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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말을 듣고 마음을 읽어야”

박한식 미 조지아대학교 명예교수 - 북미관계 독법

프레스아리랑 | 기사입력 2019/11/14 [01:27]
 

 

▲  박한식 미 조지아대 명예교수 



 

<특별기고> “말을 듣고 마음을 읽어야”

 

 

독립국가 꿈에 부푼 쿠르드족의 예

 

9·11 테러 이후 미국을 사로잡은 관심사 중 하나는‘테러와의 전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프가니스탄전쟁, 이라크전쟁 등으로 실천되었다. 하지만 그런 전쟁은 미국의 기대와 달리 IS(이슬람국가)라는 더욱 강력한 테러조직을 탄생시키는 산파 역할을 했을 뿐이다. 미국은 고민에 빠졌다.

 

그런 와중에 쿠르드족이 IS와 치열하게 싸우는 장면을 목격했다. 미국은 반색을 하고서 쿠르드족에게 손을 내밀었다. 쿠르드족도 미국의 손을 잡았다. 미국이 도와준다면 쿠르드족의 오랜 염원인 독립국가를 건설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쿠르드족은 혼신의 힘을 다해 IS와 싸웠다. 쿠르드족의 노인과 여성까지 참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독립국가 건설의 꿈 때문이었다. 미국은 쿠르드족의 분전으로 IS를 정복할 수 있었다. 쿠르드족의 전사자는 11,000여 명에 달했지만 미국의 전사자는 100명 미만에 불과했을 뿐이다.

 

이제 미국이 쿠르드족에 보답해야 할 차례가 되었다. 독립국가 꿈에 부푼 쿠르드족은 미국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미국은 쿠르드족을 외면했다. 미국은 IS 정복이라는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외면으로 터키가 쿠르드족을 침공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터키는 쿠르드족이 IS와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터키에 거주하는 쿠르드족이 동요할 것을 우려했다. 터키의 폭격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미국은 쿠르드족과 함께 싸운 미군을 철수시켰을 뿐이다.

 

쿠르드족의 비극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쿠르드족이 미국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쿠르드족은 미국의 말을 믿고서 참전했지만 미국의 마음을 읽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곤경에 처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사회에서도 배신은 일어난다. 그러나 국제정치의 세계에서는 배신이 거의 일상화되어 있다.

팔머스톤은 1848년 3월 1일 영국 하원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영국에게는 영원한 동맹국도, 영원한 적대국도 없다. 오직 영국의 국가이익만이 영원하게 지속되며, 바로 그러한 국가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영국의 의무다.”

 

국제정치의 속성을 비교적 정확하게 표현한 주장으로 널리 인용되는 구절이다. 우리의 상식으로 판단할 때 미국의 행위는 배신처럼 보이지만, 팔머스톤의 주장에 따를 때 미국의 행위는 국제정치적 상식에 속한다. 따라서 국제정치적 행위자가 상대국가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경우 국가의 재앙을 초래할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미스인포메이션(MI)과 디스인포메이션(DI)

 

국제정치의 세계에서 말을 액면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되는 객관적 근거도 있다. 인간이 사용하는 말에‘미스인포메이션’(Misinformation, 이하MI)과 ‘디스인포메이션’(Disinformation,이하 DI)이 녹아 있을 수 있기때문이다. MI와 DI의 차이를 구분하는 기준 중 하나는‘의도의 여부’다.

 

MI는 의도하지 않게 정보를 곡해한 것을 말하고, DI는 명시적인 의도를 갖고서 정보를 곡해한 것을 말한다. MI의 사례로는 거짓 소문, 편견 등을 꼽을 수 있고, DI의 사례로는 거짓말, 선전 등을 꼽을 수 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주장이 있다고 해보자. “북은 가난하기 때문에 모두 굶어 죽을 것이다. 따라서 북은 곧 붕괴할 것이다.” 북이 가난하다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모두 굶어 죽는다.’로 해석한 것은 MI에 해당한다. 북이 가난하기는 하지만 모두 굶어 죽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북은 곧 붕괴할 것이다.’라고 해석한 것은 DI에 해당한다. 북을 악마시하는 명시적 의도를 가지고서 정보를 곡해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의 건전한 상식으로 판단할 때 MI와 DI를 좋게 평가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인간의 말에는 항시 MI와 DI가 녹아 있으며, 따라서 그것을 액면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내가 해방 직후 자주 들었던 노랫말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조선아 조선아, 소련 놈에게 속지 말고, 미국 놈 믿지 말고, 조선은 조심해라. 일본 놈 일어선다.”지금 이 노랫말을 회고해도 국제정치 세계에서 말의 위험성을 통찰한 경구가 아닐 수 없다고 본다.

 

나는 작년에 한국에서 『선을 넘어 생각한다-남과 북을 갈라놓은 12가지 편견에 관하여』를 출간했다. 책의 제목에서‘선’은 우리의 사유를 제약하는 북에 대한 각종 편견을 의미한다. 나는 그런 편견을 넘어서야만 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지평이 열린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다. 북에 대한 편견은 수없이 많다. 내가 책에서 다룬 몇몇 편견을 예시하면 ‘북은 곧 붕괴한다,’‘북은 미치광이 혼자서 지배하는 나라다,’‘선군정치는 군부독재를 의미한다,’‘북에는 인권이 없다,’‘대북지원이 핵개발을 도왔다,’‘통일은 곧 손해다.’등등을 꼽을 수 있다.

 

북에 대한 편견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여론의 풍토’(climate of opinion)에도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있다. 특히 세계 언론의 통신사를 장악한 미국의‘선전외교’(public diplomacy)를 통해서 북에 대한 악마 이미지가 끊임없이 송출되고 있다. 우리는 미국 언론의 권위를 맹신하면서 북에 대한 악마 이미지를 물과 공기처럼 매순간 소비하면서 산다.

 

그러면 그런 편견에 입각해서 입안된 대북정책을 시행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되겠는가? 단언컨대 한반도의 재앙 이외의 것을 기대할 수 없다. 쿠르드족의 사례가 그런 귀결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질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MI와 DI가 혼재된 말로부터 오도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나는‘말을 듣고 마음을 읽어야’를 해법으로 제시하고 싶다. 나의 해법을 들은 독자는 곧바로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도대체 어떻게 읽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학문적 연구 또한 이미 충분히 축적되었다. 그런 연구에 따르면 반복되는 행동을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그 행동을 지배하는 마음을 합리적으로 추론해야 한다. 마음은 곧 행동의 동기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행동을 관찰하면서 마음을 추론하는 것이 곧 학문의 목적이라고도 할 수있다.

 

 

말을 듣고서 마음을 읽어야

 

‘말을 듣고서 마음을 읽어야’라는 명제(proposition)에 따라 북미 간의 북핵문제를 간략하게 분석해 보자. 북의 말을 들어보면 비핵화를 하겠다고 그런다. 비핵화는 곧 김일성주석의 유훈이라고도 말한다. 북한에서 김일성주석의 유훈은 거의 절대적 가치를 지닌다. 그러면 북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어야 할까?

 

우리는 북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 이전에 북핵 30여 년의 역사에서 북이 보여준 행동을 유심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나는 내가 관찰한 북의 행동패턴을 나의 학문적 식견에 따라 해석할 경우 다음과 같은 북의 마음을 추론할 수 있다고 본다.

 

김일성주석은 일본 식민지를 체험하고, 2차 세계대전 때 원자탄 피폭을 당한 일본이 한순간에 항복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한국전쟁 때 미국의 무자비한 폭격을 당하면서 핵무기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또한 김일성주석은 북이 독립국가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핵무기가 필요하다는 유훈도 남겼다. 북의 독자적 생존을 이념적으로 지지할 수 있는 주체사상을 창안하기도 했다. 김정일위원장은 김일성주석의 유훈에 따라 핵무기 개발을 거의 완성했다. 북의 정치체제를 유지할수 있는 군사적 기초가 거의 완성된 것이다.

 

김정은위원장은 바로 그 기초 위에서 북의 경제발전을 추진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북이 걸어온 역사를 보면 인류 역사에서 출몰했던 수많은 국가의 발전경로와 다르지 않다. 모든 국가는 창업 후 국가 이데올로기를 정립하고, 군사적 기초를 마련하고, 경제발전을 도모하면서 생존하는 경로를 걸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은 여타 국가와 다를 바 없는 ‘보통국가’ 내지 ‘정상국가’라고 할수 있다.

 

하지만 미국은 북을 악마로 선전하면서 경제제재를 정당화하고 핵무기를 포기하라고 강요한다. 또한 매년 한미군사훈련을 실시하면서 북을 비상사태로 몰아넣는다. 북은 한국전쟁 이후 약 70년 동안 미국의 핵폭격 위협에 적나라하게 노출된 지구상의 유일한 나라다. 북이 직면한 상황이 이러하건대 도대체 어떻게 북이 스스로 비핵화를 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북한은 자국의 안전을 확신할 수 있는 북미 간의 조치가 선결되지 않는 한 그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말을 들어보자. 미국은 북에게 이른바 CVID, 즉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를 요구한다. 북이 CVID를 이행할 경우 북의 경제발전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한다. 북은 경제적 잠재력이 풍부하기 때문에 미국이 도울 경우 북 경제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게 될 것이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기도 한다. 또한 북이 CVID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북 인민의 인권 해방을 위해서 북을 레짐체인지시켜야 한다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미국의 이런 말들을 액면 그대로 믿어야 할까?

 

미국의 말로부터 오도되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미국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해야 한다. 북핵문제 30여 년의 역사를 냉정하게 검토하면 미국이 북미간의 합의를 반복적으로 와해시키는 패턴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를 종식시킨 제네바 합의는 아들 부시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와해시켰고, 2차 북핵 위기를 종식시킨 2005년 9·19 공동성명은 발표 직후 미국이 와해시켰으며, 3차 북핵 위기를 해소시키는 듯했던 2018년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합의는 2019년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와해시켜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미국의 행동패턴으로 부터 미국이 북핵문제 해결을 원하지 않는다는 마음을 추론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미국은 지금도 북한과 만나서 북핵문제를 해결하자고 그런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관찰한 미국 의회의 북에 대한 강고한 편견, 북의 악마 이미지를 맹신하는 미국의 지배적 여론, 미국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 특히 이러한 일련의 난관을 정치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역량이 턱없이 부족한 트럼프의 한계 등을 고려할 때, 미국 주도의 북핵문제 해결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

 

 

미국이 북핵문제 해결을 원치 않는 이유

 

하지만 나는 미국의 마음에서 북핵문제 해결을 원하지 않는 현실적 이유에 더욱 주목한다. 미국은 북이라는 핵 국가가 악마로 존재해 주어야만 첫째, 천문학적 금액의 무기를 한국에 끝없이 판매할 수 있고, 둘째, 북을 핑계로 한국에 미군을 주둔시키면서 중국을 견제할 수 있으며, 셋째, 북의 위협을 일본 재무장의 명분으로 삼아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미국정치를 지배하는 군산복합체와 딥스테이트가 북을 수단으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일정 수준 유지하면서 천문학적 이익을 꾸준히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북과 미국의 마음에 주목할 경우 앞으로 북미 간의 북핵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무한히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에서 가장 손해를 많이 보는 측은 남과 북이고, 가장 이익을 많이 챙기는 측은 미국이다. 따라서 남과 북은 반드시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타파해야만 한다. 그러지 않을 경우 남과 북은 각자의 활력을 고갈시키면서 쇠락의 길을 끝없이 걸을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과 북이 연루된 악순환이 고리를 타파하는 방법은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성취하는 것뿐이다. 남북한 통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작금의 악순환을 지배하는 안보 패러다임을 평화 패러다임으로 전환시켜야만 한다. 안보 패러다임의 요체는 북을 악마로 간주하고, 무력을 동원해서 북을 상시적으로 견제하고, 유사시 북을 완전히 궤멸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평화 패러다임은 무력을 수단으로 북핵문제 해결을 시도할 경우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파국을 초래할

수밖에 없으며, 그런 파국은 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판단에 기초하고 있다.

 

이런 나의 말이 MI나 DI처럼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한국전쟁 때 트루먼이 3차 세계대전을 우려해서 맥아더를 해임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한다. 북진을 감행한 맥아더는 중국의 참전으로 수세에 몰리자 만주에 핵폭탄을 투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당시 스탈린은 3차 세계대전 발발을 가장 우려하고 있었는데, 미국의 만주 핵폭격을 좌시할 수 있었겠는가? 더욱이 스탈린과 모택동은 1950년 2월 중소 우호동맹 상호원조 조약을 체결한 상태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북도 핵무기를 갖고 있고, 중국도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은가? 더욱이 북은 중국과 피로 맺은 동맹국이다. 그런데도 한국과 미국에서는 북 중 관계의 특수성을 외면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런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2011년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의 연구원이 북 중 관계정보를 한국에 제공함으로써 두 명이 해직되고 사형선고를 받기까지 한 사건을 목격하고서도 그런 태도를 견지할 수 있는 배짱의 근거가 도대체 무엇인가를!

 

 

제3정부 매개로 연방제 통일국가 형성

 

남과 북은 각자의 주장을 상대방에게 강제하는 대신 현재의 체제를 그대로 인정하는 데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그 여정에서 남북은 각자의 이질성을 인정하고 동질성을 꾸준히 진작시키면서 변증법적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 변증법적 통일의 요체는 남북이 각자의 내적 모순을 극복하면서 제3정부를 매개로 연방제 통일국가를 형성하는 것이다. 나는 남북 분단 70여 년의 고난의 대가를 남북 평화적 통일에서 찾아야만 한다고 본다.

 

그뿐 아니다. 지구상의 마지막 냉전지대인 우리반도에서 평화적 통일을 성취한 지혜는 중동과 같은 지역의 만성적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처방책으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과정이 꾸준히 진척될 경우 남북의 고난의 역사는 세계평화에 기여하는 대가 또한 성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박한식/ 미 조지아대학교 명예교수

 

 

* 박한식 박사는 조지아대학교(University of Georgia) 국제관계학 명예교수이자 세계문제연구소(GLOBIS)를 설립한 초대 소장이다. 부모가 이민을 가 중국 만주에서 태어난 박 교수는 중국, 한국,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학사, 아메리칸 대학교 석사를 거쳐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 이 기고는 <씨알의 소리> 2019, 11/12월 송년호에도 함께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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