삿짐 속에서 젓가락을 찾아 바로 실행에 옮겼다. 너무나 쉽게 문이 열렸다.
그 순간 우리 집 초인종이 울렸다. 이제 막 이사 온 집에, 그것도 이렇게 늦은 시각에 누가 찾아온 걸까 궁금해하며 문을 열었다. 4층 아저씨였다.
"우리 큰아들이 젓가락으로 열면 열린다고 해서! 아직 못 열었으면 내가 잠시 들어가도 될까요?"
그때 거짓말처럼 1층 아주머니와 딸로 추정되는 분이 2층 우리 집을 향해 계단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어? 4층 아저씨도 오셨네!"
그녀는 한 손에 젓가락을 흔들고 있었다.
만약 누가 빌라 생활 1일 차의 소회는 묻는다면 '아파트보다 조금 불편하고 아주 따뜻하다'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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